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되는대로 Jun 30. 2024

새나루 #5

아니, 이런 음악을 들으세요? 이젠 좀 바꿔보세요!!!


아직 봄이 채 오지 않은 겨울 끝자락이다.


어떤 날은 전자레인지에 녹은 피자 치즈처럼 마음 녹이는 햇볕이 들었다가 또 어떤 날은 땡땡 얼어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 편의점 아이스크림처럼 표독스러운 찬바람이 돌았다.


하지만 김길환의 마음엔 며칠 전부터 봄 볕이 들어 있었다. 이번 주말에 강은숙이 병원 일을 보기 위해 그가 살고 있고 그녀의 엄마와 언니들이 살고 있어 친정 같은 그네들의 동네로 오기로 한 때문이었다.


둘은 같은 회사 다른 근무지이지 와 그녀의 가족들이 사는 동네운 좋게도 같다는 점에서 뜻밖의 행운 자리를 깔고 있었다.  

인연이 되려면 뭐든 연결고리가 있야 하기 때문이다.



인연이 되려면 뭐든
연결고리가 있게 된다.

그것은 남들 보기에
하찮든 중하든 상관없다.

인연이 되려면
자꾸 되게끔 꼬이고

반대로 인연이 되지 않으려면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어긋난다.

세상 일이란 잘 되려면
어떻게든 삼박자가 맞게 되고
징조들도 함께 온다.


강은숙은 수년 전 지방 근무지로 내려간 후부터는 자기가 원래 살던 그 동네에는 비록 엄마가 계셔도 거의 가지 않았다. 워낙 연락수단도 풍성하고 딱히 힘들게 이동해 찾아갈 일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이 많은 그쪽 생활은 먹고 놀러 다니기에 만족스럽고 편하기만 했다. 그래서 올라가는 건 일 년에 고작해야 한 두 번이 다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올 연초부터는 올라갈 일이 자꾸만 생겼다. 무엇보다도 후배소개로 찾은 병원에서 별 것 아닌 치료를 하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몇 달의 기간이 소요되는 일정이 어서 이 상황을 보탰다.




조만간 만날 기대감에 마음이 며칠 훈훈했던 김길환에게 야속한 소식이 전해졌다. 강은에게 갑작스러운 일요일 업무가 생기면서 방문 일정을 조정하게 되었것이다.


방문 일정을 연기하면 얼굴 보는 것도 같이 미루면 되었 것이다. 지만 그녀 재조정 일정은 아무리 형편상 그랬다 할지라도 서운하게도 일요일 밤 늦게 도착해서 다음날 월요일 병원일을 보고 바로 되돌아가 버리는 것었다.


그녀는 자신이 밤늦게 도착하면 기다리는 그녀의 가족들도 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껏 기대했다가 실망스러운 마음이 든 그는 자신에게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스스로 잘 알기에 혼자 민망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혼자 맛있게 먹던 초콜릿을 친구들이 나타나자 뒤로 몰래 숨겨 손에 쥐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 그것이 녹으면서 숨긴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이 자꾸 드러나지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아무리 잘 숨긴다고 해도 손에 녹은 초콜릿처럼 덕지덕지 표시를 내버린다.




일요일이다. 늦겨울 해가 중천을 향해가는 오전 열 경, 검은색 G80 세단 차량 한 대가 군자 IC를 지나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 안에는 강은숙을 보고 싶어 하는 김길환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차창 으로 메마른 들판과 산이 지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조만간 올라올 푸른 잎들과 이윽고 초록으로 우거질 산야가 연상되었다.


왼편 차창 안으로 들어와 강은숙처럼 옆에 앉아 있는 겨울해가 밝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오후 다섯 시 오십 분이 되어서야 김길환과 강은숙은 만나게 되었다.


오래 기다린 끝에 그는 그녀의 회사 건물 앞 넓은 마당 화단 저편을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았다.


멀리서 보이는 여자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겉옷으로 흰색에 가까운 아이보리색 뽀글이 잠바를 입었다. 연회색 엷은 스웨터를 받쳐입고 검은색 장바지 아이보리색 운동화를 신고 그녀는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며 이쪽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김길환이 기다리던 강은숙이 그녀임을 마침내 알아 볼 무렵 그 여자 그 상태에서 고개만 까딱 숙여 목례만 아는 척을 했고 눈을 바로 딴데로 돌려버렸다.


김길환의 입장에서는 다소 기운 빠지고 성의가 없는 느낌이었다. 

기대를 많이 했었을까,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마음은 새처럼 지나가는 한갓 마음일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순간은 많을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런 것에 일일이 다 반응할 수는 없 않겠나...

그는 마음에  갑자기 붙은 티끌을 툭 하고 털어내었다.


둘은 한달 반 만에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늦겨울의 해는 여전히 짧고 밤은 빨리 든다. 둘은 어디 커피 한잔 하러 들를 겨를도 없이 바로 집으로 출발했다.


그의 집이 있는  동네가 그녀의 엄마와 언니들의 집이다. 돌아갈 곳이 같은 곳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고 인간에게는 귀소본능이 있다. 비록 여러 사정으로 나가 있었어도 결국 사람이 돌아갈 곳은 가족들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가족은 소중하다.


김길환의 옆집이 강은숙의 언니의 집이고 또 그녀의 언니바로 옆집이 김길환의 집이다. 네비를 각자 따로 찍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며 둘은 차 안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했다.


성격이 솔직하고 거리낌이 없는 강은숙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김길환이 졸릴까 봐 재밌는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자기의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이야기, 친한 친구들 이야기, 주중에는 약속이 많지만 본인은 집순이여서 주말에는 잠만 자느라 어떤 때는 종일 수십 걸음도 안 걷는다는 이야기, 자신의 투자사연 등을 얘기했다.




그네들의 동네에 도착한 시간은 그렇게 늦지는 않았다. 김길환은 차가 좀 막혀주기를 바랐지만 길이 막히지 않고 잘 뚫린 것이 못내 섭섭했다. 이 마음을 눈치챘는지 강은숙은 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김길환은 그녀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기에 사양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완강했다. 그래서 그는 길을 돌아 유명하다는 감자탕집에 갔다. 그 집은 매운 맛이 유명한 집이었다.

김길환은 그녀가 어느 때인가부터 매운 것을 잘 먹지 못다고 말을 했었음에그는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녀가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각없이 가려던 곳엘 결국 갔다. 사실은 아는 곳도 없었던 것도 중요 이유였다.


강은숙은 맛있다고는 하면서 감자탕이 매워서 밥은 얼마 먹지도 못했다. 대신 김길환은 자상한 성격을 십분 발휘 그녀가 쉽게 먹도록 살을 발라 주었다.


여담이지만 그녀가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이유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밝혀졌다.

그도 그녀도 그때가 되어서야 이유를 알았고 김길환은 이 일만 생각나면 혼자 마음 아파했다.  


그녀는 부득불 자신이 밥값 계산까지 다 해버렸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녀가 른 후 자리에 앉은 김길환은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버튼을 잘못 눌러 실수로 음악이 틀어다. 갑작스런 음악소리에 놀란 강은숙은 그 음악에 대고 핀잔을 주듯 말했다. 느닷없는 소음에 놀랐기도 했지만 마음에 안드는 장르였는지 소리에 한 대 쥐어박듯이 말했다.


"아니, 이런 음악을 들으세요? 이젠 좀 바꿔봐요"


김길환은 자신이 일부러 튼 것  아니었지만 뻘쭘해하면서 급히 음악을 껐다.

하지만 그는 그때는 그녀의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중에야 이해하거였지만 그녀는 실은 핀잔을 주듯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차에 연결해서 듣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감정을 노래를 담아 그 비슷한 느낌을 전달해 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그녀는 종종 자신의 핸드폰을 눈에 띄게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차에 자신의 폰을 연결할까 말까, 그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그녀의 도드라진 모습에  그는 단지 전화나 문자를 확인하려는 것이려니 생각했을 뿐 그녀의 그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는 그녀의 얘기와 운전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은 강은숙이 며칠이 지나 보내준 음악플레이리스트였다.


이것을 보내는 그녀는 고민했을 것이다.

이것을 틀면 괜한 오해를 받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도 노래를 빌어 자신의 감정을 비슷하게 나마 알려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플레이리스트의 곡들은 김길환을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김길환의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녀도 그점을 염려했기에 가사에 너무 의미부여를 하지 말라고 언질을 주었다.






-기존 번역 참고에, 문맥상 시적 의역을 더했습니다-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 언제나 몇번이라도 ]


https://youtu.be/YiFLvdtOIOI?si=-fLYPONROC8F-zQf


부르고 있  가슴 속 어딘가에서

나는 언제나 마음 설레는 꿈을 꾸고 싶어요.


슬픔을 이루 다 셀 수 없지만

그 너머 반드시 당신을 만날 수 요.


실수를 되풀이할 때마다 사람은

파란 하늘의 푸르름(슬픔)을 깨닫게 되요.


길은 끝없이 계속것 같지만(고달프지만)

이 두 손으로  빛(이겨낼 희망)을 안을 수 있죠.


헤어질 때의 고요한 마

무(無. 죽음)로 때와 같은 고요함이

귀를 귀울이면 그 고요함도 들을 수 있요.


살아있다는 신, 죽어간다는 신

꽃도 바람도 거리도 모두 다르지 않아요.


부르고 있는 가슴 속 어딘가 안에서

언제나 몇 번이라도 나는 꿈을 꾸어요.


슬픔의 수를 다 말해 버리는 것 보다

입 맞추어 조용히 노래를 불러봅니다.


닫혀 가는 추억 그 속에서 언제나

나는 잊고 싶지 않은 속삭임을 들어요.


산산조각깨어진 거울 조각들

새로운 풍경 비추어집니다.

(새로운 창조, 다른 관점, 배움, 성장)


다시 시작아침 고요한 창문 들면

무(無)로 돌아갔던  내 다시 채워나갈 수 있요.


바다 저편에 이제  찾지 않렵니다.

빛나는 것은 언제나 여기

내 마음속에서 찾을 수 있 때문이요.

작가의 이전글 새나루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