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우리... 모든 '을'의 이야기
『스토너』를 읽고
윌리엄 스토너,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을'의 이야기
윌리엄 스토너는 미국 미주리주 분빌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별다른 꿈도 없이 농부가 될 운명이던 그에게 군청 공무원이 컬럼비아에 새로 생긴 농과대학 진학을 권했다. 스토너는 이모의 농장에서 머슴일을 하며 대학을 다녔고, 뒤늦게 두 친구를 만났다.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토너는 대학에 남았고, 친구 매스터스는 프랑스 전선에서 전사했다. 평생을 함께한 친구 고든 핀치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와 변함없이 스토너 곁을 지켰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스토너의 인생에 두 번째 은인이 나타났다. 문학을 가르치던 아처 슬론 교수였다. 슬론 교수는 몇 마디의 문답으로 스토너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것은 단지 인생의 길을 바꾼 정도가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새롭게 이끌어준 만남이었다.
절친한 친구 고든 핀치와 함께 대학 이사회 모임에 참석한 날, 스토너는 이디스라는 여성을 만나 첫눈에 반했다. 가냘프고 우아하게 차를 따르던 그녀의 모습에 매혹되었다. 겨우 3주간의 짧은 만남 끝에 성급하게 결혼이 결정됐다. 당시의 여성 교육은 지금과는 달랐다. 이디스는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상식과 피아노, 뜨개질, 요리, 그리고 아내로서의 교육만을 받았던 여성이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외롭고 고요한 시간들이었다. 히스테릭하고 변덕스러운 이디스의 성격은 스토너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결혼 2년 만에 얻은 사랑스럽고 총명한 딸 그레이스가 있었지만, 이디스의 질투는 아버지와 딸의 사이마저 빼앗아버렸다.
스토너는 교수로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이 강한 로맥스 교수와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로맥스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스토너를 괴롭혔지만, 스토너는 불평하지 않고 조용히 견디며 할 일을 했다.
그렇게 평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가던 중, 스토너 앞에 드리스콜이라는 대학원생이 나타났다. 그는 드리스콜을 통해 처음으로 사랑과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사회적 체면과 위치 때문에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딸 그레이스는 아버지와 제대로 소통할 기회조차 없이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임신했다는 소식과 함께 결혼을 하고 멀리 떠나버렸다. 어린 남편은 곧 군에 입대해 전장에서 전사했고, 아이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시간이 흐르고, 학장이 된 앙숙 로맥스는 스토너에게 퇴임을 종용했지만, 스토너는 단호히 거절하고 계속해서 강단에 서기를 고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의 이상을 느낀 스토너는 온몸에 퍼진 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삶의 마지막 순간, 그의 곁에는 아내 이디스, 딸 그레이스, 그리고 평생의 친구 고든 핀치가 매일 찾아왔다. 어느 날, 그가 마지막으로 읽으려 손에 쥐었던 책이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지듯, 스토너의 생명도 고요하게 바닥에 가라앉았다.
줄거리를 먼저 정리해 두고,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다시 글을 쓰게 되었는데, 당시의 감상이 과연 잘 정리되었는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윌리엄 스토너라는 인물을 다룬 이 장편소설은 출간 50년이 지나서야 미국 본토와 유럽에서 뒤늦게 주목을 받으며, 세월을 거슬러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나는 도서관에 책을 예약해 두고 거의 한 달을 기다려서야 손에 쥘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 책은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그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이 책은 1965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대학 교수를 주인공으로 한다. 특별한 영웅적 사건 없이, 한 남자의 삶을 마치 평전처럼 차분히 서술한다. 소박하다 못해 누추하기까지 한 가정환경, 보잘것없는 농부를 부모로 둔 존재감 없는 출신 배경의 스토너는 흔하디 흔한 인물이지만, 바로 그 평범함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1960년대 한국 시골에서도 익숙했을 법한 ‘우골파’ 출신 농부의 자식이라는 설정은 국내 독자에게도 충분히 감정적으로 울림을 줄 수 있다.
예상치 못하게 진학한 대학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인생의 귀인인 아처 슬론 교수를 만나면서, 그는 학문의 길에 들어서고 이후 평생 한 길을 걷게 된다.
아내 이디스를 처음 만났을 때 스토너는 생애 처음으로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 듯 보인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고 신속하게 전개된 혼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을 남긴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 이유는 서서히 드러난다. 이디스와의 결혼은 그녀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였던 것이다. 당시 여성 교육의 목적은 남편의 아내로 소비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습득에 머물렀다. 남편의 대화를 이해할 최소한의 상식, 남편을 받아줄 성생활과 출산에 대한 기초적인 성지식, 생활을 위한 요리, 뜨개질, 청소 방법이 전부였다. 이런 저질의 교육 수준이 불과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근대의 현실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스토너는 딸 그레이스를 아내 이디스에게 ‘빼앗긴다’. 딸과 너무 친밀하게 지내는 그의 모습에 질투심을 느낀 이디스는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자신의 방식을 강요했다. 이로 인해 딸 그레이스는 결국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성급한 임신을 선택하게 되고, 아이의 아버지인 젊은 대학생은 죄책감에 군대에 서둘러 자원 입대한다. 그는 투입된 첫 전투에서 바로 전사했다. 스토너의 손녀는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유복자가 되었다. 일종의 불행의 대물림이었다. 스토너의 딸에게 이용당한(그레이스의 자책 - 스토너와 대화 중) 어리숙한 젊은 청년의 종말이 마음 아팠다.
스토너는 가정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철저히 ‘을’이었다. 사내 정치에서 밀려, 능력보다 관계가 우선시 되는 구조 속에서 그는 좋은 보직에서 배제되고 조롱당하며 점점 조직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성실하다고 칭했지만, 정작 그는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낸다.
그의 인생에 대학원생 드리스콜이 나타난다. 어떤 이는 그와 드리스콜의 관계를 아름다운 사랑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불륜이었다. 서로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은 없이 감정에만 충실했다. 그 감정은 성적인 관계로 이어져 사랑을 소비한다. 이는 현대인의 감정 소비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회는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고, 헤어짐은 불가피했다.
유부남과의 사랑의 끝이 흔히 그렇듯 스토너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버렸다. 상처 입은 드리스콜은 그곳을 떠나 둘과의 사랑에서 혼자 남아 시기를 놓치고 평생 결혼하지 못한 채 그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책을 쓴다. 이 결말은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겠으나, 내게는 흔하지만 슬프고도 애처로운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시대를 거슬러 평범한 한 남자의 인생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이 이야기가 왜 50년 만에 역주행하며 주목을 받았을까...
나는 그 이유가 바로 ‘평범함’에 있다고 본다. 너무도 평범하기 때문에 독자는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영웅도, 위대한 업적도 없는 이야기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이의 마음을 두드린다. 드라마틱한 영웅 서사가 아닌, 그저 묵묵히 삶을 살아간 어느 을의 이야기였기에,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도, 자신과 같은 이 이야기에 몰입되어 스스로의 삶을 멈칫 돌아보게 되지 않았을까.
밖에 무심한 비가 내린다.
벌써 가을이 그립다.
제 글이 좋으셨다면 잠시 더 이 노래와 함께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