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devoy May 06. 2019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MBC <이몽> 1~4편 후기

MBC가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야심작을 준비하고 있음을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몽>. 이 작품이 2019년 5월에 방송한다는 걸,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 등의 독립운동가를 소재로 방송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지난 10월 경에 접했다. 독립운동가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약 200여 억 원을 준비해 출연자 캐스팅에 공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고 기다렸다. 그런데 실망이다. 기다리고 기다렸건만 드라마 내용은 기대 이하였다. 분명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평범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부재(不在)


드라마는 실제 인명과 지명을 사용했지만, 드라마적 특성상 가공을 했다고 밝히며 시작한다. 시대극이라는 드라마 특성과 드라마 제작에서 인물 구성과 내용 전개에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가상의 인물과 가공의 상황을 설정하여 내용을 구성할 수 있다. 이론의 여지가 없이 동의가 되는 부분이다. 대다수의 시대극이 그러하며, 이러한 내용 구성과 전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될 점이 있었다. MBC <이몽>이 시대극이라는 드라마적 특성을 고려해 당시 시대적 상황을 전달하려고 한다는 점을 이해하더라도 드라마는 반드시 중점을 뒀어야 될 부분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차용한 인물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 인물들이 어떤 활동과 업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내용을 전개했어야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제강점기 시절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이 분명 존재하고, 약산 김원봉과 석정 윤세주, 그 밖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이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허구일지라도, 정확하게 인물을 설정하고 상황을 구성했어야 했다. 특히 드라마의 중심축인 인물들에 대해서, 드라마 시작 전부터 논란이 된 약산 김원봉에 대해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제시했어야 했다.


MBC <이몽>의 도입부.


약산 김원봉이 누구인가. 사회주의자였지만 오로지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해 신념도 버렸던 사람이다. 조선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민족반역에 앞장서고, 뜻을 같이 했던 동지들이 민족과 동료들을 배신과 배반을 하는 가운데 무장투쟁의 제일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끝까지 조국의 분단을 원하지 않았던 인물이자, 일제가 그리도 싫어했었던 독립운동가다.


석정 윤세주는 어떤 사람인가. 석정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김원봉과 동향(同鄕) 출신인 윤세주는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일제의 폭압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활동을 벌인 윤세주는 조선의열단 창설에 참가하고, 무장항일투쟁에 주도적으로 나선 인물이다. 조선의용대를 이끌다 1942년 중국군과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MBC <이몽> 1~4회에 걸친 방송은 이러한 점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인물 소개와 상황 설정에서 드라마는 김원봉과 윤세주, 그리고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라는 이름을 앞세우지만, 드라마는 이들의 이름만 빌려 왔을 뿐, 정작 이들의 신념과 활약을 무슨 이유인지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면 이들이 어떤 인물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독립운동가의 업적과 자취는 드라마에서 내세우는 '첩보 액션 드라마'라는 이름에 감춰져 흔적을 제대로 찾아볼 수 없었다.


궁금증을 갖게 한다. 드라마를 계속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가상, 가공, 허구라는 이름으로 보여줄 것이라면 왜 굳이 약산 김원봉과 석정 윤세주, 이밖에 다양한 실제 인물들과 사건을 빌려 왔는지 물음표를 띄게 한다. MBC <이몽>은 당시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시대적 사건은 그저 한 줄짜리 자막으로 퉁치며 제시되기만 할 뿐, 해당 인물들에 대한 설명은 드라마 내내 효과적이지 않게 넘어간다. 드라마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이해하는데 어렵게 하고 방해한다.


MBC <이몽>은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강한 인상을 남긴다. MBC <이몽>은 1~4편은 단지 일제강점기 시절 활약한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인지도만 빌려 오기만 했을 뿐, 드라마 속 배경만 일제 강점기로 제시할 뿐,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인물들을 활용해, 화려한(?) 첩보, 액션, 드라마를 보여주려는데 중점을 둔 모양새였다.


그런데 유명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는 화려한 첩보도, 액션도, 드라마도 아니었다. 제작진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에서 뿜어져 나와야 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가치관, 당시 중요한 사건들은 한 줄짜리 자막으로 대체될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아니라,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이 직접 재연하는 마치 한 편의 잘 짜인 다큐멘터리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지태(김원봉 역)


MBC <이몽>에 배우 유지태는 약산 김원봉을 연기한다. 하지만 1~4회에서 유지태는 '김원봉'이라는 인물의 이름만 달고 있을 뿐,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로 왜 무장투쟁에 나섰는지 1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 냉혹한 시기에 어떤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조국의 독립운동에 나섰는지, 배우와 드라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을 시종일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김원봉 역을 맡은 유지태를 보고 있으면, 그저 '잘 생겼다', '멋지다'는 인상만 남길 뿐이었다.


MBC <이몽>에서 유지태는 김원봉 역을 맡았다.


그렇게 드라마는 직진한다. 김원봉이 독립운동가로서 사회주의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별다른 고민 없이 거칠게 전개된다. 제작자와 작가의 고민이 부재한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보이지만, 배우 유지태 역시 김원봉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음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유지태는 김원봉으로 분해 그저 단순히 조국의 광복과 독립의 당위성만 내세우며, 버럭 소리지기만 한다. 왜 일본 제국주의와 싸워야 하는지, 왜 독립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당시 김원봉의 가치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유지태의 연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드라마는 각 인물들이 그리고 각 상황이 한 줄짜리 자막으로 제시될 뿐, 왜 이 인물이 이 갈등 속에 놓여 있는지, 이 사건이 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친절한 설명이 매우 부족했다. 이 설명은 배우의 연기와 대사, 행동에서 보여줘야 하는데, 지나치게 자막에 의존한다. 분명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는데, 정작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연신 들게 한다. 그동안 역사를 소재로 한 수많은 다큐멘터리 속 재연 배우들이 단순히 유명 배우인 유지태, 이요원 등으로 바뀐 듯한 인상만을 줄 뿐이었다.


MBC <이몽>의 출연자들. 왼쪽 허성태(미쓰우라 역), 가운데 이요원(이영진 역), 임주환(후쿠다 역)


스토리


MBC <이몽>은 첩보 액션 드라마를 표방한다. 상식적으로 첩보물은 스릴과 반전을 통해 이른바 쫄깃쫄깃한 맛이 있어야 한다. 액션은 화려한 격투신과 박진감 넘치는 총격신과 추격신, 그렇게 총과 칼, 주먹과 발이 뒤섞여 보여주는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드라마적 요소도 마찬가지. 왜 이들이 이렇게 싸우는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목숨을 걸고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드라마는 독립운동을 소재로 첩보 액션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드러냈어야 했다.


그런데 없다. 첩보물을 보는데 긴장감이 없다. 액션신을 보는데 하나도 긴장되지 않는다. 드라마적 요소도 마찬가지. 왜 이요원(이영진 역)이 조선인임네도 일본인 손에 길러졌고, 일본인처럼 살아왔으면서, 그래서 왜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됐는지, 이 과정에서 임주환(후쿠다 역)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등  인물 간의 극적인 상황이나 사건이 MBC <이몽>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에 MBC <이몽>에 등장하는 중요인물 4명 중 배우 임주환(후쿠다 역)과 남규리(미키 역)의 존재감이 매우 미약했다. 두 인물이 다른 중요인물인 이요원(이영진 역), 유지태(김원봉 역)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그래서 앞으로 드라마 전개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제대로 가늠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인물 설정과 관계가 미흡했다. 사랑과 멜로를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독립운동을 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반대하는 인물들 간의 갈등을 보여줄 것인지 등이 지난 1~4편을 보면 쉽게 파악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렵다. 1910~1940년대의 일제강점기의 냉혹한 시절과 공포스러웠던 사건과 상황, 인물들을 좇아가는 것도 힘든데, 왜 배우들이 저런 대사를 치는지, 왜 이런 장면이 제시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용 설명이 불친절한데 이어, 인물과의 관계가 쉽게 드러나지 않아 명확하지 않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200억여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은 도대체 어디에 쓰인 걸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MBC <이몽>은 개연성 있는 스토리의 부재로 내용 이해하기 어려운 드라마였다.  



고증


가장 큰 문제는 대사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각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의 대사는 현대극과 다름없다. 지금 아침, 주말, 월화수목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현대극 대사와 어조가 똑같았다. 드라마는 일제강점기라 시대를 반영하기에 일본어투, 국한문 혼용, 한글이 혼재되어 있는 말과 문장을 사용해야 된다고 보이는데, 드라마는 각 인물들의 복색만 시대극이고 대사는 완전 현대극이었다.


그래서 마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대사를 현재 쓰는 말로 쓰는 것 같았다. 언어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하게 드라마 속 단어의 쓰임새에 대해 콕 집어 전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저 당시에 저런 단어를 정말 썼나 싶을 정도로 현대말이 시대극에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MBC <이몽> 1~4회를 보면 고증의 부족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대사에 있어서 제작자도 작가도, 그리고 출연자들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1910~1940년대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서 현대말을 사용하는 건 정말 아니지 싶다.



MBC <이몽>은 임시정부 활동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데, 대사는 현대말이다. 어색하다.


감독과 작가


200억을 들였다는 작품이 왜 이지경이 됐는지 살펴봤다. 대게 사람들은 현재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과 배경을 찾고, 그 과정에서 과거와 역사를 살펴본다. 왜 이런 문제점이 도출이 됐는지 과거 사례를 참고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MBC <이몽>을 보고 이 드라마가 왜 이런지 이 과정을 밟았다. 왜 200여 억 원을 들였다는 드라마가 이렇게 됐는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자 했다.


MBC <이몽>의 작가는 조규원 씨다. 맞다. 그는 시즌 1의 성공에 힘입어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고,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배우들이 많이 나왔지만 시청률 폭망이었던 <아이리스 2>의 작가였다. 그 이후 MBC <나는 살아 있다>는 2부작 작품도 했지만,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었다.


200억을 지원받은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을 갖는 건 이 드라마를 기대하는 시청자라면 당연히 알고 싶어 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찾아봤다. MBC <이몽>의 감독은 윤상호 씨였다. 윤 씨는 과거 배우 이영애 씨의 12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던 SBS <사임당 빛의 일기> 감독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진부한 내용 전개와 배우들의 인물 설정이 미흡해 드라마 시작 전에 높은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방송 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작품이었다.


KBS <아이리스>라는 첩보 액션 드라마를 찍었던 작가와 진부한 스토리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 감독의 만남. 앞서 말한 MBC <이몽>을 보면서 들었던 의문이 바로 제작진의 연출력에 있음을 알게 됐다. 물론, 아직 4회밖에 안 된 드라마를 쉽게 단정 짓는 것은 곤란하다. 많은 회차가 남은 만큼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풀려 나갈 것인지 애정 어린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볼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도 반복되는 건 우려스럽다. 성급한 일반화는 언제든지 금물이지만, 감독과 작가가 전작 드라마에서 보여준 연출과 내용 전개가 현재 MBC <이몽> 1~4편에서 재현되고 있기에 이 드라마에 대한 걱정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앞으로 제작진은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독립운동 과정을 첩보 액션 드라마라는 장르로 제대로 보여줄 것인지, 반대로 첩보 액션 드라마에 독립운동을 소재로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제대로 잡고 연출을 할 것인지, 그래서  MBC <이몽>이 2019년을 맞아 3.1 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드라마의 취지를 잘 드러냈으면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독립운동은커녕, 첩보도, 액션도, 드라마도 그다지이다. 잘 만들어진 짜임새가 돋보이는 드라마가 아니라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명품 다큐멘터리다. 5회부터는 나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MBC <이몽>은 감독은 윤상호, 극본은 조규원이 맡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종교와 사립학교가 만났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