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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Jun 04. 2018

시사교양국이 만들면 예능도 달라진다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

정규편성에 성공한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          

기다리고 기다렸다. 할머니와 손주라는 최소 50여년 차 세대 차이를 느끼는 두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자 하는 MBC <할머니네 똥강아지>가 5월 31일 다시 시청자 곁으로 찾아왔다. 지난 두 번의 파일럿 방송 이후 대중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결국 정규편성이 됐다. 정규편성 첫 방송은 기존의 파일럿 편성을 갈무리해 앞으로 어떤 식의 방송이 있을지를 보여줬다.  < 할머니네 똥강아지 >가 정규 편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 MBC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해야 무엇을 해야 할까.   



‘시사교양국’이 만들면 예능도 달라진다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는 시쳇말로 매 순간 ‘빅 재미’는 주지 못했다. 대신 시종일관 잔잔한 웃음과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하는 재미를 줬다. 감동도 전달했다. 방송 내내 패널과 출연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순간순간 울컥거리게 했다. 누가 만들기에 웃음과 재미, 감동 이 세 박자를 다 놓치지 않았던 것일까.     


김국진, 양세형 씨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코미디언이 출연했다. 소소한 웃음과 재미를 주기에 당연히 예능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는 예능국이 아닌 시사교양국에서 만들었다. 이른바 ‘쇼양(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의 합성어)’ 시청자에게 웃음뿐만 아니라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건 시사교양 제작진 특유의 감성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로 전달한다. 감동을 전해주기 위해 제자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관찰’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맞다. 현재 리얼리티 관찰 예능에서 주로 활용되는 ‘관찰’이라는 방식은 원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시사교양 제작진은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에서 관찰했다. 기존 리얼리티 관찰 예능에서 출연자들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출연자들의 표정과 분위기 변화에 더 주목했다. 인간 내면의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MBC < 휴먼다큐 사랑 >처럼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전해주었다. 감동이 그렇게 저절로 다가왔다. ‘몸짓’을 넘어 ‘마음’을 관찰하려 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관찰’이라도 시사교양국에서 하는 것과 예능국에서하는 것은 그래서 다르다.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는 출연자들의 표정과 분위기 변화를 살피는데 중점을 뒀다


‘똥강아지’를 통해 바라본 ‘가족’     

또 가족 예능이야? 기대감을 갖고 첫 방송을 봤는데, 연예인 가족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관찰 예능이었다. 가족과 아이가 등장해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었던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현재 ‘아이’를 앞세운 리얼리티 관찰 예능이 방송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MBC도 이 분위기를 따르는 듯했다. 새로운 시도 대신 실패를 하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가족’이 출연하고,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는 기존 방송과 다르게 아이보다 ‘가족’을 강조한다. 단순히 ‘아이’를 소재로 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똥강아지’라는 더 친근하고 애정 어린 대상으로 바라본다.      


다른 리얼리티 가족 관찰 예능과는 달리,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중에게 낱낱이 공개하지 않는다. 대신 전달한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손자들의 육아를 떠맡게 된 조부모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부모가 아닌 조부모의 손에 길러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기존의 문법을 따르되 차별점을 둔 것이다. 기존 리얼리티 관찰 예능과 다른 또 다른 지점이었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는 ‘황혼 육아’가 늘고 있는 가운데,
조부모들은 법정 근로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도
최저 시급보다 적은 보상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는 우리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단순히 한 가정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주변 이웃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 방송에서 보여줬던, 화려함을 앞세운 연예인과 그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 현시대를 살아가는 할머니와 손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이'와 '가족'이라는 대세를 충분히 따르면서, 차별성을 두려는 제작진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에 출현한 남능미 씨는 우리 시대 조부모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미션을 통한 감동의 쥐어짜기      

지난 파일럿 방송과 정규편성 첫 회를 보며 한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기존 리얼리티 관찰 예능에서처럼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도 ‘아이’들에게 미션을 부여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방송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하나 인 이로운(10세) 군에게의 친형과 동갑내기 아역배우와의 삼각관계를 설정한다.     


방송은 사랑의 작대기를 긋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놀이기구를 무서워하지만 좋아하는 여성을 위해 용기를 내는 이 군의 모습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을,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 표현을 어른들의 시각으로 읽어내려 한다. 작위적이다.      


기존 방송에서처럼 제작진이 아이들에게 미션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얼리티 관찰 예능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일상’을 다루기에 자칫 지루해질 위험성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계속 보면 물리듯이 제작진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미션을 부여하여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한다.      


이것은 전혀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결국 ‘미션’은 감동을 유발하고 억지로 웃음을 짜내기 위한 인위적인 장치다. 이로운 군의 미션 수행 과정을 보며 스튜디오에 있는 어른들이 박장대소를 치는 장면을 보면 그러하다. 누군가에게 시련인 상황이 다른 누군가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려스럽다. 웃음을 얻기 위해 아이들에게 미션을 부여하는 상황 설정이 걱정스럽다. 두 번의 파일럿 방송으로 모든 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리얼리티 관찰 예능 속에서 인위적인 요소가 반복됐다. 처음엔 단순했던 미션이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졌고 여기서 웃음을 이끌어냈던 지난 프로그램들을 돌아볼 때, 지금의 걱정은 단순한 기우(杞憂)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시련이 크면 클수록,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관심과 몰입이 커진다.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 제작진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황 설정에 있어서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누구를 위한 웃음인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웃음을 얻기 위해 아이들은 오늘도 시련을 겪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때로는 알콩달콩한 해프닝을,
때로는 조손 간의 애틋함을 보여주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하고자 한다.

그동안 다양한 리얼리티 관찰 예능이 있었다. 비판의 지점은 등장인물의 지나친 ‘사생활’ 노출이었다. 출연자가 아이들일 경우 더더욱 그러했다. 대중의 관심과 함께 비판의 수위도 올라갔다. 어른들이 작성한 댓글, 악플, 허위사실에 아이들은 너무 손쉽게 노출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MBC < 할머니네 똥강아지 >를 보며, 그동안 리얼리티 관찰 예능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 본다. 단순히 웃음과 재미를 제공하는 아이가 아닌, 더 애정 어린 대상인 ‘똥강아지’로, ‘가족’이라는 이름에 더 큰 무게를 둔 방송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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