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 조PD의 비틀즈 라디오 >
남색 운동화를 신은, 푸근한 인상을 한 사람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1984년 MBC에 입사한, 올해로 34년 차인 MBC 조정선 PD를 지난 6월 27일에 만났다. 34년을 넘어 35년을 향해 달려가는 한 사람의 일생을 알 수 있었다. MBC 라디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동안 MBC 라디오가 걸어온 길을 충분히 접할 수 있었는데, 34년째 방송한 그가 새벽에 출근하고 있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방송을 새벽 3시에 하게 할까. 쑥스러워서였는지 조정선 PD는 정작 자신의 방송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끝을 냈다.
새벽 3시에 방송합니다
‘새벽 3시라니’ 귀를 의심했다. 그 시간에 누가 라디오를 들을까. 모두가 잠에 들어 있거나, 잠에 들고 있는 시각. 나처럼 불면증에 시달려 잠 못 이루는 사람 아니라면 방송을 들을 수 없는 시간에 라디오를 한다고 했다. 그것도 혼자서 연출과 DJ를 모두 다 한다 했다.
마포공동체 라디오에서 2년간 라디오 PD를 한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새벽 3시에 한다는 방송 소식에 의문이 들었다. 청취율이 얼마나 될까. 몇 % 일까. 낮게 나올 텐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호기심에 MBC ‘mini’ 다시듣기를 검색했다. ‘비틀스’라니. MBC FM4U에서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1시간 내내 오로지 ‘비틀스’ 얘기만 했다.
청취자가 적은 시간대에서 방송한다
청취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시간에 방송한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심야라면 틀림없다
조정선 라디오 PD의 실제 방송 멘트다. 파격이고 혁신이다. 다른 라디오와 달랐다. 백화점에서 물건 제시하듯이 다양한 음악을 전하는 다른 방송들과 달랐다. 이전에도 이런 방송이 있었을까.
'조PD의 비틀즈 라디오'는 양보다 질을 추구했다. 프로그램은 오직 ‘비틀스’라는 그룹 하나만을 보고 달렸다. 새벽 3시라는 시간에 깨어 있어야 하는, 사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잠 못 이루고 있는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청취자를 위해 다가갔다.
Let it be
비틀스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비틀스를 말하며, 비틀스 그룹을 패러디 한 패러디 밴드 루틀스(Rutles)에 대해,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헌정 밴드)가 발매한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살폈다. 비틀스 정규 음반에 수록되지 않아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곡 이야기, 비틀스 음악을 리메이크 한 가수들의 이야기, 렛잇비(Let it be), 예스터 데이(Yesterday) 등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비틀즈의 음악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달했다.
Get Up And Go
She Loves You
'조PD의 비틀즈 라디오'에서 ‘비틀스 오디세이’ 꼭지는 다룬다. 1950년대 중후반 비틀스가 처음 만나 음악활동하던 시기의 분위기와 상황을 전달한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비틀스가 사실상 해체를 겪는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풀어낸다.
1963년 EMI 스튜디오에 녹음된 비틀스의 네 번째 싱글 ‘쉬 러브스 유(She Loves You)’에 대한 이야기, 존 레논의 < Double Fanstasy > 앨범에 수록된 ‘스타팅 오버’(Starting Over),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이 작곡한 세 번째 싱글 ‘프롬 미 투 유’(From Me To You) 등 라디오는 비틀스의, 비틀스에 의한, 비틀스를 위한 노래로 가득했다.
Starting Over
현재 2년째 불면증이다. 운동을 하면 몸이 피곤해져 잠에 쉽게 든다고 의사가 설명했지만, 오히려 신체활동이 활발(?) 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면 금방 잠에 든다 했지만, 배만 더부룩할 뿐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의 연속. 이런 사연이 있는 내게 새벽 3시에 들을 방송이 생겼다. 바로 ‘조PD의 비틀즈 라디오’다.
본방사수하라고 차마 말을 못 하겠다. 너무 늦게 방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라디오를 듣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렵지 않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imbc.com에서 ‘조PD의 비틀즈 라디오’를 검색하면 된다. 매일 저녁 8시에 MBC 'mini'에서 전송되는 걸 다시 들어도 된다.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비틀스 음악처럼, 이 라디오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앞으로 자주 들을 예정이다. 다들 이 라디오 한 번 들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