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리뷰
그래서 왜 납치를 한 것일까. 어떤 이유와 맥락에서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 Sanchez)의 딸 칼라 캄프라(이레네 역)를 납치해, 주요 인물들의 긴장과 갈등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굳이 소녀를 납치해 과거의 진실을 말해야 했을까. 납치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었나. 영화를 보면서 그 의도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이해도 동의도 안 됐다. 시작부터 끝가지 계속 궁금하기만 했다. 이레네의 정체와 비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잘 알 수 없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볼거리는 있었다. 영화 스토리와 겉돌기는 했지만, 2008년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을 받은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의 연기는 이 작품에서도 좋았다. 2006년 제59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 Sanchez) 열연도 나쁘지 않았다. 과거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현재는 헤어져 각기 다른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이레네의 실종으로 더 돈독해진다. 헤어지고 나서도 이레네가 자신의 딸인 줄 몰랐던 하비에르 바르뎀(파코 역)은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해가며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로 등장한다. 페넬로페 크루즈(라우라 역)도 마찬가지. 두 사람의 연기는 부성애와 모성애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더 말할 게 있나. 하비에르 바르뎀이 하비에르 바르뎀 했다. 바르뎀은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상업영화, <비우티풀>이라는 영화에선 시한부 환자 연기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선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 연기를 보여준 폭넓은 연기관 가진 명품 배우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현시대 최고의 스페인 배우. 그래서 당연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출연한다는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을 보지 않을 이유,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기대치에 부응한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은 '파코'라는 인물로 변해 보여준다. 과거 사랑했던 여자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로, 현재 자신의 아내를 귀중히 대하는 남편으로, 과거 연인과의 관계에서 딸이 있었음을 뒤늦게 알고, 실종된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며 동분서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냈다. '파코'라는 인물은 하나이지만,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내의 역할을 하비에르 바르뎀은 군더더기 없이 제시한다.
페넬로페 크루즈도 마찬가지다. 2017년 하비에르 바르뎀과 영화 <에스코바르>에서 보여줬던 연기를 2019년에서도 보여줬다. 이 영화에서 마약왕으로 등장했던 하비에르 바르뎀과 마약왕의 내연녀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페넬로페 크루즈는 이번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찰떡같은 호흡을 나타냈다.
그녀는 '라우라'라는 딸로 등장, 하나밖에 없는 딸을 하루아침에 잃고 좌절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과거 연인이었던 하비에르 바르뎀(파코 역)과 친구로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비난하기는커녕 이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아내의 모습을 나타냈다. 이전 영화에서 보여줬던 뛰어난 미모는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도 빛을 발했는데, 단지 외모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연기로 영화의 흐름을 끝까지 이어갔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페넬로페 크루즈(라우라 역)가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결혼식 파티에서 딸이 괴한에게 갑자기 실종되며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동안 모른 척 쉬쉬해하던 하비에르 바르뎀(파코 역)과 라우라의 관계가 드러나며, 왜 딸이 실종됐는 지를 두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납치된 딸, 한 동네 출신 친한 친구인 줄 알았던 두 남녀가 사실 결혼을 염두에 뒀던 연인이었다는 사실, 친구의 딸인 줄 알았지만 사실 내 딸이었다는 흥미진진한 요소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었다. 흥미로운 소재들이 많았지만, 각 요소들은 따로 놀았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갈등이 정점으로 향하고, 결말에서 그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은 밋밋했다. 비밀이라고 불리는 사실들을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을 뿐 하나로 모아져 메시지도, 감동도 선사하지 못했다. 영화 시작부터 칸 영화제 개막작이라는 정보에 기대치가 높았던 것과 무관하게 영화는 스토리가 엉성했다.
스토리 짜임새가 헝거운 가운데,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메시지 없이 전진하기만 했다. 왜 딸이 납치당해야 했는지, 왜 하필 괴한들이 딸을 납치했어야 했는지, 그래서 왜 다른 실종자들과 달리 돈만 받고 살려준 것인지, 영화에서 하비에르 바르뎀(파코 역)과 페넬로페 크루즈(라우라 역) 동분서주한 모습만 보여줬을 분, 이 영화의 최대 갈등이자 결정적 요소인 라우라의 딸 칼라 캄프라(이레네 역)의 납치와 실종, 그리고 생환에 대해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라는 두 명품 배우의 연기만 있었을 뿐, 스토리도, 메시지도, 감동도 거의 느낄 수 없는 영화였다. 영화의 시간은 흘러가는데 내용은 정체되어 좀처럼 뻗지 못하고, 스토리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고의 배우들을 모셔다 놓고,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영화 그 자체였다. '누구나 아는 비밀?' 그게 뭐 어떻다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영화,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이 컸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