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롱 샷> 리뷰
빠진다. 배꼽 빠지게 웃긴다. 말장난이 극한으로 달리며, 소위 말하는 골 때리게 웃긴다. 현란한 '혀'의 드리블은 주연과 조연 가릴 것 없이 반복된다. 연신 터지는 웃음. 그런데 웃음이 반복되면서 동시에 조금씩 불편해진다. '이런 게 미국 유머인가', '정말 재미있어서 다들 웃고 있는 건가'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누군가는 재밌다고 박수를 치는데, 누군가는 '어우'라며 탄성을 내뱉는다. 같이 함께 영화를 본 인물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웃음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영화 <롱 샷>이 바로 그렇다.
예쁘지 않다. 아름답기 짝이 없다. 단순히 예쁘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고급스럽다. 영화 <롱 샷>의 여성 주인공 샤를리즈 테론이 그렇다. 압도적인 미모로 시선을 사로잡고, 수준 높은 연기력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샤를리즈 테론(샬롯 필드 역)은 한 나라의 국무장관이자, 차기 대선주자로, 동시에 몰래 사랑을 즐기는 여성으로 등장, 시종일관 남자 주인공인 세스 로건(프레드 플라스키 역)과 좌충우돌 러브 코미디를 펼친다.
없다. 영화 <롱 샷>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보여준 모습인 이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2017년 영화 <아토믹 블론드>에서 암살자로 보여줬던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2015년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보여줬던 여성 전사로서의 강렬함과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카리스마와 리더십은 2019년 영화 <롱 샷>에서 웃음과 재미, 아름다움으로 완전히 치환되어 전혀 다른 역할과 인물의 모습을 표출됐다.
어떤 옷도 소화할 수 있는 자태, 단지 아름답고 고고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충분히 망가질 수 있는 능청스러움, 재치 있는 언변과 행동의 연속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팔색조'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 영화들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 변신은 이번 영화에서도 멈춤이 없음을 나타냈다. 전진이고 진보였다. 샤를리즈 테론은 사기(史記)의 상여전(相如傳) 나오는 '완벽(完璧)'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완전무결한 흠이 없는 연기를 보여줬다.
모른다. 잘 몰랐다. 영화 <롱 샷>을 보기 전까지 '세스 로건'이라는 배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찾아봤다. <롱 샷>에서 보여준 넉살과 뻔뻔함에 반해 과거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배우로서 어떤 연기 행보를 보였는지를 따라가 봤다. 찾아본 결과 대다수의 작품에서 재미있고, 재치 있는 웃음을 담당하는 역할을 소화한 배우였다. 특히, 영화 <쿵푸팬더> 시리즈에서 쿵푸팬더 5인방 중 하나인 '맨티스'의 목소리가 바로 세스 로건이었다.
대부분 코미디 영화에 출연했던 그의 연기는 이번 <롱 샷>에서 정점을 찍은 듯했다. 처음 본 배우였으나 능수능란했다. 조연 배우들과 주고받는 말장난의 향연은 마치 스페인 프리메라리의 FC바르셀로나의 축구 경기를 보는 듯했다. 짧은 패스를 빠르게 주고받으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 경기를 장악하는 축구 경기 전술인 '티키타카(tiqui-taca)'가 연상됐다. 세스 로건은 주조연 배우들과 대사와 말로, 행동 대 행동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웃음으로 점철된 연기를 보여줬다.
샤를리즈 테론과 세스 로건의 결합은 훌륭했다. 시쳇말로 '케미(chemistry의 준말)'가 돋보였다. 두 사람의 연기가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켰는데, 썩 괜찮은 폭발력을 보여줬다. 샤를리즈 테론은 그동안 전작에서 보여줬던 무겁고, 어두우며, 냉정한 연기에서 벗어나 가볍고, 밝으며, 따뜻한 연기도 가능함을 여실 없이 보여줬다. 세스 로건은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로 관객에게 다가갔던 모습에서 벗어나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기라성 같은 배우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연기 호흡을 드러냈다. 이른바 '환상의 조합'. 그래서 영화는 치닫는다. 지루할 틈 없이, 배꼽 빠지게 웃음을 선사한다.
영화 <롱 샷>은 배경으로 한다. 전직 기자였던 세스 로건(프레드 플라스키 역)이 어느 날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평소 비판하던 미디어 재벌의 기업에 자신이 몸 담던 언론사가 병합되면서 잘리게(?) 된다. 졸지에 백수로 살게 되는데, 20년 만에 13살일 때 자신의 보모였던 샤를리즈 테론(샬롯 필드 역)과 만나게 된다. 최연소 국무장관에 캐나다 남성 총리와의 염문, 차기 대권 주자인 샬롯 필드를 행사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샤를리즈 테론(샬롯 필드 역)은 고민점이 하나 있었다. 카리스마, 인지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대중이 자신을 '웃음' 분야에서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다 평소 세스 로건(프레드 플라스키 역)이 독특한 언행, 욕설과 독설로 독자를 사로잡았던 점에 주목하며, 그를 자신의 선거 캠페인 연설문 작가로 고용하게 된다. 우연치 않은 만남은 베이비 시터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로 이어져 대중의 지지와 환호를 받게 된다. 인기에 힘 입어, 샬롯 필드와 프레드 폴라스키는 뜨거운 사랑을 시도 때도 없이 나누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영화 <롱 샷>은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좌충우돌 비밀 사랑 이야기를 웃음과 재치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이 유쾌함은 시종일관 불편함을 근간으로 한 웃음이었다. 처음에 소소한 재미를 제공했던 웃음은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무시하고, 혐오하며, 차별하는 내용에 뿌리를 두고 펼쳐지기 시작했다. 특히, 혐오적 표현은 영화 <롱 샷>의 마지막 부분에서 샤를리즈 테론(샬롯 필드 역)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는 상황에서 정점을 찍었다. TV 쇼에 출연한 두 남성 출연자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여성 대통령이) 생리하는 날 백안관의 빨간 버튼을 누를 수 있겠냐"는 농담이 그러했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 현실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연상케 했다. 영화 <롱 샷>은 트럼프가 대통령 되기 전에 했던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인 언급을 풍자하고자 한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풍자와 반어법이 실패할 경우 처참한 결과와 분위기를 가져오기에 아예 하지 말았어야 될 대사였다. 안 하는 것보다 못했고, 전혀 공감할 수 없는 풍자와 반어, 해학이었다. 특히, 이 장면에서 남성들이 웃고 떠들며 주고받는 대사는, TV 쇼 여성 출연자가 앉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선 것처럼, 영화를 보다가 불편한 마음에 저절로 엉덩이를 들썩이게 했다. 이것이 미국식 풍자(?)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여성에 대한 혐오는 웃음 소재로 다루지 말았어야 될 소재였다.
사실 불편했던 마지막 부분은 앞선 부분에서 이미 충분히 다했었다. 하지 말았어야 될, 이전에 멈췄어야 될 부분이 후반부에 반복됐다. 영화 <롱 샷>은 중간 부분에서 세스 로건(프레드 플라스키 역)이 자위를 하는 부분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비사실적으로 표현했었다. 이 장면 묘사가 지나쳐 영화관에서 이 장면을 함께 보던 이들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탄식을 했던 순간을 볼 때, 영화는 웃음을 주기 위해 지나치게 무리수를 연발했다. 한 번만 해도 문제였는데, 반복되는 미국식 웃음(?)과 유머 코드(?)는 전혀 알고 싶지 않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인상을 남겼다.
불편함이 거북함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연속은 아무리 이 영화가 미국 영화이고, 내용 중 일부의 개그가 외국식 유머라는 점을 고려하고 보더라도 영화를 몰입하는데 방해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성적 행동을 지나치고, 과도하게, 비현실적이고, 비사실적으로 묘사해 희화화 했다. 여성성에 대해 혐오적으로 묘사하여 거북함과 불쾌함을 넘어 노여움으로 이어지게 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비하하여 이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음의 유무를 떠나, 옳고 그름의 관점, 맞고 틀리냐의 여부, 같고 다름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더라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웃음도 많이 줬지만 영화 <롱 샷>은 불쾌함도 같이 줬다.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웃음을 주는 대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영화 <롱 샷>은 핵꿀잼과 핵케미가 돋보인 유쾌한 영화지만 동시에 핵불편함도 같이 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7월 24일에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