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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Jul 08. 2019

'참여'와 '연대'에 대하여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리뷰

※ 스포일러가 매우 조금 있습니다.


느낌과 인상


코미디인데 코미디가 아니다. 웃고 있지만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을 보면 그렇다. 우당탕탕, 각기 다른 상처들을 가진 남자들이 모여 펼치는 웃음의 향연은 마치 종영된 MBC 예능 <무한도전>을 보는 기분을 들게 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인 남성들이 만들어 가는 모 방송국의 웃음의 파티가 그대로 프랑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로 옮겨 놓을 듯했다. 때로는 배꼽 빠지는 웃음을 주고, 때로는 눈물 쏙 빼는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그 예능을 영화관에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게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의 인물구조와 갈등이 MBC 예능 <무한도전>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마티유 아말릭(베르트랑 역)은 장기간의 백수 생활을 겪고 있는 가장으로 등장한다. 시리얼에 다량의 알약을 타 먹는 인물로, 아내가 돈을 더 버는 일반적(?)이지 않은 남편과 아버지로 묘사된다. 기욤 까네(로랑 역)는 가족 간 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려지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그러했다. 소통 대신 불통인 모습은 <무한도전>의 누군가와 닮은 듯했다. 


이 둘만 그런 게 아니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각자 다른 '결핍'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상처를 갖고 있지만, 치유할 능력도, 마음도 없다. 자신들을 루저(looser, 패배자)로 생각해 패배감에 쌓여 있고, 그래서 늘 우울증이다. 뭐만 하자고 하면 불평과 불만이 먼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 하나하나의 모습은 평균(?)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물 궁상이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웃음으로 풀어냈다.


그런데 무언가 하나씩 부족한 사람들,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니고 있는 인물들은 '수중발레'라는 스포츠 아래로 우연히 모이게 된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은 찾는 것처럼, 정서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이들이 택한 곳은 수영장이었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처음 만남부터 까칠한 코치였던 버지니아 에피라(델핀 역)를 만나 그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어했던 이들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모습을,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이들이, 앞으로 어떤 것도 해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좌충우돌 사건의 묶음이었다. 


없다. 이 영화엔 TV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잘 생긴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근육질 몸매와 각 잡혀 갈라진 근육과 터질 것 같은 힘줄을 뽐내는 수컷은 찾아볼 수 없다. 각진 사각형 몸매 대신, 울퉁불퉁한 동그라미 육체가 있을 뿐이었다. 배불뚝이 아저씨, 곧 배가 부를 것 같은 중년의 남성이 주로 등장, 자존감과 자신감이 밑바닥 처지에서 위로 올라오는 구성과 인물 설정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태가 실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과 닮아 있어서 괜찮았다. 단순히 육체적인 조건을 넘어, 장기간의 경기 침체와 지속적인 실업으로 고통받는 중장년층 남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신세한탄만 하고 자포자기하는 대신, 뭐라도 해보려는 우리 주변의 이웃을 보는 거 같아 동질감과 공감이 형성됐다. 영화를 보며, '아, 프랑스도 저렇구나' 하는 인상을 남겼는데, 사람 사는 곳은 매 한 가지다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그리고 메시지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메시지를 던진다. 파편화된 일상을 넘어 조각조각 나눠져 가루가 돼버린 삶에서 개별화된 인간들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지를 말한다. 위기가 지속되고 위험이 내재화된 삶 속에서 각자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지를 드러낸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 등장하는 남자들이 함께 '수중발레'라는 스포츠를 통해, 상황이 안 좋아지면 안 좋아질수록 각을 세우는 것 대신 둥글게 모여야 함을, '배제'와 '분류'가 아니라 '연대'하고 '동참'해야 함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친절하게 보여줬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지만 영화적 상황은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었다. 단지 유사하다는 상황을 넘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서도 그리고 그 과정과 해결책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영화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극복하는데 시종일관 웃음과 블랙 코미디로 관객을 압도했다. 


그래서일까.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를 보며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 반복되고 있는 사회적 부조리와 비합리적인 문제를 풀어가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거창하고 거대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의 소통이라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함을 느끼게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데 앞장서지 말고, 위기의 순간일수록 오히려 웃음을 내세워야 함을 생각하게 했다. 단지 영화에서 그치고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말해 주는 듯했다. 바로 '웃음'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지친 일상에서 웃음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영화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첫 단추가 무엇인지 말해 주는 재기 발랄한 영화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갈수록 척박해지는 시대에 '참여'와 '연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8.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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