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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Jul 07. 2019

밝고 건강한 웃음, 그리고 업(業)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리뷰

※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버텨낼 수 있을까. 영화를 보기 전 업무로 인한 피로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영화는 시작도 안 했는데, 졸음은 눈꺼풀 위를 짓누르고 있었다. 상영 시간이 다가 올 수록, 피곤함으로 제대로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은 달랐다.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과 분위기, 배우들의 재치 있는 말고 행동으로 졸릴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남자 주인공 다누쉬(파텔 역)의 밝고 건강한 전달력, 주조연을 가릴 것 없이 각 역할에 딱 맞는 배역 설정, 효과적인 BGM과 볼거리가 넘쳐나는 장면의 향연은 영화에 몰입하게 했다. 다누쉬(파텔 역)가 유럽 5개국을 드나들며 여기서 자충우돌 겪는 이야기들은 마치 1994년 영화 <포레스트 검프>와 이 영화의 주인공 톰 행크스(포레스트 검프 역)를 저절로 떠올리게 했다. 피곤함을 웃음으로 전환시킨 이 영화는 어떠했을까.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의 남자 주인공 다누쉬(파텔 역). 인도의 국민배우라고 한다.


기(起)


프랑스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나온 다누쉬(파텔 역)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동경한다. 길거리를 지나치다가 마주친 남성들을 보며, 어머니에게 "아버지냐"라고 매번 확인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평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아버지의 나라인 프랑스를 방문하게 하는 결심을 굳히게 한다. 어렸을 적부터 가구에 관심이 많았던 다누쉬(파텔 역)는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가구 전문매장인 '이케아'를 방문하게 된다. 어머니의 유품을 이케아 장식품에 고이 모셔놓고, 진열된 침대 위에 누어보고, 가구들을 직접 만져보며 행복에 빠지게 된다.


다누쉬(파텔 역)는 이케아 매장을 방문, 그곳에서 운명처럼 에린 모리아티(마리 역)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가구를 만지는 건 작은 행복에 불과했다. 다누쉬(파텔 역)는 이케아 매장에서 운명처럼 에린 모리아티(마리 역) 만나, 앞선 경우보다 더 큰 행복에 빠지게 된다. 운명의 이끌림이었을까. 처음 본 낯선 여인인 마리에게 파텔은 지속적으로 말을 건다. 이른바 '작업'. 마리와 자신이 가구 매장에 들린 부부인 것처럼 말을 걸고 행동을 취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처음엔 짐짓 점잔을 빼던 마리도, 파텔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재치에 결국 마음에 문을 열게 된다. 서로에 대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는지 매장에서 이렇게 만날 것이 아니라 다음날 에펠탑 아래에서 단 둘이 따로 만나기로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처음 방문한 나라에서 첫눈에 한 여성에게 사랑에 빠졌지만, 운명은 이들을 쉽게 만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비행기 티켓과 사기꾼에게 속아 위조지폐 하나만 달랑 들고 온 다누쉬(파텔 역)는 사실 묵을 곳이 없었다. 빈털터리 신세인 파텔은 대신 이케아에서 잠을 청한다. 어머니의 유골을 이케아 장식품에 담아 놓고, 자신은 이케아 옷장에 몸을 구겨 넣으며, 내일 그녀를 만날 생각에 꿈속으로 빠진다.


마리는 파텔을 만나려고 에펠 탑 앞에서 기다렸지만 바람을 맞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런데 이 이케아 옷장이 공교롭게 해외로 팔려나갈 가구였다. 옷장에서 자고 있던 파텔은 그렇게 함께 실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향하게 된다. 옷장과 함께 트럭 위에 실린 파텔은 트럭 안에서 유럽으로 밀입국하는 난민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과 함께 도망치던 파텔은 '진짜'여권이 있었음에도 '위조' 여권으로 간주되어, 공항에 강제로 억류되게 된다.



승(起)


엿본다. 다누쉬(파텔 역)는 틈틈이 도망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직원들이 드나드는 문을 예의 주시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그 문이 열렸는지를 확인한다. 시도에 시도,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일까. 비록 공항에서 억류된 난민(?) 신세였지만,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던 파텔의 노력은 결국 하늘에 닿았다. 평소 확인할 때마다 굳게 잠겨 있던 문이 어느 날 열려 있었고, 그 문은 비행기 화물을 수송하는 컨테이너 벨트로 이어져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사람의 짐 가방에 파텔은 다시 몸을 구겨 놓고 비행기에 실리게 된다.


그렇게 도착한 이탈리아. 다누쉬(파텔 역)가 몸을 구겨 넣었던 짐 가방은 사실 영화배우 베레니스 베조(넬리 마네이 역)의 짐이었다. 까칠하고 예민한 그녀가 샤워를 하려고 할 때, 파텔의 존재가 발견되어 짧은 해프닝을 겪지만, 넬리는 파텔이 자신의 짐 꾸러미에서 파텔의 상의에 직접 적은 이야기 내용에 감동받아 의지하는 친구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파텔의 이야기에 십분 공감한 넬리는 자신의 허물을 털어놓고, 파텔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진짜 사랑을 찾아 떠나게 된다.


다누쉬(파텔 역)과 베레니스 베조(넬리 마네이 역)는 허물을 털어놓는 사이로 발전, 결국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방향을 선택하게 된다.



전(轉)


베레니스 베조(넬리 마네이 역)는 영화배우로서의 삶 대신, 잃어버렸던 자신의 진짜 사랑을 찾아 떠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넬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인물의 관심을 이용, 자신이 감명받았던 다누쉬(파텔 역)의 이야기가 적힌 옷을 10만 유로에 팔리게 한다. 갑작스럽게 10만 유로를 얻게 된 파텔. 하지만 행복의 순간은 잠깐이었다. 10만 유로 가치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이들의 추격을 받게 된 파텔은 이 돈을 가지고 도망치게 된다. 그러다 신혼부부들이 사용하려고 묶어 둔 열기구에 몸을 싣게 되고, 추격을 따돌리게 된다.


한 번이면 족할 운명의 장난은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연료 부족과 파텔의 조작 미숙으로 열기구는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대형 선박에 떨어지게 된다. 거기서 만난 선장과 선원들을 파텔의 10만 유로를 강탈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돈이자,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일게 된 파텔은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리비아에 도착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잃었다가, 모든 것을 가졌다가, 다시 모든 것을 잃게 된 파텔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케아 가구에 실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동될 때, 만났던 난민이었다. 파텔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구해주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었던, 같이 탈출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던 난민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난민을 만난 파텔은 이들의 도움을 통해 빼앗겼던 10만 유로를 다시 되찾게 된다. 집으로 돌아갈 돈을 마련하게 된 파텔. 그런데 파텔은 이 돈을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쓸 수 있음에도 쓰지 않는다. 아버지를 동경하며, 만날 날을 매일매일 꿈꿨지만, 정작 만날 돈이 없었던 자신을 생각하며, 꿈은 있으나 금전적인 이유로 꿈에 다가설 수 없는 난민들에게 돈을 나눠준다.


인도에서 프랑스, 프랑스에서 영국, 영국에서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 리비아로 파텔은 이동을 거듭한다.



결(結)


우여곡절을 겪으며 파텔은 자신의 몫만 챙겨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에펠탑 위를 올라가 종이비행기를 던진다. 어머니가 전해 준 몇 안 되는 아버지의 말 중"에펠탑에서 종이비행기를 던지면, 언제나 마중 나가겠다"는 문장을 직접 실천한다. 종이비행기는 그렇게 날고 날아 아버지의 무덤 위에 착륙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평생 동경하고, 그리워하던 파텔의 여행도 종이비행기의 착륙과 함께 마무리된다.


시장터에서 눈속임으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었던 파텔은 이케아에서 시작, 프랑스를 거쳐 다시 인도로 돌아오는 여행에서 자신의 '카르마(Karma)'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업()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발견,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길거리의 마술사에서 탈피,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메시지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는 '운명(運命)'에 관해 이야기한다. 운명은 사전적 의미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결정"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 운명에 대해 말한다. 영화에서 보여줬던 수많은 우연(偶然)적 요소를 통해, 한 개인이 단순히 운명을 따르며 살 것인지 아니면, 따르지 않고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다. 자신의 궁핍한 현실을 개척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바다를 건너온 리비아 난민을 통해, 영화배우로서 화려한 삶 대신, 자신의 진짜 사랑을 위해 나선 영화배우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여러 나라를 떠돌았던 파텔을 통해 영화는 '업(業)'인 '카르마(Karma)'에 대해 질문한다. 


본의 아니게 파텔에게 바람맞았던 에린 모리아티(마리 역)는 결국 파텔을 찾아 인도에 도착하게 된다. 학교에서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파텔은 단숨에 그녀를 알아보고 뜨거운 키스를 하게 된다. 사실 이러했다. 파텔이 인도-프랑스-영국-이탈리아-리비아-프랑스-인도를 돌고 돌 때, 옛 남자를 있지 못했던 마리는 파텔을 만나기로 한 날 파텔 대신 새로운 남자를 만났고, 그와의 사랑이 끝나자 다시 돌고 돌아 파텔에게로 온 것이었다. 진짜 인연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진짜 인연은 따로 있다'는 것을 파텔과 마리는 자신들의 삶과 행동을 통해 영화에서 보여줬다.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한 영화이지만 동시에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누군가에게, 아니면 무엇인가에 이끌려 가는 삶을 살 것인지, 고되고 힘들더라도, 설령 죽음에 이르더라도 끝까지 스스로 선택할 삶 것인지 아닌지를 묻는 영화다. 인도를 배경이자 소재로 한 영화답게 화려한 음악과 춤도 등장하며, 원색(原色)을 바탕으로 한 미적 아름다움도 같이 맛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개봉은 2019년 7월 18일. 개봉일에 안 보고 누군가의 평을 먼저 듣고 보면 온전한 몰입을 방해당할 수 있을 만큼 만듦새가 돋보인 영화다.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는 어떻게 살 것인지 삶의 태도에 대해 묻는 영화다.


  

#7.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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