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드런 액트> 리뷰
'엠마 톤슨이 엠마 톤슨 했다.' 영화 <칠드런 액트>를 본 단상이다. 영화에서 그녀(피오나 역)가 보여준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발성과 목소리의 높낮이, 영국식 발음과 어투, 얼굴 표정과 손짓 등 엠마 톤슨의 움직임 한 번에 눈과 귀가 저절로 따라갔다. 특히, 영화 <칠드런 액트>에서 엠마 톰슨은 섬세함도 돋보였다. 그녀가 쓴 안경, 몸에 걸친 옷과 액세서리는 '여성 판사는 아마 저럴 거야'라는 인상을 감하게 남겼다. 영화에서 그녀가 직접 부른 노래와 피아노 연주는 지적미와 함께 한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의 모습이 어떠한 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강렬했다. 그래서인지 영화 <칠드런 액트>에서 엠마 톤슨의 연기는 우아하고,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아닌 우아 '그 자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풍경, 말로만 듣던 영국 도시인 '뉴캐슬'이라는 곳의 경치와 분위기가 그녀의 연기와 한 데 어우러져 어색함 없이 내내 자연스러웠다. 엠마 스톤의 명연기 때문에 영화의 주된 갈등 요인인 '딜레마'라는 선택의 기로에 있는 인물과 인물 간의 갈등을, 상황과 상황의 충돌을 물 흐르듯이 볼 수 있었다.
영화 <칠드런 액트>에서 엠마 톤슨(피오나 역)은 법원의 판사로 나온다. 엠마 톤슨(피오나 역)은 법의 수호자이자 심판자로서, 남다른 카리스마를 드러내며, 판결로 대중을 압도한다. 한 몸통에 머리가 둘인 샴쌍둥이를 두고 어떤 아이를 살려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 장면이 특히 그랬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복선(?)으로 보였는데, 엠마 톤슨(피오나 역)은 냉정한 결정을 내리는 장면에서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법의 집행을 통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도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판겨을 내린다.
좋았다. 영화 <칠드런 액트>의 초반부는 엠마 톤슨(피오나 역)이라는 인물에 최대한 중점을 두며, 이 인물의 역할과 설정에 많은 시간과 공을 할애한다. 이 기대에 부응하듯 엠마 톰슨은 '판사는 이런 것이다', 특히 '여성 판사는 이렇다'라는 점을 감추지 않고 뿜어낸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은은하게, 영국식 어투와 목소리, 감정의 전달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영화 <칠드런 액트>에서 핀 화이트헤드(애덤 역)는 '여호와 증인'으로 태어나고 자란 인물이다. "수혈을 금지한다"는 종교적 이유로 제 때에 치료받으면 제대로 살 수 있는, 심하게 고통을 받지 않으며 죽을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핀 화이트헤드는 처음엔 미성년자로 등장, 여호와 증인인 부모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삶과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핀 화이트헤드(애덤 역)의 생명을 두고, 그의 부모와 병원이 갈등하게 된다. "수혈하면 살릴 수 있다", "이대로 두면 아동학대다"라는 병원 측과 "종교적 신념 때문에 거부한다"는 부모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결국 이 문제는 법원의 결정으로 맡겨지게 된다. 엠마 톤슨(피오나 역)은 이 논란을 종지부 시킬 판사로 등장하게 되는데, 다른 판결과 달리 엠마 톤슨은 이 사건의 결정에 앞서서 해당 인물을 직접 보고 하겠다고 하고, 그렇게 핀 화이트헤드를 병원에서 만나게 된다.
생사의 기로에서 우연 같은 만남이 그렇게 이뤄지게 되고, 가정법원의 판사인 엠마 톤슨(피오나 역)과 핀 화이트헤드(애덤 역)는 짧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하지만 이 둘의 순간적 만남은 깊은 교감을 갖게 하고, 결국 이후 두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판사로서 엠마 톤슨은 "존엄성"과 "생명"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생명"을 우선시하는 판결을 하게 되고, 핀 화이트헤드의 삶도 바뀌게 된다.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이었을까. 결국 영화 <칠드런 액트>는 핀 화이트헤드(애덤 역)를 통해 말한다. '종교'와 '생명' 중 어느 것이 중한지 관객에게 묻는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종교적 신념을 수호할 것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 중간중간 엠마 톤슨(피오나 역)이 연기하는 판사의 판결 과정에서 관객도 함께 해당 사건을 같이 고민하게 하는 것처럼 '종교'와 '생명' 중 무엇이 중요한지, 딜레마적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묻는다.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 청년 핀 화이트헤드(애덤 역)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마치 신(神)처럼 절대적인 존재였던 부모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고민에 고민,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자 핀 화이트헤드는 엠마 톤슨(피오나 역)을 무작정 찾아가는데, 그의 모습은 마치 신에게 새로운 삶은 부여받은 존재 그 자체였다.
절대자에서 다른 절대자로. 이전의 삶은 '여호와 증인'이라는 종교가 문제를 푸는 열쇳말이었지만, 새 생명을 얻은 이후의 삶은 '피오나'라는 이름으로 갈음됐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핀 화이트헤드(애덤 역)는 병실에서 병약한 모습에서 탈피, 뉴캐슬이라는 도시를 혼자 방문할 정도로 활기찬 삶을 보낸다. 이 정력적인 활동은 끝내 피오나의 입술이 입을 맞추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 계기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욱 끈끈하게 이후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엠마 톤슨(피오나 역)의 삶도 흔들린다. 고요하고 정적이 흐를 것만 같았던 그녀의 마음에 감정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이른바 파문(波紋). 마지 조용한 호숫가에 돌멩이가 떨어진 뒤 잔잔히 퍼지는 물결처럼, 평소 이성적이고 냉정함의 대명사였던 그녀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감정이 핀 화이트헤드(애덤 역)라는 젊은이를 만나고 난 뒤 변하게 된다.
죽음. 하지만 핀 화이트헤드(애덤 역)는 엠마 톤슨(피오나 역)으로 결국 구원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죽음이었다.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인물이 엠마 톤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로부터 거절당한 핀 화이트헤드는 그녀를 만나기 전 삶, 아니 그보다 더 못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결국 죽음의 문턱에 오르게 된다. 마치 구도자를 잃고 길 위를 헤매는 양처럼, 자신의 삶을 추스르지 못한 채 삶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투박했다. 영화 <칠드런 액트>의 스토리는 거칠했다. 엠마 톤슨이라는 인물만 보면 나무랄 곳이 없었는데, 영화의 전개는 불친절했다. 특히,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핀 화이트헤드(애덤 역)와 엠마 톤슨(피오나 역)의 감정선은 너무 단조로웠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이 갈등이 두 사람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래서 어떤 변화를 각각 이뤄내는지, 더 밀접하게 드러냈어야 했는데, 밋밋했다. 스토리는 두 인물의 구도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치밀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두 인물의 심리와 감정은 좀 더 더 얽히고설켜야 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더욱이 엠마 톤슨(피오나 역)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스탠리 투치(잭 역)의 존재감이 영화 내내 아쉬웠다. 아내를 도와주는 조력자인지, 단지 이 영화에서 무거운 분위기에 유머를 던지는 방관자인지 그 분량과 비중이 너무 아쉬웠다. 선택의 기로에선 엠마 톤슨(피오나 역)에게 사건의 실마리와 해결책을 제공하는 조언자라든지, 조강지처를 버리고 바람을 핀 뒤, 삶의 통찰을 얻은 찌질한(?) 남편인지, 아니면 다른 역할을 가진 모습을 정확히 보여줬어야 했는데, 불분명했다.
영화 <칠드런 액트>는 '선택'과 '책임'에 대해 말한다. 영화의 주된 무대였던 법원에서 이뤄지는 '판결'이 단지 사람이 사람에게 내리는 처벌이라는 성격을 넘어, 개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한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누구나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 결정이 누군가의 인생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영화다. 피할 수 없는, 피해서도 안 되는 선택과 책임의 무게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그래서일까. 스토리 전개는 투박하지만, 엠마 톤슨(피오나 역)의 명품 연기에 선택과 결정, 책임이라는 단어가 든지는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누구나 한 번쯤 봐도 무방한 영화다.
※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는 1989년 제정된 영국의 유명한 ‘아동법’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법정이 미성년자(아동)와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6.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영화 <칠드런 액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