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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Jun 19. 2019

두 주인공의 뛰어난 연기, 영화 <갤버스턴>

복선과 메시지 전달의 아쉬움


※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그동안 잘 몰랐는데, 잘 알게 됐다. 영화 <갤버스턴>을 보고 밴 포스터(로이 역), 엘르 패닝(로키 역)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매우 잘 확인할 수 있었다.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밴 포스터 매력적인 목소리와 연기력은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하게 했다. 배우 타코타 패닝의 여동생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연기만큼은 타코타 패닝을 넘어서는 배우임을 스스로 증명한 엘르 패닝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남녀 두 주인공이 수준 높은 연기력을 맘껏 뽐냈던 영화 <갤버스턴>. 영화의 주요 내용은 어떠했을까.



기(起)


영화 <갤버스턴>는 시작한다. 밴 포스터(로이 역)가 의사로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에서 발걸음을 뗀다. 거친 기침을 연신 내뱉고, 심지어 피를 토하는 상황에서  밴 포스터는 살인 청부 의뢰를 받는다. 영화 <갤버스턴>는 밴 포스터가 어차피 곧 죽을 운명(?)이라는 묘한 분위기를 드러내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남자의 뒤가 없이 앞만 보고 직진하는 거친 삶을 보여준다. 밴 포스터는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죽이려 한다.


영화 <갤버스턴>에서 밴 포스터의 연기력은 압권이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갤버스턴> 스틸 이미지)


하지만 함정이었다. 왜 의뢰자가 덫을 놨는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살인을 하러 들어간 집에서 이미 누군가가 밴 포스터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밴 포스터는 함께 간 이와 붙잡혔고, 동료의 처참한 죽음을 보며 기회를 노리던 찰나, 밴 포스터는 기지를 발휘해 죽음의 문턱에서 탈출한다. 이때 만난다. 자신보다 먼저 묶여 있던 엘르 패닝(로키 역)을 만나 함께 탈출한다.



승(承)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함께 한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그들의 행보는 거칠고 투박하다. 뭐하나 순탄한 게 없다. 처음 본 두 사람의 낯선 동행. 엘르 패닝(로키 역)은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와야 한다"며, 두 번 다시 찾지 않겠다던 자신의 집을 방문하자고 한다. 어차피 계획도 없는 인생이었기에, 죽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상황이었기에,  밴 포스터(로이 역)는 마지못해 운전대를 고쳐 잡는다.


엘르 패닝(로키 역)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HELL IS REAL(지옥은 존재한다)"라는 입간판을  뒤로하고, 밴 포스터(로이 역)와 엘르 패닝(로키 역)은 도착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총성이 한 방 울린다. 엘르 패닝은 여동생을 이끌고 차에 황급히 올라탄다. 연신 터지는 욕지거리. 처음 만난 세 사람의 어색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아무런 대책도, 대안도, 목적도 없는, 죽음의 문턱에서 만나기 전까지 인생의 교집합이라곤 1도 없는 이들의 지옥 탈출기는 투닥거리며 진행된다.


영화 <갤버스턴>에서 엘르 패닝(로키 역)의 수준 높은 연기가 돋보였다.



전(轉)


폐가 심하게 손상되어 내일이 없는 밴 포스터(로이 역)는 모텔에 엘르 패닝(로키 역)과 그 여동생을 두고, 자신의 전 여자 친구를 찾아 나선다. 죽음을 앞에 둔 자의 회개일까. 11년 만에 만난 전 여자 친구는 냉랭하기 짝이 없지만, 밴 포스터는 그녀와 나눴던 과거의 진한 사랑을 기억하고 있음을, 감옥에 가느라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부덕함을 전한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진심을 말한다. 죽음을 앞두고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람처럼, 사랑 앞에 자신의 지난 잘못을 고한다.


쓸쓸하게 지나 간 사랑과 작별 한 뒤, 모텔로 돌아온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미 눈치를 챘다. 모텔에 들어설 때부터 여주인은 이들의 관계가 평범한 관계가 아님을, 가족이라고 설명했던 밴 포스터(로이 역)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여주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이들을 지켜보던 다른 투숙객이 엘르 패닝(로키 역)이 그녀의 여동생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남성을 죽였음을 신문기사로 파악한다. 결국 강제로 고백하게 된다. 엘르 패닝(로키 역)은 밴 포스터에게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알렸던 아이가 사실은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임을, 그래서 이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이자 딸의 아버지를 죽였음을 말해준다.


모두가 진실을 알아 버린 상황, 자신이 그동안 솎았다는 점을 알았던 밴 포스터(로이 역)는 엘르 패닝(로키 역)을 비난하지만 이들을 버리지 못한다. 나아가 저지른다. 밴 포스터와 엘르 패닝의 관계를 알아버린 투숙객의 협박(?)을 죽음으로 되돌려 준다. 엘르 패닝(로키 역)의 '여동생'이 아니라 '딸'이라고 밝혀진 아이를 이전보다 더 보살핀다.


영화 <갤버스턴>은 엘르 패닝(로키 역)과 밴 포스터(로이 역)의 연기 궁합이 뛰어났다


그래서일까. 청부살인을 실패했지만, 이 과정에서 얻은 의뢰자의 중대한 비밀을 볼모로 거액을 요구한다. 이유는 이렇게 풀이된다. 밴 포스터(로이 역)는 자신은 비록 죽을 운명이지만  엘르 패닝(로키 역)과 그녀의 딸이 재기하기 바라는 마음에 의뢰자를 협박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온전한 삶을 이들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 의뢰자의 답변과 돈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은 잠시뿐이었다. 의뢰자의 추적으로 밴 포스터(로이 역)와 엘르 패닝(로키 역)은 역으로 납치를 당한다. 아이는 모텔에 홀려 남겨진 채.


영화는 시작하여 중반을 거쳐 후반부로 달리면서 일관되게 보여준다. '마초'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밴 포스터(로이 역)의 선 굵은 연기, 빼어난 미모도 미모이지만, 연기 수준이 상당히 높은 엘르 패닝(로키 역)의 활약이 내내 돋보인다. 남녀 주인공의 연기가 한 데 어우러져 영화 <갤버스턴>은 나타낸다. 죽음을 앞둔 청년의 거친 행보에 대해, 가정폭력과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된 한 여성의 삶을 부족함과 과함 없이 적절하게 보여준다.



결(結)


그런데 영화 <갤버스턴>의 결론 부분은 너무 아쉽다. 결승전을 앞뒤고 넘어진 꼴이라고 할까. 잘 달려오던 전개는 후반부에서 허무하게 끝이 난다. 영화 시작부터 보여줬던, 곧 죽을 거라는 사실에 폭력과 살인을 서슴지 않았던 밴 포스터(로이 역)의 거침없는 행동들이 사실은 당장 죽을병이 아닌 '구균증'이라는 치료 가능한 병이었다는 사실로 밝혀지면서 시종일관 유지되던 긴장감이 무참히 깨져버렸다. 영화는 죽음이라는 이름 앞에 '더 이상 내게 미래는 없다'는 듯이 밴 포스터가 영화 내내 보여줬던 짐승, 수컷, 야수와 같았던 행동들이 모두 다 부질없는 짓이 없다고 말해 버린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영화 <갤버스턴>의 밴 포스터(로이 역)


더욱이 영화의 동기이자 배경으로 알려졌던 부분은 결국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온 스토리 전반을 흔들어 버렸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랄까. 허무함을 넘어 어이가 없다는 인상을 짙게 남긴다. 영화에서 보여 준 밴 포스터(로이 역)의 삶에도, 이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도 허탈하게 한다. 특히, 영화 내내 여주인공 엘르 패닝(로키 역)이 보여준 수준 높은 미성년자 미혼모 연기가 무의미했음을, 특히 그녀가 영화 후반부에 결국 무참히 살해당한 장면을 볼 때, 개연성 없는 복선과 전개는 허망하다 못해 불친절함을 선사했다.


영화 <갤버스턴>에서 밴 포스터(로이 역)와 엘르 패닝(로키 역)의 연기만은 흠잡을 데 없었다. 건질 건 두 배우의 연기뿐이 었다. 이 둘이 아니라면, 누가 과연 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을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수준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어설픈 반전은 영화를 통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불분명하게 했다.



그리고 메시지


그래서일까. 엘르 패닝(로키 역)은 끔찍하게 죽었고, 납치됐던 밴 포스터(로이 역)는 곧 죽을 줄 알고 저질렀던 살인과 폭력이 밝혀져 20년의 옥살이를 하게 된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방치됐던 아이는 결혼을 앞둔 어른이 됐고 밴 포스터를 찾아온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 "자신을 왜 버렸어요?"라며 엘르 패닝의 딸이 묻는 질문에 밴 포스터(로이 역)는 "버리지 않았다"라고 얘기한다. 동시에 말한다. 언니라고 불렸던 이가 언니가 아님을, 사실은 엄마였음을,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 뒤늦게 진실을 말하게 된다.


20년 만에 밴 포스터(로이 역)를 찾아온 엘르 패닝(로키 역)의 딸.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을까.


하지만 몰입이 되지 않았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메시지를 남기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설픈 복선과 반전으로, 후반부에서 밴 포스터(로이 역)와 엘르 패닝의 딸이 만나 나누는 이야기들은 따로 놀았다. 앞서서 보여준 이야기들의 연결되어 끝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끊어진 이야기에 다시 이음표를 잇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어려운 흐름과 구성, 메시지는 남기기는커녕 아쉬움을 줬다.


그래도 추천한다. 밴 포스터(로이 역)와  엘르 패닝(로키 역)을 평소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영화 <갤버스턴>은 봐도 무방한 영화다. 두 사람의 수준 높은 연기를 기대하고, 이 두 배우를 잘 알고 싶은 사람들이 봐도 괜찮을 영화다. 거칠고 투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를 다소 포기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꾹꾹 참으며,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들이 보면 좋을 영화다.


영화 <갤버스턴>의 포스터



#5.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영화 <갤버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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