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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Jun 05. 2019

무한한 감성의 바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

슬픔과 상실에 대하여

※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어 본 적 없다. 하루키는 한국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일본 작가 중에 한 사람이지만, 평소 어떤 영화나 책이든지 유행에 동참하기보다는 한 발 거리를 두고 성격 탓에,  하루키는 애써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는 작가 중에 하나다. '하루키'라 대중적 유행이 나중에 사그라들 때, 나중에 한 번에 몰아서 만끽하려고 애써 아껴두고 있는 작가다. 그 태도와 시점의 연장선에서 인물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돼버린 '하루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게 됐다. 대중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고, 사전에 아무런 고정관념 없이, 하루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 <하나레이 베이>를 봤다. 하루키의 문학 세계를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본 영화는 어떠했을까.



줄거리


남편을 앞세워 보내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잃었다. 엄마는 아들을 잃었던 하와이의 한 바다를 매년 방문하지만 정작 바다에 들어가지 않은 채 해변가에서 대부분 책을 읽는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 중요 구성이다. 올해 전주 국제 영화제 '시네마 페스트' 부문에 초청된 이 영화는 한국에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도쿄 기담집>이 원작인데, 영화는 철저히 요시다 요(사치 역)라는 일본 배우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아들을 싫어했지만 사랑했다"


요시다 요(사치 역)는 마약중독자였던 남편과 그 사이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했던 여성으로 등장한다. 마약중독자 남편은 가정을 부양하기는커녕 바람을 피우다가 죽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인지 요시다 요(사치 역)는 아들과 사이가 가깝지 않은, 평소 다정다감하지 못했던 엄마였다. 아들은 사랑의 대상이자 남편에 대한 미움이 반영된 존재였던 것. 그래서일까. 요시다 요(사치 역)는 는 하와이의 하나레이 베이에서 상어에게 오른쪽 다리를 물린 채 죽은 아들의 시신을 보고, 가족을 잃은 사람이 대부분 흘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애처롭게 울거나 비통해하지 않는다.



요시다 요(사치 역)는 아들이 죽은 바다를 보며, 슬픔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출차: 네이버 스틸컷)


요시다 요(사치 역)는 눈물로 비통해하는 대신, 발걸음을 잡는다. 바다로 향한다. 아들이 죽었던 바다를 매년, 그렇게 10년을 찾아간다. 서핑을 하던 아들이 마지막에 머물렀던 바다와 파도를 바라보며, 의자를 펼치고, 책을 읽는다. 그러다 아들 또래의 두 청년을 하나레이 해변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의 숙박업소를 잡으며,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교류한다. 해변을 홀로 걸으며, 점점 사람들을 만나며, 아들의 죽음을 그렇게 천천히 받아들인다. 그러다 처음엔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아들의 죽음을 나중엔 바깥으로 폭발시키며, 아들의 시신 앞에서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아들을 잃고, 10년 만에 흘린다.


아들을 화장(火葬) 하기 전, 세상에 남긴 '핸드 프린팅'에 손을 대본다. 외국이라는 타지에서 하와이 경찰의 권유에 처음엔 할 필요 없다고 말했던 그녀는 그렇게 아들의 손도장을 만진다. 아들이 죽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아들의 손에 자신의 손을 맞춘다. 아들의 죽음을 10년 만에 실감해서였을까. 엄마는 아들의 죽음을 아들의 손도장에 자신의 손바닥을 맞대며 그제야 인지한다. 집안 한 구석에 감춰진 남편의 워크맨을 찾아 듣는 아들이 싫었던 그녀는, 남편과 아들이 죽고 멈춰 버린 워크맨을 귀에 갖다 댄다. 아들이 죽고 10년 만에, 남편이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는다.



크레센도 에 디미누엔도(crescendo e diminuendo)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말한다. '상실'에 대하여 언급한다. 존재했지만 부재한 사람에 대하여, 부재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이에 대하여 노래한다. 마치 클래식 음악의 연주법처럼 '크레센도(crescendo)', 그러니깐 처음엔 약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세게' 한 남편의 아내이자, 아들의 엄마로서 한 여성이 겪는 상실과 외로움, 그리고 번뇌의 고저를 나타낸다.


나아가 드러낸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요시다 요(사치 역)라는 배우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여성의 마음을 '디미누엔도'(diminuendo) 한다. 점점 세게 증가했던 상실감을 다시 '점점 여리게', 그렇게 잔잔하게 전달하며, 여운을 남긴다. 처음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슬픔을, 이별할 준비가 안 됐던 한 사람의 마음을, 괴로움에 매몰되는 것 대신 이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슬픔에서 벗아나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존재를 담담히 전달한다.



요시다 요(사치 역)는 남편과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빠진 여성의 상황을 담담히 드러냈다.



요시다 요(Yoshida Yo)


그동안 잘 몰랐던 걸 잘 알게 될 때, 잘 알지 못하는 존재를 알게 될 때, 사람들은 즐거움을 갖게 된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에서도 그런 요소가 있다. 바로 '요시다 요(Yoshida Yo)'라는 배우가 보여준 연기가 그랬다. 어디에 있다가 이런 배우가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요시다 요는 '사치'라는 역할로 분해, 상실한 사람의 모습을, 남편에 대한 미움이 있지만 증오에 휩싸이지 않은 아내의 마음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엄마의 상황을, 이러한 현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과하지도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잘 드러냈다.


그래서 권유한다.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절제의 미(美)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요시다 요'의 연기를, 상실한 이들이 겪는 상실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확인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장한다. 이러한 감정을 수용하고 극복해 내는 과정과 현실을 잘 보여준 '사치'라는 주인공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적합하다. 누군가를 잃고, 이별한 사람들에게, 현재 이별 중인 이들이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영화다. 본 영화는 6월 6일에 개봉한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요시다 요(사치 역)의 연기가 돋보였다.



#4.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영화 <하나레이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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