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
최근 브런치를 시작하고 책 읽기에 대한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예전에는 책을 읽고 그냥 느낌만 간단히 적어 사람들과 공유하였기에 큰 부담이 없었지만,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책에 대한 느낌을 쓰는 것에 대해 '브런치 작가'로서 어느 정도 수준 있는 글을 올려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과 부담감을 느꼈다.
이런 부담감으로 인해 예전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지 못하게 되었다. 책 읽기에 대한 '목적의식'이 생겨버린 탓이다.
'브런치에 글 쓰지 말까?'
이런 고민을 자주 하게 되었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부담 없이 책을 읽었을 때 보다 한 번 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독서의 당위성과 관련된 책에 눈길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잘못 선택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책을 읽는 당위성에 대해 현실적인 이득이 아닌 좀 더 내면적이고 근본적인 해답을 얻고 싶었다. 아쉽지만, 이 책은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보다는 독서를 통해 상상력이 신장되거나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등 나에게 식상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의 나열이었다.
무엇보다 책의 첫 번째 주제에서 독서가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주장은 거부감을 일으켰다. 물론 몇 가지 시각화 자료 등 근거 자료 들을 제시하지만 연구보고서나 논문에 근거하기보다는 본인의 주장에 가까우며, 이러한 점은 설득력보다는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삶의 완성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는 것이다. 물론 작가도 독서의 목적을 경제적인 측면에 최우선으로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처음부터 돈 이야기하는지.. 왠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값도 아깝고, 그래도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인데,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참고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100쪽이 넘어가자 문득 보통 학술적인 책들에 포함되어 있는 참고 문헌이 보고 싶어졌다. 저자가 확고히 주장하는 것들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참고 문헌이 없었다. 다시 한 번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작가가 주장하는 의견들은 당연히 옳은 말이지만 수많은 논문과 인터넷 자료들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의견들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나의 불쾌한 신경을 계속 건드리는 것은 그 주장에 대한 확고함 때문이다. 표현의 문제이다. 예전에 연구보고서를 보면서, 많은 보고서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표현들이 있는데, 어떤 문제의 해결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라는 식이다. 그때마다 글쓴이에게 '당신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해결 못할 문제가 없는데, 왜 현재 아직 이 모양인가?'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이 책에서도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 다시 말하지만, 틀린 주장은 아니다. 다만, 저자가 말한 21세기 '성숙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보다 의미있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독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당히 언짢은 기분을 느낀 것은 책을 읽어가면서 마치 아침에 방영되는 이벤트성 TV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 때문이다.
작가는 20세기를 집단 간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를 '성장사회'로 표현하였고, 집단적인 가치를 거부하고 개개인의 가치를 바탕으로 보고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를 '성숙사회'라고 표현하였다.
작가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진짜 독서하지 않으면 미래를 살아가는데 문제가 생길까?'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났다. 조르바는 치열한 삶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삶을 만들어갔다. 굳이 조르자가 아니어도 삶의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나름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도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현명하게 살아가고 있다.
글쓰기는 논문이나 보고서처럼 논리성을 바탕으로 적절한 근거로 풀어가는 방식과 시, 소설, 에세이처럼 가지고 자신의 느낌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학술적인 내용과 에세이 형태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모습이다. 글의 구성 방식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므로 뭐 그렇다고 치자.
다만, 제1장과 제2장은 학술적인 내용으로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였으며, '성숙사회'나 '독자와 작가의 뇌를 연결'한다는 주장은 동의하지만 이론적인 배경이 부족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차라리 독서와 관련된 수많은 논문과 데이터를 활용했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독서'라는 행위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도구쯤으로 생각되는 세속적인 접근 방식이다.
나는 독서하는 행위를 작가와 나의 내면과 대화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독서를 함으로써, 책에서 주장하는 창의성과 신용이 높아진다거나 인간관계가 좋아하지는 것들은 단지 부수적인 것이다. 즉, 작가와 나는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부수적인 이득에 대해 동의하지만, 작가는 수단의 측면인 반면, 나는 보다 근본적인 목적의 측면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나마 이 책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를 다소 감소시키는 것은 제3장(독서는 내 인생에 이렇게 도움이 되었다)을 넘어가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제3장은 '작가가 왜 책을 접하게 되었는지' 계기가 나오고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공감할 수 있었으며, 나의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제5장에서 내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브런치에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선택한 것에 대한 위안을 받는다.
작가는 독서 예찬론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독서가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을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달리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다르게 정의하기로 하였다. 독서는
"책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안내서로 책을 읽는 것은 행복한 삶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 하나이다. 또한 독서는 자신과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한 또는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한 도구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책을 읽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