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준에 도전한 스피노자

자신과 세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철학자의 조언'

by 책 커피 그리고 삶

울긋불긋 한 폭의 유화 같은 느낌을 주던 낙엽들이 다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불 때, 기분마저 축 처지는 것을 느낀다. '계절병'이라 불리는 감정의 질병은 유독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에 주변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듯하다.


계절병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식 중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다. 최근 '철학자의 조언'이란 책의 매력에 빠져있다. 이 책은 실존, 수신, 행복, 정의 등 9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파트는 철학자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에 그 사상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파트 주제와 철학 사상과의 연관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끝까지 읽지 못하고 1/3 정도가 남아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마치지 못한 것은 내용적으로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각각의 철학자들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생각에 읽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트에 정리까지 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음식처럼, 가끔 읽을수록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전율과 생각의 폭풍을 일으키는 책들이 있다. 나에게 '철학자의 조언'은 바로 그런 책이다.

나른한 오후, 따뜻한 음악이 나오는 카페에 앉아 책을 보는 것은 행복한 일상 중에 하나이다.


책에 소개된 많은 철학자 중 난 '에티카'를 쓴 스피노자를 좋아한다. 스피노자에 대해 읽을 때, 왠지 감정적으로 공감되고 내가 추구하는 정신적 목표에 다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스피노자는 '신은 신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였다. 즉, 신에 대해 초월적 존재를 부정하고 유한한 존재로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유대교에서 파문을 당했고 그 처벌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고립된 존재로 살아가야 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종교는 이성적, 도덕적 가치 기준이고 삶의 기준이었으며, 커다란 권력이었다.(그 당시 종교적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었지만, 신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일생을 바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면, 많은 부와 명예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신앙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신앙에 대해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는 그가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권력에 의문점을 가졌고,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받아들였으며, 그 대가로 얻은 고통과 외로움을 승화하여 자신의 사상을 만든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히 고집이나 아집 하고는 다르다. 그의 생각은 오랜 기간 동안 연구를 한 결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는 것은 그동안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교육된 가치관에 대해 의문 없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많이 있다. 가끔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고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본질에 대해',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행복과 불행', '선과 악', '내가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삶이 나에게 부여한 임무를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등 나의 내면과 깊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요즘 최순실 관련 뉴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닌 인물들 중, 스피노자와 같이 자신의 생각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의리'라는 가치를 내세워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감추기 급급한 모습이다. 최소한 진정한 가치들을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오염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의 맥락에서 엉뚱한 말이지만, 스피노자에 대한 읽기를 마치면서 문득 나의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다.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철학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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