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앎은 실천이다.
"인생의 목표가 뭐야?" 문득, 친구가 물어본다.
"음.. 내가 눈을 감을 때, '잘~ 살았다.'라고 생각하는거"
최근 내 또래로 구성된 밴드에 가입했다. 밴드를 통해 편협한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알고 싶었다.
아침마다 밴드에서 알림소리와 함께 배달되는 아름다운 문구와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들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문구들은 화려하며, 아름다운 배경 사진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문구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아직 그런 문구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 이제는 식상함과 피곤함을 느낀다. 직접 삶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이 아닌 타인의 경험과 철학에 대한 정보의 복제와 이동이다.
'아무리 외모가 아름다운 아내라도 겉모습의 아름다움은 순간이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문구의 화려함은 외모만 아름다운 아내처럼 어느덧 식상함을 느끼게 하고 나와는 관계없이 느껴진다.
중국의 사상가인 왕수인은 수신(修身)의 방법으로 치양지(致良知)를 제시하였다. 양지란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 인간의 선한 본성 또는 천성이다. 즉, 치양지에 이르는 방법으로, '앎과 실천은 하나'라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였다. 실천없는 앎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드에 올라오는 수많은 좋은 글들은 우리들에게 삶의 깨달음과 방향을 알려준다. 아마, 그것들 중 몇 가지만 실천할 수 있다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외모뿐만 아니라 진정 내면까지 아름다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아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치열한 이 시대.. 이러한 콘텐츠들이 많아지는건 그만큼 삶이 각박하고 현실에서의 실천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에게 피곤함을 주는 문구라도, 누군가는 그 문구들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고 삶의 방향을 고민할 것이다. 다만, 진정한 삶은 그것을 실천하고 느끼고 내면화한다면, 보다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P.S. 지행합일은 아직 나에게 어렵다. 아침의 결심이 저녁에 바뀌는 건 아직 나의 수행이 부족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