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12
코로나19 이전에 평균 3주에 한번 정도 미용실에서 헤어컷트를 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아내에게 머리를 깎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아내의 손을 빌리고 있지요. 처음에는 컷 스타일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반복하는만큼 실력이 늘어 이제는 제법 잘 깎습니다. 다만, 머리를 깎는 날에 아내의 기분을 잘 살피지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어김없이 삑사리가 나서 한쪽을 올려쳐 머리를 망치는 날도 있어서, 머리깎는 날만큼은 자진해서 설거지부터 집안청소까지 아부성 집안 일을 더 많이 합니다.
금요일 늦은 밤, 평소보다 늦게 퇴근하여 피곤한 상태라 집안일을 생략하고 바로 머리를 깎았지만 살짝 불안하였습니다. 머리를 깎기전, 딸래미 수험준비로 인한 스트레스와 시댁과의 갈등, 그리고 나혼자만 고생한다는 푸념 등이 섞인 말을 하기 시작했지요. 더군나 아내가 TV드라마에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이 불안했지요. 일단 잠시 안정시키고 시작하려고 했지만 저도 치통으로 힘들었기에 그냥 대충 무시하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캭~ 어머~~'
별일 없이 잘 진행되는데,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들렸습니다. 방에 있던 아들도 거실로 뛰어나와 무슨 일인지 물었지요. 아내는 아무 말없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가르키며, 아들 얼굴을 바라봅니다.
'왜 그래? 왜 그러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물어보는데, 그 불안이 맞더군요. 폰으로 사진을 찍어 내 뒷머리를 보여주는데,
'햐~~~'
'너 일부러 그랬지?'
끝까지 부정하는 아내에게 주변 머리를 더 잘라 복구를 요구했지만, 이내 '복구 불가' 판정이 내려졌고, 여기서 화를 낸다면, 앞으로 깍아주지 않을 것이기에 그냥 허탈한 웃음으로 마무리했지요. 다음날 밖으로 나가는데, 머리가 신경쓰였지만 가린다고 가릴 수 없기에 신경끄고 당당하게 걷기로 결심합니다. 어자피 남들은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 넣었지요.
머리는 다시 자랍니다. 한번 잘못깎은 머리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길이로 돌아오지요. 우리가 살다보면, 실수를 하게 되고 땜방이 생긴 머리처럼 시간이 해결해 줄, 복구가 가능한 일들이 많지요. 하지만 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지요. 그로인해 원래의 관계로 돌리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고 시간이 지난다면 복구가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웃으며 끝날 일'과 화를 내고 관계를 돌리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 일', 가성비로 따져봐도 그냥 웃고 넘기는 것이 현명하지요.
물론 사람들의 시선은 저의 몫이지만, 그건 개인의 멘탈로 극복가능합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은 이미 지난 것은 잊어버리고 되돌리기 위한 기다림과 마음의 여유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P.S. 바리깡이 내 머리를 마구 휘졌는 순간만큼은 아내는 시몬 베유가 말한 ‘관심’이 부재한 상태였을 것이다. 나보다 TV드라마의 내용과 입시의 스트레스를 더 사랑한 순간이지요. 하지만, 그 결과가 순전히 내 몫이라는 것이 당황스럽기는 합니다.
https://youtu.be/4L_yCwFD6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