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버림14

by 책 커피 그리고 삶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란 선에서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로 들리는 상큼하면서도 익숙해진 음의 높낮이가 반갑게 느껴질때즈음, 나는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들고 다가오는 열차를 바라봅니다. 문득 사람들의 옷차림, 표정, 기다리는 자세 등 어느 한가지도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끼지요. 개성이 없는 것도 개성인 것처럼 신기하리만큼 각자의 특징이 묻어 나오고 있지요. 각각의 모습으로 사람마다 각 개인을 구분짓고 저마다 자신만의 세상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하철과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비유될 수 있지요. 스크린도어 앞 노란색 밖에서 서 있는 모습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주변인들과의 갈등, 자녀의 행복한 아침 인사, 회사일에 대한 스트레스 등-사람들의 얼굴에는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지요.


하지만, 지하철은 사람들 각각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항상 정시에, 항상 일정한 속도로, 항상 같은 멘트를 들려줍니다. 언제나 예정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지하철, 나의 기분에 따라 느리게도, 빠르게도 움직이지 않고 정확한 규칙과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참 배려없는 존재지요. 오늘 아침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과 상관없이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것과 참 비슷합니다.


가끔 세상의 중심에 '나'를 두고, 세상의 만물이 나의 기분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내가 기분이 나쁘니, 주변도 나의 눈치를 봐야하고 내가 기분이 좋으니, 세상은 너그러워야 할 것 같지요. 이럴 때마다 나는 '세상의 만물을 인식의 대상으로 보고 내가 인식해야 세상도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진 자기중심적 어설픈 관념론자되어 나의 기분마저 세상의 중심에 놓아두려고 합니다.


어설픈 관념론자의 입장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봅니다.


'길을 가다가 전봇대에 부딪히는 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내가 전봇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전봇대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고 존재하지만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지요. 그러나 나에게 존재하지 않은 전봇대에 부딪친 것은 다른 사람이 전봇대를 인식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존재로서 인식을 해야, 의미를 부여해야,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살면서 어떤 것을 인식(존재)하는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될 수 있지요. 기쁜, 슬픔, 불행, 행복 등 누군가의 인식으로 인해 존재하고 이 세상을 둥둥 떠돌아다닙니다. 하지만 내가 인식하기 전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의 선택에 따라 하나씩 (기쁨, 슬픔 등) 나에게 존재로 인식되지요.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전봇대가 어느 순간 존재하듯이, 스스로 싸움, 갈등, 불행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그것만이 존재하는 삶으로 이끌고 행복, 배려, 감사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삶이 그쪽 방향으로 향할 수 밖에 없지요.


결국 내가 어떤 ‘의도’로 '무엇'을 보고, 듣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따라 나의 삶도 방향도 달라지겠지요.


세상하고 상관없지요. 세상은 지하철처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 내가 선택하는 쪽으로 세상의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지요.


P.S.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참 어렵게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곧 내가 아직은 잘 모르는 것이겠지요.


https://youtu.be/kc7PlDfoF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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