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15
"발표시가 된 곳에 올라서고 가슴펴고, 앞 정면을 바라보세요."
라는 말에 눈에 힘을 주고 턱은 올리며, 가슴을 쫙 폅니다. 매번 키를 잴때마다 굽어진 어깨를 펴고 나면, 왠지 0.1cm라도 더 커지는 느낌을 받지요.
"000.0(cm)"
그러나 평소 키보다 좀 더 커졌다는 생각과 다르게 실망한 숫자를 불러주는 상대방이 원망스럽게 느껴지지요. 왜 매년 키가 자꾸 줄어드는 것일까요? 이 나이에 키가 크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줄어들지 않으면 좋으련만...
나이가 들수록 노화로 인한 골밀도 저하, 불안정한 자세, 손실되는 근육 등으로 키가 작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근력 운동을 통해 어느정도 작아지는 속도를 줄이고 시기를 늦출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때는 키가 작은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지요. 그러다 TV에서 '숏다리'와 '롱다리'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작은 키가 놀림의 대상이 된 이후, 신경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외모로 유행어를 만든 방송국에 항의를 했어야 하는게 맞지만 그 당시 문화수준과 분위기가 지금과 달랐지요.(그래서 그 유행어를 만들어낸 개그맨에게 아주 비호감을 가지고 있지요.)
한번 만들어진 문화는 저에게 지속적으로 작은 키에 대한 상처로 다가옵니다. 그동안 작아지는 키가 싫어서, 아니 작은 키가 싫어서 운동화 밑창이 3~4cm되는 신발도 신어보고 스트레칭도 하지요. 높은 밑창의 신발을 산 날에는 신발을 신고 4cm 높이의 시선과 공기가 평소와 다른 것을 느껴봅니다.
'아.. 170 중반의 세상은 이렇게 보이는구나..'
한때, 내가 180만 되었어도 내 인생이 달라졌을거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지요. 사실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밑창이 높은 신발을 신고 큰 거울에 서면 늘씬한 다리와 강제로 맞추어진 전체적인 비율로 뭔가 멋져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키가 작은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요. 생존의 입장에서 작은 키는 포식자로부터 잘 숨을 수 있고 필요한 열량도 덩치가 큰 사람들보다 적으니 살아가는데 더 유리하지요. 또한,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 작은 사람들이 민첩하고 야무지지요. 그리고.... 일본에 갔을 때, 내 키가 평균키에 가깝다는 점, 유럽 사람들이 내 키보다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것 등 나의 작은 키에 주눅들만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해봅니다. (이렇게 쓰지만 쓰면서도 짠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제 키에 대한 실망감을 버립니다. 이것 저것을 떠나 나이가 들수록 키가 줄어든만큼 나는 내면이 성장했기 때문이지요.
'줄어든 키는 마음이 커지는 영양분이 되었으리..'
'키'와 '마음'이라는 연관성이 없는 두 개의 단어를 연결하여 등가교환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생각해 보지요.
잃는 것이 있으니 얻는 것이 있는 법…
https://youtu.be/4hDERN69-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