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버림

내 그림자의 머리는 밟을 수 없다

버림21

by 책 커피 그리고 삶

“스르륵.. 스윽 스윽…”


며칠전부터 차량 뒤쪽 바퀴쪽에서 이상한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두번째, 고장난 내차를 고치기 위해 조퇴를 하고 카센터로 향했습니다. 올해 9년차 차량이라 조금씩 고장나기 시작하나 봅니다.


대충 살펴본 사장님은 고장난 곳이 잘 보이지 않고 수리할 차량도 많아 오늘 수리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결국 차를 맡겨두고 터벅터벅 시내로 걸어갔지요. 카센터가 외진 곳에 있어 시내까지 30분 이상 걸어야 하는데, 시내버스도 마땅치 않아, 걷기를 좋아했던 프랑스 철학자 루소로 빙의하여 걸어봅니다.


해가 짧아진 요즘, 나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지요. 긴 그림자의 내 모습.. 어릴적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키다리 아저씨는 부자이기라도 했지..’


지난주 금요일, 100만짜리 애플워치를 결국 지르고 차까지 고장나니 이번달은 조금 아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린시절 그림자로 놀던 때가 생각납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림자의 머리를 밟고 싶었지요. 어린 마음에 나와 그림자를 별개로 생각했나봅니다. 그래서 열심히 머리를 밟으려고 뛰기도 하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확~ 뛰쳐나가 밟기도 했으나 당연히 그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림자의 머리는 내가 절대 이룰 수 없는 ‘이상향’에 비유될 수 있지요. 우리는 언제나 그림자 머리를 따라 그쪽으로 이동할 뿐, 나의 발은 그림자 머리에 닿지 못합니다.


사람이 욕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림자의 머리를 밟지 못해서일겁니다. 다시 말해, 어떤 짓을 해도, 어떤 물건을 가져도, 내면을 충족시켜줄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그렇게 바라던 애플워치를 살때의 두근거림은 잠시뿐이고 다시 새로운 제품에 욕심이 나는 것은 이상향의 애플워치가 아닌 이상향처럼 생긴 애플워치를 소유했기 때문이지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서 비롯된 나의 욕심에 대한 생각은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욕심을 버리기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요.(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림자에 비유했지요. 진짜를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이 세상이고 진짜는 저~ 이데아에 존재한다.)


차라리 그렇다면, 그냥 우리는 욕심을 인정하고 댐의 수위를 조절하듯, 스스로 욕심을 조절하는 것 답이겠지요.


걸으면서 욕심과 이데아를 연결지어 이런 저런 생각하다보니, 어느덧 가고자 했던 카페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이데아의 진짜 커피와 비슷한 현실의 커피를 마시며, 차량 수리비가 적게 나오기를 바래봅니다.


https://youtu.be/BzYnNdJhZ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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