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26
지난 토요일, 딸의 수시면접을 위해 부천쪽에 다녀왔지요. 면접을 마치고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청계천을 걷기로 했습니다. 한참동안 지하철을 타고 시청쪽에 내리는데, 지하철을 빠져나가자마자 집회 현장이 보이더군요. 보수단체의 대규모 집회였습니다. 거대한 확성기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졌고 얼른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걸음을 서둘렀지요.
을지로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진보단체의 집회가 있었고, 각 단체별 서로 다른 분위기에 딸에게 물었습니다.
"조금 분위기가 다르지?", "응"
"한쪽은 보수단체이고 이쪽은 진보단체야."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달라?"
간만에, 아빠의 지적 능력을 뽑내고자 걸으면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 각각의 장단점, 나이대에 따른 선호하는 성향(진보, 보수)과 그 이유 등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딸이 나의 말에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닌듯 하지만, 대충은 알아듣는 것 같았지요.
"진보든, 보수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해, 혼자 목소리 내는 것보다 둘이, 둘보다는 셋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면 그만큼 힘이 커지지. 나라의 어떤 정책이나 상황이 나에게 부당하거나 자신의 이익과 반하게 된다면,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지. 그 이후, 공익을 우선시 되는 상황이라면, 내가 양보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합의해야 서로에게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어"
"하지만 너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진보든, 보수든 어떤 성향을 더 좋아할지 모르지만, 나와 생각이 같다고 무비판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해. 선동 당할 수 있어. 선동은 집단의 이기심이라고 볼 수 있지. 내가 집단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단의 도구이자 나의 생각이 아닌 것이지."
"이것은 앞으로 너가 살아갈 직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어. 살면서 선동당하지마. 항상 너가 판단하고 판단하기 전에는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
"아빠는 그게 돼?"
"아니... 그래도 노력하려고 하지."
"집단은 곧 힘이야. 그 힘을 현명하게 사용해야하고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아무튼, 세상은 선과 악처럼 이분법으로 존재하지 않아. 교묘하게 섞여 있어서 그것을 구분하기 어렵지. 그래서 너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야."
나의 이야기를 다 들은 딸이 나에게 묻는다.
"그래서 아빠는 보수야 진보야?"
"I don't know"
P.S. 진짜로 저렇게 대화가 오고 갔으면 좋겠지만, 딸의 수준에서 고차원적 질문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분 딸이 저에게 하기를 바랬던 질문을 넣어 보았지요.
https://youtu.be/dI9-poRsNx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