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서울에 혼자 올라왔다. 그동안 딸을 신경쓰느라 주말마다 아내와 나는 생필품들을 한 가방씩 들고 서울에 있는 딸의 자치방을 방문하느라 나만의 시간을 가지 못했던 것이 참 아쉬웠다.
오늘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서울에 올라와, 나의 카페 리스트에 새로 등록한 카페에 한참을 앉아 술술 넘어가는 책 한 권을 다 읽고 슬슬 일어난다.
문득 나는 완벽한 하루를 꿈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 서울에 가지 말라는 아내의 잔소리(매주 자치방에서 얼굴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 내가 기차를 타기 전 굳이 안과에 가야겠다고 차 태워달라는 아내로 인해 급하게 서둘러야했던 마음,
- 슬금슬금 내리는 비와 잔뜩 서늘한 날씨에 대비되는 나의 가벼운 옷차림,
- 카페 한구석에서 나의 시선에 들어오는 꼭 가지고 싶은 애플로고가 찍힌 아이패드를 보고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무엇 하나 내가 원하는 하루의 모습과 전혀 다른 상황에 마음이 무겁지만, 그래도 딱 하나, 오랜만에 책 한 권을 끝냈다는 만족감이 그나마 그럭저럭한 하루를 만들어준다.
누구나 방식은 달라도 하루의 모든 상황이 기쁨과 만족감을 주는 ‘완벽한 하루’를 꿈꾼다.(개인적으로 이렇게 정의한다.) 특히 주말에는 더욱 이러한 욕구가 올라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필요 이상의 욕심이 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완벽한 하루는 일생에 그다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은 결코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기에 어쩌면 불가능하다.
가장 행복했다는 하루를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의 기쁨이 그날의 다른 감정들을 압도했을 뿐, 모든 순간이 만족과 기쁨으로 채우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열가지 원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한가지라도 만족할 일이 있으면, 그 만족감을 스스로 뻥티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한 가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면 어떨까? 그러면, 하루의 삶이 훨씬 많은 기쁨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구름 사이로 태양이 보인다. 태양이 전해주는 심리적 온기로 조금은 따뜻해진다. 아까보다는 마음이 훨씬 편해졌지만,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아내의 ‘단어 폭격’을 상상하면, 자기방어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만족감을 뻥튀기 정도는 아니어도 펌핑 수준으로 늘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