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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커피 그리고 삶 Mar 10. 2024

말레이시아 여행(쿠알라룸푸르) 2

므르데카 광장, 쿠알라룸푸르 새공원, 마스지드 느가르

이번 글에 대한 말레이시아 여행 계획과 일정은 이전글 참고


쿠알라룸푸르를 중심으로 말라카와 페낭을 오고 내리는 일정이라 본의 아니게 쿠알라룸푸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쉽게도 여기에는 태국의 방콕 같이 뭔가 확~ 와닿는 랜드마크가 없다. 물론 쿠알라룸푸르의 이미지로 트위타워가 많이 소개되지만 유적지를 좋아하는 나에게 큰 감흥은 없다. 일본의 도쿄나 대만의 타이베이 같은 그냥 대도시 느낌이다. 그래도 쇼핑하기에는 좋은 곳 같다.



확실히 내 스타일의 여행 장소는 아니다. 작은 시골이나 역사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여행스타일과는 맞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들에 비해 여유로운 느낌으로 대도시의 풍경을 즐기기에는 참 괜찮은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표정과 에너지 넘치는 발걸음은 카페에서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하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맛을 느끼게 한다.



▣ 환전하러 부킷빈땅으로...

호텔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환전을 하러 갔다. 여기에 오기전에 급한대로 한국돈 5만원만 말레이시아 화폐인 링깃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일단 환전을 위해 부킷빈땅으로 향했다. 여행을 오기전에 쿠알라에 대한 정보를 보니, 부킷빈땅이 가장 번화가로 알려져 있어서 일부러 이 지역의 환전소를 검색하였다.


만족할만한 환전 수수료이다. 아침겸 점심 식사를 위해 잘란 먹거리 거리(Jalan Alor Food Street)로 이동하였다. 평소 맛집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대충 먹고 배만 채우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거리 입구 한쪽에서 "헤이~ 브로~"라고 호객하는 무슬림 식당에 들어섰다. 그동안 많은 해외여행을 다녔지만 무슬림쪽 음식을 선호하지 않아 먹어볼 기회가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먹어보기로 하였다.

이 음식 이름이 뭔지 모르고 먹음.....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은 그럭저럭 그런 맛이다. 확실히 무슬림 음식보다는 동남아 음식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식사를 마치고 먹거리 거리를 걸어본다. 한 낮이라 그런지 특별한 것이 없다. 밤에 다시 올 생각을 하고 므로데카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 므로데카 광장

므르데카 광장에 도착하니 또다른 실망감이 몰려온다. 광장 옆에는 KL 시티갤러리가 있어서 미술작품을 보고 싶었으나 미술관을 열지 않았고 광장은 공사로 인해 관광객들이 '가볼 만한 곳'으로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참, 내가 계획없이 다닌다는 것을 느낀다. 넓은 광장은 땅이 파여져 있고 기념물은 별 감흥이 없었다. 다만, 길 건너편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은 나름 웅장해 보인다. 이런 난감함에도 불구하고 패키지 여행객 차량들이 끊임없이 들어왔고 사람들은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국기 계양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KL 시티갤러리와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므로데카 광장


실망감이 나의 기분을 누르는 것을 부정하며 구글 검색으로 다시 가볼만한 곳을 검색하였다. 근처에 도보로 15분 거리에 '마스지도느가르 모스크'가 있었고 그랩 교통비를 아낄겸 걸어가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곧 후회가 밀려왔다. 거리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을 구경하면서 나름 도보의 낭만을 생각했지만 '이건.. 와.. 너무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왠만한 더운 날씨는 잘 견디는 체질이라 잘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땀으로 인해 등쪽 옷이 축축해질 무렵 '마스지도느가르'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관광객이 입장할 수 있는 시간대가 지나 들어갈 수 없었다. 구글맵에서 미리 입장시간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이번 여행을 정말 생각없이 다닌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아무튼 다음 입장시간까지 한 3시간 정도 남아있어 시원한 쥬스를 마시며 근처 가볼만한 곳을 다시 검색해보았다.




▣ 쿠알라룸푸르 새공원

마침 근처에 나비공원과 새공원이 있어 그곳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거리상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지도상 7분 도보) 어자피 옷이 땀으로 다 젖었으니 또다시 걸어가기로 하였다(그랩비를 아끼고 싶었다). 음.. 이번에는 오르막이다. 혹시나 이곳에 방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그랩을 타자니 돈이 아깝고 걸어가자니, 체력 소모가 심하다. 결국 지도상 7분 거리를 쉬엄 쉬엄 30분만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또다른 결정을 해야 했다. 이번에는 입장료가 23,000원 정도로 너무 비쌌다. 새공원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가치가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다시 마스지도 느가르로 내려가 방문 시간까지 기다리기도 시간 낭비일 듯하였다. 하지만 계속된 미스(Mistake)에 더이상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일단 들어가 보기로 한다.


그동안의 실망감은 하나라도 기억에 많이 남기고 싶어하는 욕구로 변했고 덕분에 천천히 집중하여 둘러보게 되었다. 곧 아까 입장료에 대해 고민한 것이 쓸데없음을 깨달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정말 다양한 새들을 가까이, 그리고 친근한 눈빛으로 볼 수 있었다. 




새공원은 정말 넓었다. 더운 날씨에 너무 넓은 지역이라 오히려 조금 작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목마다 사람들과 섞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새들을 보자니, 경계심이 없는 새들이 로봇처럼 느껴졌다.




▣ 마스지도느가르 모스크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리도 아프고 슬슬 돌아가면 마스지드 느가르 입장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출구로 빠져나와 다시 걸었다. 그래도 내리막 길이라 훨씬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마스지도에 도착하니, 입장까지 아직 10분 정도 남았다. 반바지 차림으로 들어갈 수 없고 입구에서 나누어주는 신도복 같은 옷으로 노출된 부분을 가려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정말 멋진 사원이다. 오늘 일정 중 의도적으로 본 첫번째 장소라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만큼 생각보다 넓은 규모이고 한쪽에는 사원의 역사를 담은 설명 안내문을 볼 수 있었다.



사원을 둘러보고 그랩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 일단 샤워를 하고 에어컨 밑에서 휴식을 취했다. 해가 조금씩 저물무렵 땀으로 눅눅해진 옷을 입고 부킷빈땅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더위를 먹어서 그런지 별로 입맛도 없었다. 그래도 체력을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 쏟아지는 비와 생맥주의 낭만적인 어울림

잘란 먹거리 거리(Jalan Alor Food Street)는 낮에 보았던 모습과 비교하면 밤에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산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지만 가격은 생각보다 싼 편은 아니었다. 일단, 로컬 식당에서 국수 한그릇을 먹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텔로 돌아가기전 맥주 한잔이 생각났다. 평소 술을 거의 먹지 않지만 오늘은 시원한 생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bar가 모여있는 거리가 있었고 그곳으로 향했다.


쿠알라룸푸르의 가장 큰 충격은 멋진 빌딩도, 역사 문화재도 아니고 바로 술값이다. 부킷빈땅의 잘란 스트릿 푸드 거리에 바(bar)들이 길 양옆으로 모여 있는 장소가 있는데, 외국인과 차량들로 바글바글하다. 이곳 만큼은 나처럼 술을 잘 못마시는 사람도 분위기에 취해 맥주 한잔 하고 싶어지는 분위기이다. 한밤에 느껴지는 더운 날씨도 맥주를 생각나게 하는데, 한몫을 한다.



일단, 조금은 한적한 bar에 자리를 잡는다. 나처럼 혼자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여러명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조금 번잡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싶었지만 혼자 자리를 차지하기에 약간 눈치가 보인다. 내가 자리잡은 자리는 2인용 테이블이지만 손님이 별로 없기에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마셨다.


아까부터 한두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곧, 집에서 가져온 접이식 작은 우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진짜 멋진 풍경이다.'


비를 바라보며, 맥주 한모금을 들이킨다. 이때, 이번 여행에서 가장 멋진 장면으로 기억에 남은 풍경을 보게 되었다. 마구 쏟아지는 비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그리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생맥주 한잔..


이렇게 오늘 하루가 저물어간다.


근데... 호텔에 따뜻한 물이 안나온다. ㅜㅜ


여행을 하다보면, 공인된 멋진 풍경이 아닌 의외에 장소에서 감명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오늘은 바로 바에서 바라본 풍경이 어느 풍경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갑자기 내리는 빗방울이 만드는 소음을 들으며 천막 아래에서 마시는 생맥주는 정말 맛있었다. 아마, 술 한잔의 알코올, 여행, 타국이라는 낭만적 요소가 섞여 지금의 기분을 만들어 내는 것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생각의 차이이다. 한국에서 내리는 비와 여기의 비가 성분이 다르지 않을 것이고 한국에서 마시는 생맥주와 여기서 마시는 생맥주의 성분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환경이 주는 나의 시선만이 다른 것이다.

시선은.. 나를 불행하게도 만들고 행복하게도 만드는구나.. 다만 선택만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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