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변해야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가끔 삶의 가속도에 변화를 주는 것도 좋다.

by 책 커피 그리고 삶

커피숍에 홀로 앉아 창밖으로 바라보는 것이 오랜만이다. 날은 어두워지고 부슬비가 내리면 분위기가 아주 죽일 것 같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영화관과 음식점이 몰려 있는 이곳에 차를 끌고 오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골로 오는 이 카페 근처에서 한참을 돌다가 주차를 못하고 결국 집에 차를 두고 걸어온 것이다.


집에 차를 두고 카페로 갈까 말까 고민도 했지만, 뭐 날도 좋고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맞고 싶다는 생각에 걷기로 하였다.


길을 걷다 보니, 차에서 평소 지나치던 풍경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행자 신호가 이렇게 길었던가?’, ‘어? 전에 있던 장어집은 문을 닫았구나!’, ‘길 모퉁에 피어 있는 저 노란색 꽃은 뭐지?’, ‘아.. 이 집 아메리카노는 2,300원이구나!’, ‘저기 바람에 흔들리는 스커트를 입은 저 여자 참 분위기 있네.’


빠른 자동차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은 자동차로 스치듯 매일 보는 것들이지만 빠른 속도로 카페로 이동할 때, 볼 수 없는 것들, 아니 느끼지 못한 것들이다.


우리가 등속 운동을 하는 물체 안에 있다면, 그 속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물체가 일정한 속도로 느리게 이동하던, 일정한 속도로 빠르게 이동하던 그 속의 우리는 속도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 속도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한 가지 시선에 머물도록 제한시킨다.


과연 빠르던 느리던 같은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일까?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한 두 가지 목표에 집중하면서 장신 없이 살아도 좋다. 느리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삶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다만, 같은 속도로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버리는 것과 같다. 때론 빠르게 가야 할 때도 있고 느리게 가야 할 때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에 따른 시선의 범위를 인지하고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두 달간 일에 치어 거의 정신없는 상태로 지내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작년까지 반복되었던 내 생활 패턴이 주말부부로 인해 바뀌어 버린 두 달 동안 내 주변의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내 심리적 안정감이 흔들리고 있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기대, 기존의 지인들과 나와의 거리, 주말에 책을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갈증, 새롭게 등록한 헬스장에 피곤한 나의 몸을 이끌고 갈만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아름다운 트레이너의 부재, 그리고 야식으로 인해 조금씩 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나의 뱃살 등...


이러한 심리적 불안함 덕분에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공허함과 외로움이 찾아오고 오늘 유난히 그것을 더 느끼는 하루였다. 그래도 위안받는 것은 두 달 동안 잊었던 느린 속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나의 시선에 따라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을 다시 깨달은 것이다.


다시 책을 읽기 위해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앉아 있다. 오늘은 유난히 커피가 쓴맛이 느껴지고 스스로 어둠이 찾아오는 밤거리를 보고 있다.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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