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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y 17. 2017

일상의 행복

우리집 고양이 '다행이' 이야기

나를 집사 노릇 시키는 룸메이트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고양이다. '올블랙' 종의 검은 고양이 남아인데, 내가 지은 그 고양이의 이름은 ‘다행이’이다.

꼬리가 차에 낀 길고양이였다가 구조를 통해 무사하게 살아서 다행이라는 첫 번째 의미, 나에게 와줘서 다행이라는 두 번째 의미가 있으며, 작가인 나에게 천만 독자를 안겨줄 ‘천만다행’이라는 의미도 지닌 귀한 이름이다.


 ‘다행’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으로 검색해보면 ‘뜻밖에 일이 잘되어 운이 좋음’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多(다)’자는 ‘많다’라는 뜻 이외에도 ‘낫다’, ‘더 좋다’, ‘뛰어나다’…’때마침’이라는 뜻까지 있었다) 또 ‘幸’자가 ‘행복’의 행과 같다. 고양이와의 동거가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사실 고양이를 직접 키우는 집사들은 공감하겠지만, 날이 갈수록 마냥 예쁘기만 하진 않다. 한마디로 점점 애증의 관계랄까.


SNS에 올라온 어린 고양이 사진과 영상만 보고는 무턱대고 키웠다가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는 철없는 집사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환상과 일상을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고양이는 귀여운 장난감이 아니라, 감정이 있는 생명이다. 부디 인간이라면 한 번 품은 생명을 내다버리는 짐승도 못한 짓을 하지 않길 바란다.


경력이 오래 된 고양이 집사들은 하나같이 강아지와는 다르며, 아이를 키우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5년이다. 의료비와 사료비 등 기타 부대비용도 절대 만만치 않다. 그보다 일단 다행이는 새벽까지 글 쓰고 아침엔 늦잠을 자야 하는 나와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입양한 지 약 3개월 만에 나의 수면시간이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절반이 줄었다. 문뜩 이런 감정에 빠진다.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내가 과연 행복한가?'

이때, 나의 슬픈 눈망울로 흔들리는 동공 지진을 눈치챈 다행이가, 어느새 슬그머니 무릎까지 와서는 애교를 부린다. 고양이 커뮤니티를 가보니 무릎냥이가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한다. 보통 고양이라면 시크한 게 매력인데 다행이는 일명 '개냥이'다. 난 또 금세 사르르 녹아내린다. 나에게 자기 얼굴을 마구 비비며, 발라당 눕는다. 내가 반응이 없으면 자기 발을 툭툭 댄다. 나에게 자꾸 쓰다듬어 달라고 표현하는 거다. 그럼 내가 인간의 언어로 고양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행아, 너 지금 행복하구나?"


한 집에 사는 룸메이트는 인간이고 고양이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걸 우리는 '일상'이라고 한다. 지금은 못 말리는 캣초딩 시기에 수다까지 많아져서 강아지마냥 짖(?)는데, 난감하다. 내가 행복하자고 반려동물의 소음으로 이웃의 행복을 해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하여 다행이는 내가 일해야 하는(돈을 벌어야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어 준다. 현재는 원룸이지만, 각방을 쓰고 방음이 잘 되는 집을 반드시 구해야만 한다.

따지고 보면 행복이란 실체가 없지 않은가? 우리 삶의 평균을 아무리 떠들어봤자, 그 평균이란 누구의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늘 이 순간 '살아 있어서' 다행이의 애교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일상이 내겐 행복이다.

또한, 오래 이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더 큰 집으로 이사하려는 목표를 잡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 행복인 거다. 무언가를 이룬 것만이 행복은 아니란 걸 우리는 이미 잘 안다.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보다 떠나기 전이 더 행복했던 마음을 떠올려보라. 행복은 과정이고, 지금이다. 행복은 언제나 일상에 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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