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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r 08. 2018

난 아무래도 작가로 살아야겠다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넌 작가 되지 말라고, 글 쓰는 거 하지 말라고 누가 말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안에 있는 악마인지 천사인지 하는 바람 같은 존재가 나를 흔들리게 한 적은 있어도 말이다. 흔들림의 이유는 '생존'이라는 바람의 영향이었다. 뿌리 깊은 나의 정신에 작가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있음에도, 내 몸뚱아리인 여린 가지 사이로 바람은 종종 나부껴 왔다. 그러나 그

어느날 태풍에도 꺾이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돈이 되지 않으니 그만두라'는 내 안의 외침은 바람에 실려 메아리치고 있다.


그.럼.에.도.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린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봤다.


1. 나는 괴로울 때 글을 쓴다. 기쁠 때 역시 글을 쓴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지 말하는 시간이 되면 난 '고양이의 골골송'을 빗대어 말한다. 고양이는 기분 좋을 때 내는 '고롱고롱'하는 소리(Purring)를 괴로울 때도 똑같이 낸다는 거다. 이는 나로 하여금 고양이가 괴로움을 느낄 때, 기분 좋은 당시의 감정을 회귀하기 위한 방편으로 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했다. 고통을 유예시켜주는 진통제 역할을 하는 거다. 내가 글을 쓸 때도 이와 비슷하다. 괴로울 때마다 글을 써서 감정을 정화시키고 건전하게 승화시키지만, 즐거울 때 역시 글을 써서 나의 감정을 표현해낸다. 기록하고 싶은 욕망도 작용할 것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처럼 말이다.


예술은 한과 흥을 승화하는 도구이다. 내가 그런 도구를 쓸 줄 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건 덜 불행하게 견딜 수 있는 걸 말한다. 그렇기에 매일 글을 쓰는 것이 나의 꿈이며, 나를 견디게 하는 성취이다. 나는 매일 꿈을 이루고 있으므로 또 바람에 저항해 다짐한다.

난 아무래도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2. 작가는 읽고 있을 때마저 관찰하고 있다.

내가 책을 읽지 못한다는 고백은 브런치 글에서 수차례 한 적이 있다. 단지 집중력이나 의지가 박약해서가 아니고, 일반적인 난독증의 형태도 아니다. 하지만 늘 그렇게 비쳐진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이 부끄러운 사실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이라는 책에 나온 구절을 읽고 공감과 위안을 동시에 받았다.

글을 읽을 때는 작가처럼 읽어야 한다. 보통의 독자는 재미나 정보를 구하거나 위안을 얻고자 책을 읽는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목적 외에도 기법과 기교, 수완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작품을 작동시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주목하면서 비판적으로 책을 읽는 작가는 정교하게 쓰인 대목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어설프게 쓰인 부분에는 야유하고 단어 선택이나 문장 부호 사용 방식에 대해 투덜거리는 등 언제나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어떻게 보면 저주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코 책 속에 빠져들지 못한다. 텍스트에 굴복하기는커녕 불신을 완전히 거두는 법이 없다. 작가는 언제나, 읽고 있을 때 조차도 늘, 관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존 위너커 엮음/한유주 옮김>> P.13~ 中

나는 독서모임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가끔씩 위와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책 읽는 걸 힘겨워하는 이유는 늘 작가의 시점에서 보기 때문이란 말. 몇몇은 이 말을 듣고 감탄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늘 답답하고 괴로웠었다.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책과 영화에 완전히 몰입한 작품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이건 그야말로 저주였다. 그러나 위 글을 읽고는 그 저주에 대한 답을 내렸다.

난 아무래도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3. 작가인 나를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에도 소중한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의 극단적인 선택을 거둘 만큼 내 글이 위로가 되었단 거다.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거다. 이런 메시지와 전화를 꾸준하게 왕왕 받고 있다. 자신이 읽고 좋았던 내 책을 친구나 지인에게 선물해주고 싶은데 구하지 못한 경우 나를 어떻게든 찾아온다. 문단에도 속하지 않았고, 유명 매스컴에 노출되지 않은 탓에, 철저히 무명 작가인 날 찾아온다는 건 정성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할일이 없어도 사연 담은 정성스러운 메시지나 전화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용기내어 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소수의 팬이라도 내가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막대했다. 내 글은 한 명에게 제대로 긍정적 영향을 미친 후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전파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작가인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삼을만한 근거가 된다. 착각이라고 해도 좋다.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사연 가득 좋은 글써줘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훗날 그들을 다시 상기할 때마다 생각한다.


난 아무래도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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