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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r 09. 2016

나는 작가다

이동영 작가가 글 쓰는 이야기

나는 작가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자부심이자, 나의 꿈이다. 나의 무기이며 나의 숨이다. 나의 해우소이자 나의 천국이다. 누구도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칭호를 붙이려 할 땐 부끄러움이 앞서겠지만, 나는 그 부끄러움을 가득 무릅쓰고서 '주로 글 쓰는' 작가를 자칭한다.(나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고 전공이나 직업도 이와 무관하지만 누구보다도 작가의 순수한 행위를 사랑한다)



감성작가 이동영

과거에 내가 감성작가라는 닉네임을 썼던 이유는 언젠가 후배 한 명이 내 글을 칭찬하며,

형 글을 보면 독특한 감성이 있어요.

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것이 나중에까지 남아서 불현듯 작가라는 말에 감성을 붙여버린 거다. 사실 작가는 글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감성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쓰고 싶었다. 가장 먼저는 나를 표현하고 싶었고 그 건전한 도구가 글일 뿐이었다. 모임에 가도 구석에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한 소년은 어느새 사회화가 되어 자신감 가득한 청년이 되었다. 나의 글을 읽어주는 이들에게 끼치는 찰나의 영향으로도 내 존재는 가치로 발현된다. 살아있는 나를 믿고 뭐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존감이 부쩍 높아진 것이다.


이런 내가 매일같이 글을 쓰는 소소한 비결을 지금부터 낱낱이 공개하고자 한다.

1. 나는 메모한다. 고로 매일 글을 쓴다.

나의 발상법이 특별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일단 메모량이 상당하다. 스스로 메모광이기를 바란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나는 메모에 미쳐있었다. 메모는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망각하기 위함이며 그 망각은 언젠가 내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임시저장 장치로서 내 머리가 PC라면 마치 외장하드와도 같은 거다. (지금은 절판한) '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라는 내 시의 제목도 메모장에서 나온 것이다.


2. 엉뚱한 상상에서 시발하는 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사무실에서 야근하며 나름 혼자 집중하기 위해, 좋아하는 팝송을 틀어 이어폰을 귀에 꽂았는데, 집중이 좀처럼 안 되는 거다. 이 느낌이 마치 좋아하는 사람이 마음에서 계속 울려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발상을 이어 이런 글을 끄적였다.  

글_이동영
3. 무작정 쓴다.

무식한 방법 같지만 이것보다 더 많은 양을 꾸준히 쓰는 방법은 또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무의식을 믿는다. 디스크 조각모음을 하듯이,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으듯이 그저 손끝으로 마음을 다해 쓰면 무슨 글이라도 나온다, 무작정 쓴 뒤에 습작과 퇴고를 반복한다.

이 '무작정 쓴다'에는 반드시 도구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즐겨 쓰는 글쓰기 플랫폼(브런치, 블로그, 빙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모씨 등등등)이 있으면 더 좋겠다. 자신이 즐겨 쓰는 쓰기 도구(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PC, 펜과 종이 등)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나는 사진이나 그림, 또 다양한 예술작품이나 댓글, 라디오 사연, 멘트, 명언, 노래, 광고, 남의 글을 보면 영감이 마구 샘솟는 편이어서 평소에 많이 보고 담아두기에 즉흥 혹은 메모를 기반으로 무작정 쓸 수 있다. 무작정이라는 말은 눈치챘겠지만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무작정이다. 재능이 없다면 많은 재료를 준비해서 시도하라. 그럼 좋은 재료를 고를 수 있게 되고, 예쁘고 먹음직한, 실제로도 맛있고 영양가 좋은 요리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이름시를 써드립니다'. 원조 이름 시 전문 작가 이동영

요즘 '이름시'를 써주는 자칭 작가들이 많아졌는데, 내가 원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에 '#이름시'라고 검색해보면 @dong02insta 계정으로 내가 쓴 이름시가 제일 처음에 나온다. 지금(2016년 3월 9일)으로부터 98주 전의 일이다. 페이스북에는 더 오래전에 올렸을 것이다. 나는 흔한 이름시를 써주지 않는 것으로 정했기에, 이행시나 삼행시를 꼭 고집하진 않는다. 상황에 따라선 그런 기법도 가능하겠지만, 단편시에 '언어유희'만 가득하고, 감성글에 '무논리'뿐인 게 거부감이 드는 것처럼 이름시에 꼭 '이름 세 글자'가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대신 이름에 얽힌 사연이나, 성명학과는 별개로 이름의 소유자만이 평생의 의미를 품고 있는 한자 뜻, 혹은 태몽, 태명, 아명, 별명 등등이나 최근 고민이나 꿈 등 그러한 스토리 배경을 토대로 이름시를 쓴다. 그렇게 탄생한 이름시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시이자, 세상 모든 것의 중심으로 남는 시가 된다. '시'를 쓴다는 것을 어려워하는 내가 이름시를 쓴다는 건, 나에게도 아주 좋은 글쓰기 훈련이 된다. 동시에, 내가 해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과 그 감동을 선사하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얼마 전에는 이름시를 써주겠다는 글에 단 몇 분 사이 130명가량이 몰려서 지워버리기도 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이름의 사연이나 뜻을 보내달라는 내 글은 무시한 채로, 달랑 자기 이름 두 글자만 익명 어플인 모씨에 무려 100명이 넘게 남겼다는 사실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흔한' 이름시에 찌들어 있는 그들에게 감성작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삭제조치'뿐이었다. 이름시의 최소 전제조건도 확인하지 않는 100명 넘는 두 글자들을 위하여 시를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그렇게 쓰는 건 억지다. 작가가 아니다. 그 100개 넘는 이름들은 더 이상 두 글자일 뿐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름시의 대상도 아니다. (현재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매주 금요일  밤 7시 19금 타로 상담 방송에 신청해주신 분 중 댓글과 메시지로 이름 사연을 남겨주신 분들만 선착순으로 지어드리는 중입니다.)


글은 진심이 아니면 쓰지 못한다.   

아마도 평생 내 글쓰기의 철칙 중 베스트는 이것이 아닐까 한다. 나 스스로 작가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런 원칙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 보여주는 이상, 진심이 아니라면 나를 진중하게 돌아봐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이 작가일 테니까. 특정 다수에게 공개하여 공유하는 것 역시 출판 행위의 일종이 된다. 사회적 책임 없이 싸지르는 글은 위험하다.


아울러, 부족한 제 글을 찾아와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는 분들께 부끄럽지 않고, '작가'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도록 늘 성찰하고 습작하며 계속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동영 작가 올림

http://pf.kakao.com/_abh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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