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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Feb 27. 2020

오랜 지인이 내게 '죽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랬구나'의 힘

가끔 내 인스타그램(@dong02insta)계정에 올린 창작 글귀가 '불펌'을 많이 당한다.(센스 있게 해시태그 #이동영 작가를 출처로 달거나 계정 태그를 해주는 분들은 정당한 '공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행위를 '불펌'이라 규정하겠다) 마치 자신의 저작물처럼 뻔뻔하게 공유하는 이들이 '불펌'의 주범들이다.


그런데 불펌이라도 예외로 두는 글이 딱 하나 있다. 글이 공유가 된다는 건 그만큼 공감하는 (독자) 대중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하며 불펌자들을 '용서'한 글귀는 다음과 같다.


이동영 아포리즘 에세이 <문장의 위로> 중에서

이 글은 현재까지 인스타그램에서만 약 5만여 명 이상에게 노출되고 그중 수 천명이 좋아요와 공유하기, 저장하기를 눌렀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워가 5,000명 대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이 짧은 글이 왜 이리도 인기가 많을까?

이 글 아래 내가 달아둔 해시태그는 #자살 #살자 #죽고싶다 #죽고싶을때 ..등이다. 정말 그런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이 메시지가 가닿길 바랐다. 그리고 가끔 내 팔로워가 아닌 이가 이 글에 좋아요를 눌렀을 때 공개 계정을 클릭해 들어가 보면, 대부분 어린 학생(교복을 입었다)이거나 많아도 20대 초반(대학생임을 인증했다)이었다. 내가 단 해시태그를 대부분 그들의 계정에서도 본 걸로 짐작컨대 해시태그를 타고 들어온 것이다.


모 기업에서는 위 글을 보고 S생명과 함께하는 '자살예방-생명존중 캠페인'에 콜라보 작업을 재능기부로 요청하기도 했다.(개인적으로 재능기부는 선호하지 않는데 취지가 좋아 참여하려다가, 쉽지 않은 작업이라 결국 발을 뗐다)


내가 거창하게 이 극단적 선택, '자살'이라는 테마를 굳이 오랜만에 올리는 브런치 글감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  글을 '실제로 써먹' 사례가 얼마 전 현실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



13년을 알고 지낸 지인이
'죽고 싶다'라고 고백했다.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심각했다. 그가 절차를 밟아가던 결혼이 어떤 사유로 확 엎어지고,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지만 원하는 직장에 취업 실패한 것. 이런 일들이 한 시기 동안 확 일상에 들이닥치면서 완전히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는 전화 받 않았다. '죽고 싶다'는 말과 '다 내려놓고 싶다'는 말만 카톡으로 이틀째 무한 반복했다. 발언의 수위로만 놓고 봤을 때 사태는 심각했지만 나는 내 생계가 걸린 기업 정규 강의가 있는 날이었기에 즉각 처하기가 난감했다. 원래는 강의장까지 버스를 타고 여유 있게 가는데, 카톡 답장을 하느라 택시를 급하게 탔다. 기사님께 여쭤보니 강의 시작 5분 전 도착 예정(내비게이션 피셜)다. 

이미 전국 각지에서 내 강의를 들으러 직원들이 강의장에 모여있는 상황에, 급하게 전부 다 취소하고 당장 그에게 달려가기엔  난감했다. 강연 7년 차 동안 어긴 적 없는 '15분 전 도착'의 기록을 이미 깰 판이었기에 난 나름의 시간을 지인과의 카톡에 꽤 바치고 있던 상태.


마음이 급해진 나는 위 책 구절을 풀어서 보내기도 하고, 그의 발상을 긍정으로 돌리기 위해 내 모든 글발을 동원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멘털은 이미 자신의 극단적 선택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다만 다행인 사실은 대화를 메시지로나마 '이어가고 있'.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한참 카톡을 하다가 강의장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 그가 '자기 XX두 차례 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급하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눈물이 차올랐다.


첫날에 카톡을 받았을 땐 그가 스스로 바닥을 찍고 일어날 거라 확고히 믿고 꾹 참았다가, 이틀째가 되 시간까지 촉박해지나도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카톡 대화 내용 중 자살을 시도한 정황과 극단적 발언을 반복한 부분만 캡처해 경찰(112)에 문자로 신고했다. 택시로 이동 중 가장 가까운 경찰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지금 강의를 하러 가는 중이라 통화를 길게 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금 그 지인의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다.


'어.. 제가 잘 모릅니다'


'그럼 어디에 거주 중인지는 아시나요?'


'모.. 릅니다'


사실 그는 여성이고 동생이기에 내가 집주소까지 묻거나 직접 찾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도 가끔씩 만날 때면 늘 '중간 지점'이라는 곳에서 만났다. 그래서 실제 사는 '도시'이름도 막상 경찰이 물으니 헷갈려서 두 곳을 말했다. 위치 추적을 하는데 필요한, 명확한 기본 정보라곤 이름과 얼굴, 전화번호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급함을 느껴 강의를 취소했 해, 막상 달려갈 목적지 주소 몰랐다니. 새삼스러운 자괴감이 들었다. 아, 내가 이러고도 과연 그녀를 '지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경찰은 신고자인 나와 그가 '무슨 관계'인지 물었고, 나는 약 13년 전 대학생 시절, 타 학과의 선후배로 알게 되어 지금껏 종종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다시 질문을 이어갔지만 녀에 대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의 없었다. 마침 택시가 강의장 앞에 도착했고, 나는 더 이상 통화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카톡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경찰에 신고했느냐'라고. 이번이 세 번째 경찰 방문이라고 했다. 그녀의 투덜거리는 톡이 계속됐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강의장에 들어갔다. 민중의 지팡이여, 나머지는 부디 도와주소서. 강사는 강의장(무대)에서만큼은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프로여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을 뒤로한 채, 밝은 가면을 쓰고서 3시간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뒤늦게 카톡을 확인해보니, 경찰의 끈질긴 간섭(?) 극단적 선택까지는 만류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그녀는 '죽고 싶다'는 말을 또 이어갔다. 이건 분명히 '신호'였다. '연결'을 바라고, '들어주길'바라고, '붙잡아 주길' 바라는 '살고 싶다'역설적 신호.

(이 사건의 클라이맥스가 다 지나고, 불현듯 무겁게 짊어진 내 마음을 해소하려고 독서모임 멤버를 불러 소주를 거의 3년 만에 마셨다. 자신도 그런 고백을 쏟아낸 적이 있었다고 말하며, 지인인 그녀는 지금 나를 감정의 배설구로 쓰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일단 그녀가 사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만약 이 최선을 다하고 나서도 다른 상황이 일어나면 그건 그녀의 운명일 거라고. 살아있을 때 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하며 남은 소주를 들이켰다.)


맨 처음에 나는 죽고 싶다는 그녀에게, '죽고 싶다'는 생각은 거두고 '이렇게 살까 저렇게 살까'만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두려움 빚이기심의 발로다.


'이게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면 어쩌지? 그럼 나는 최대한 끝까지 직접적으로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고개를 저었다. 가 더 연약해져 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도무지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자, 나는 나름의 책을 강구했다. 정신의학 전문의가 '상담 노하우'를 밝힌 인터뷰 폭풍 . 검색 결과로 나온 분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선 충조평판(충고하지 말고, 조언하지 말고, 평가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는 어록이 담긴- 책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 정신의학과 의사였다.  인터뷰에서 말한 살위험에 놓인 이와 대화할 때 유용한 한 가지 '상담기술'을 득하 됐다.

출처: MBC 무한도전
'그랬구나'라는 리액션


나름 내가 상담이론을 배우고 실습도 나갔던 사회복지학도였는데, 막상 실전에서는 급한 마음에 자꾸 '가르치려'드는 리액션만 했다는 걸 깨달았다. 지인이 여성이라는 이유후배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내가 '죽고 싶던' 시절에 극복이 아닌 '회복'했던 경험이 떠올라 그걸 인간 대 인간으로 진솔하게 말해주고 마음 강해서였다. 근데 알고 보니 그건 올바른 상담이 아니었던 거다. 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상황이고, 다른 결과를 운명으로 품고 있을지 알지 못하므로.


물론 내가 상담 전문가도 아니고. 과 몇 년 전까지도 공감능력을 발휘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넘치는 삶은 아니었기에 애초에 전공을 살리지 않았던 게 컸다. 무엇보다 전문영역인 '상담'을 함부로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상담 요청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먼저 들어왔기에 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겨우 검색 결과에 의존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도움은 됐다.


정혜신 의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누구나 공감하는 태도만 갖춘다면 일상의 다정한 전사이자, 치유자가 될 수  한다. 꼭 내게 하는 말처럼 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어록도 남겼다.


내게 집중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죽지 않는다.


상대가 '집중'과 '연결' 느끼는 말이 '그랬구나'라는 리액션이었다. '어떤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힘든 거니?'하고 묻고, 그랬구나 하고 계속 경청해야 한다는 말.


실제 내가 '그랬구나'를 응용하여 (카톡으로) 대화를 이어가니 극단적 선택의 고백을 반복한 그녀는 놀랍게도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다.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오랫동안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무려 13년을 알고 지낸 지인인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주지몰랐고, 이토록 힘든 마음을 안고 생을 버티는 현실도 알지 못했다. 경찰이 깨닫게 해 준 우리 사이의 진실. 가끔 만나 밥을 먹거나 가볍게 카페 수다를 떨었던 게 다였던 거다. 난 그때마다 만나서 무슨 대화를 했던 걸까. 13년이라는 숫자는 관계의 깊이 정도를 나타내는 그것과는 거리었다. 어떤 사람이 거의 언제나 웃고 있다면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가 된다(-신형철)는데, 내가 아는 그녀는 내 주위 사람 중 가장 밝게, 그것도 항상 웃는 사람이었. 아무래도 그 태도에 나는 물음표를 던지고 그 동기를 한 번쯤은 꼭 듣고서 공감해야 했었다. 오래된 지인의 자격으로써 말이다.


그래 아마도, 그동안
나는 '그랬구나'를
할 줄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정말 그녀에게 '집중'했었다면 좀 더 깊은 대화를 이어가며 진작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터놓았으리라. '그랬구나'의 태도가 었다면 말이다. 경찰의 감시(?)에 지쳤던 그녀는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하냐며 하소연을 해댔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엔 이런 카톡 하나를 남겼다.


'고마워요. 덕분에 용기 내서 살아보려고요. 다시 시작해볼게요.'


이 메시지 이후 안부차 보낸 내 카톡, 그녀는 몇 주째 답이 없다.(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최근에 읽은 흔적으로 보아 신변의 변화는 없는 듯 하여 다행)


'차단했구나'

+추가:
(이글을 쓴 약 6개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종종 연락이 먼저 옵니다. 그때 참 고마웠다고.)


그래, 내 인생엔 딱 여기까지가 그녀와의 좋은 인연으로 기록되겠구나. 하나 다행인 점은, 박한 상담을 요청받을 당시 내가 그걸 감당할 만큼의 괜찮은 일상을 사는 중이었단 사실이다. 는 이의 태도는 '감'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연과 감정을 '감당'할 처지인지도 중요하다. 나 역시 힘든 상황이었다면 무슨 말을 해댔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이거 다 지나가. 그러니까 죽을힘으로 살아.'


.. 따위의 말은 적어도 하지 않았다는 게, 날 굽어 지켜보던 신의 도우심이었다고.

이동영 작가 글귀


드디어 '그랬구나'를 달아 제대로 구사하 됐을 무렵엔 직접 만나 리액션을 들을  인은 곁에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그가 힘들어하는 내색을 보이면 내 이야기만 하거나 '충조평판'으로 가르치거나 겉도는 이야기만 고집 않겠다고 다짐한 계기로 삼았다.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괜찮아. 잘 견디고 있어. 너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 그래. 그래서 그랬구나...


나 자신에게도 매일 해줘야 하는 말. 공감의 말. 연결의 말. 집중의 말. 동등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해(understand)의 말이자, 함께 고통을 느끼는 연민(compassion)의 말. 얼마나 힘이 되는 기울임인지 이제야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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