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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Apr 08. 2020

1. 고양이 입양(1) - 너라서 다행이야

너라서 다행이야

아침에 일어나면 빠짐없이 꼭 하는 두 가지 일이 있다. 첫 번째는 다행이(동거묘)와 눈을 맞추고 쓰다듬으며 인사.     


“어이구 잘 잤어? 우리 다행이 예뻐라-”      


충분히 쓰다듬었다고 생각이 들면 다행이도 고개를 좌우로 파르르 털고 ‘고양이 세수’(자기 발목에 혀로 소독 기능이 있는 침을 묻히고 얼굴을 닦는 행위 반복)를 시작한다. 얼굴 다음은 자기 몸 구석구석 털을 혀로 정돈하는 일명 ‘그루밍’을 계속한다.


그럼 나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간다. 두 번째 코스. 기지개 한 번 크게 좌우로 켜고, 500ml 물통을 집어 들어 벌컥벌컥 마신다. 미지근한 물이나 따뜻한 차 한 잔 등이 아침 공복에 좋다는 전문가의 말을 익히 들었지만, 밤새 창가에 두어 차가워진 물을 꿀꺽꿀꺽 들이켠다. 내 장 활동이 활발해지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냉수다. 경험상 그렇다.


아침에 개운하게 큰일을 해결하고 나면 남은 하루 작은 일들은 알아서 술술 풀릴 듯한 기분이 든다. 거품으로 비누칠한 손을 30초간 꼼꼼히 씻고서 거울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 틈을 알아챈 다행이가 뒤에서 자기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고 보챈다. 욕실 문 옆 높은 곳에 올라가 냐옹 거리며 앞발로 툭툭(여~ 집사, 여기 나 좀 보게나)하는 제스처를 한다. 나는 한마디 건넨다.   


“다행아, 너 고양이야. 그러니 넌 좀 ‘시크’해질 필요가 있어.”

“냐아웅 냐아아웅”     


아니 어쩜 그냥 이 모습이 ‘다행이’다. 이 역시 고양이의 매력 중 하나인데, 함께 사는 자신의 집사에게만큼은 한없이 애교쟁이가 되는 사례가 많다. 흔히 오해하는 고양이의 시크함이란 '자기(고양이)가 원할 때만' 애교를 부린다는데 있다. 인간들처럼 “예쁜 짓”하라고 해서 그 즉시 잘 보이기 위해 예쁜 짓을 하진 않는단 거다.

    

‘까짓 거 오늘은 애교 한 번 떨어주지.’ 하는 다행이 특유의 표정느끼는 건  기분 탓이 아님을 어째 지울 수 없다. 그러니까 인간 세계에서 ‘항상 시크한 이미지 = 고양이’인 건 내가 다행이를 볼 때 제 멋대로 씌운 편견일 뿐이었다. 이걸 깨닫고 난 이후 나와 다행이 사이의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낮밤 가리지 않고 소리 내며 캣휠을 달려 시끄러운 다행이도, 툭하면 창문을 열어젖히는 다행이도, 시도 때도 없이 잠만 자는 다행이도, 다 사랑스럽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2018년 2월 13일. 약 5개월 된 다행이를 내가 입양하기로 결정한 건 우연 아니었다.


(다음화에 계속)

https://brunch.co.kr/@dong02/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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