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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Apr 10. 2020

1. 고양이 입양(2) -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1화 먼저 보고 오기 >> https://brunch.co.kr/@dong02/1844


2018년 2월 13일. 약 5개월 된 다행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버킷리스트에 ‘고양이와 함께 살기’를 적어놓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공덕역과 서강대역을 잇는 경의선 숲길공원을 난 걷고 있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공원에 있던 꼬마 아이들을 피해서 내게 아장아장 다가왔다. 내 다리 주변에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 얼굴을 비벼댔다. 꼬마 아이들은 날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내가 벤치에 앉자, 조르르 따라오다 폴짝- 점프를 하더니 내 품속에 쏙 들어와 날 꼼짝 못 하게 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캣맘과 집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길고양이의 행동을 전문용어로 ‘간택’이라 부른다. 고양이가 자신을 보살필 집사를 직접 선택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원을 산책하던 아주머니들은 “어머, 고양이예요? 강아지인 줄 알았네. 어머나. 얘 좀 봐. 신기해라.” 하는 말을 꼭 한 마디씩 던지고 지나갔다. 신기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버킷리스트가 이뤄질지도 모를 순간이 도래한 현실에 벅찼다. 그러나 그건 바람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 이사예정일이었는다는데 있었다. 한참 짐을 싸던 중인 데다가 이미 계약이 끝난 이사 할 집은 반려동물이 허용되지 않는 오피스텔이었기에 일개 세입자로선 별수가 없었던 거다.      


유난히 햇살이 좋은 날이어서 한참을 그렇게 다리가 저리도록 안고 있다가 결국 억지로 깨워 인사를 다. 지나는 사람들은 다들 ‘나비야’라고 불렀다. 내 다리와 무릎에 자기 몸과 얼굴을 끝까지 비비던 검은 고양이.

며칠이 지나 이사 후 그리워져서 다시 돌아온 그곳에 그 아이는 흔적조차 없었다. 사람의 손을 탔다가 버려진 게 틀림없었는데, 선택한 나까지 버렸다고 생각해 또 한 번 상처 받은 건 아닐까. 한없이 미안해졌다. 내가 진작 여유가 있었다면 품어줄 수 있었으리라.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YOLO(You Only Life Once)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의 한탕주의가 아니다. 생각보다 길고 의지보다 짧은 이 인생에 기어코 다가오고야 말 '가장 소중해질 무엇'을 위해서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을 만큼 부단히 나를 여유 있게 만드는 일의 절실한 구호인 것이.     



한참 ‘고양이 열풍’이 SNS에 퍼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귀여운 아기 고양이 사진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도배했다. 댓글에는 ‘나만 고양이 없어’가 수백 개씩 달렸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말이다. 무턱대고 아기 고양이 시절만 생각하고 사거나 입양했다 버리는 인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고양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있고, 자기만의 생활패턴이 있고, 본성적 니즈가 있고, 나이가 들면 건강도 퇴화해서 눈이 안 보이거나 치매에 걸리기도 한다는 걸 모르는 사례가 많다. 고양이에 대한 사전 지식,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는 환경, 고양이의 평균 수명 동안 한결같이 지낼 수 있는 성향과 책임질 수 있는 인성, 병원비나 관리비를 소비할 여유가 탑재되어야 ‘나는 고양이가 있어’라고 겨우 말할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고양이를 ‘키운다’는 말은 내겐 왠지 어색한 말이다. 고양이는 인간처럼 어느 정도 키워 놓고 나면 독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실컷 편하게 집에서 지내다 자연에 방생(?)하면 그것만큼 무책임한 건 없다. 영역 동물인 데다 예민한 고양이의 습성상 엄청난 혼란을 겪다가 제 명에 못 살고 무지개다리를 건널 게 뻔하다.


한 번 품기로 마음먹었다면 약 15년 내외로 평생 함께해야 한다. 그러니 키우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것’이라고 해야 맞다. 인간인 나보다 더 빨리 늙어버린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되겠다. 어쩌면 ‘버린다’는 것도 그렇다.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가진다’라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하는데, 주체가 있는 생명을 자기 멋대로 ‘가진다’는 건 영 어색하지 않은가. 그러니 수많은 길고양이들은 처음부터 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면 ‘못된 인간에게 내팽개친 것’일 테다. 가슴은 아프지만 그들을 품어주지 못해 애석하다. 내가 돈을 많이 번다면 꼭 마당 넓은 집에 길고양이들을 품고 싶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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