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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ul 18. 2020

이 작가는 글이 안 써질 때 이렇게 한다(f.슬럼프)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 방법입니다. 참고만 하세요.

글쓰기 강연에서 강사에게 가장 많이 하는 수강생의 질문 중 BEST 5 안에 드는 질문.


작가님은 글 쓰다가 막힐 때 어떻게 하세요?
슬럼프가 온 적은 없으신가요?


나의 동공이 잠시 흔들린다. 왜냐. 나는 글 쓰다가 막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자체가 나에게 놀이인데(고통스럽긴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희열 & 고통이랄까) 슬럼프가 웬 말인가. 그래도 이 질문을 한 사람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고, 뭔가 도움을 요청해서 시원한 답을 얻고 싶어 하는 니즈가 있었을 것이니, 난 이렇게 답다.


네, 저는 슬럼프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차차, 실수하고 말았다. 내가 설사 슬럼프가 없더라도 이렇게 결론을 내려서는 절망감을 줄 수 있었는데. 그 순간 희망과 위로의 이동영 작가는 온데간데없고, 개인주의에 빠진 이동영 강사만이 강의실에 있었다.


겨우 싸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덧붙인다는 말이, "글 쓰다가 막힌 적은 없었고요. 결국 때마다 해답을 찾긴 하지만 가끔 시간이 걸릴 때는 있습니다."였다. 탁월하게 잘 쓴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막 쓴다'는 말이리라. 그래서 이런 나도 가끔 글이 안 써질 때, 내가 어떻게 하는지 솔직히 써보려 한다.


이동영 작가가 글이 안 써질 때 취하는 방법
1. 일단 쓴다.

이 무슨 궤변의 논리인가. 안 써질 때 일단 쓴다니?라고 저항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일단 쓴다는 말은 단수를 '일단'으로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수동 스틱 차량 운전을 해본 경험이 있는가? 나는 트럭으로 운전을 배웠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먼저 1단 기어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속도가 올라가고 자동차 RPM(Revolution Per Minute) 바늘이 올라가면 2단, 3단을 차례대로 올린다. 자, 다시. 그전에! 차가 1단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잘 아는 것처럼, 키를 꽂거나 버튼을 누르고서 '시동'을 먼저 켜야 한다. 한 겨울에는 예열도 필요하다. 장시간 공회전(운행 중이 아니지만 엔진이 지속해서 가동되고 있는 상태)은 불필요하다.


글쓰기에 이 비유를 적용해보자. 시동을 켜기 위해 키를 꽂는다는 것은? 시동을 점화하는 '키(Key)'인 내 '몸'이 글 쓸 채비를 해야 한다는 거다. 만약 글쓰기가 오랜만이거나 마음의 날씨가 시려서 얼어붙은 머리와 가슴이라면 그대로 두어선 안 되고 약간의 예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길게 하는 건 연료가 빨리 달고 엔진이 손상되며 연료의 불완전 연소로 인해 생기는 배출가스로 대기오염(주변에 민폐)마저 초래하니 주의할 것.


내 몸의 글 쓸 채비란? 일단 컴퓨터든 원고지(A4용지나 노트)든 앞에 두고 끄적이는 거다. 황정은 소설가는 침실에서 데스크톱까지 가는 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인형과 같은 물건을 즐비해둔다고 한다. 일단 앉으면 기어이 쓰고 말 텐데 키보드까지 가는 거리가 세상에서 가장 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거기까지 몸이 기분 좋게 움직이도록 동선을 한껏 꾸며놓는다 한다.


자, 나름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앉았 글을 쓰자. 욕을 써도 좋고, 신에게 감사를 읊다가 돌연히 원망을 쏟아내도 좋다. 어차피 날것은 비공개할 것이니까. 일단 쓰는 행위가 중요하다. 내 앞의 사물이든, 들려오는 소리든,  냄새든 맛이든 뭐든 간에 오감을 다 활용해서 쓴다. 도무지 쓸 게 없으면 뭐 하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방법도 있다. 정 안 되면 나가서 바람이나 좀 쐬고 오자.(이동영 작가는 녹음기를 켜둔 채 산책하며 가상의 독자나 수강생에게 말하듯 중얼중얼 말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 해당 녹음분 원고화하기도 한다.)



2. 잔다.

'비법'이라기엔 허무한가? 아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코끼리가 침대 위를 지나도 끄덕 않는다는 [시몬스 침대] 광고에서 재밌는 장면이 나왔다.


비틀스 멤버 폴 메카트니의 <Yesterday(예스터데이)> 작곡 탄생 비화를 차용한 건데, 다음과 같았다. 폴은 1964년 1월 경,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문득 꿈속에서 들려오는 멜로디를 들은 폴은 벌떡 일어나 홀린 듯 침대 옆의 피아노에 앉는다. 그렇게 그대로 꿈에서 들었던 선율을 연주하며 악보로 옮기기에 이르렀다.

[시몬스 침대] 광고 중

그는 한 달 가까이 혹시나 자신이 어디선가 들은 노래를 착각해 표절한 건 아닌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들어본 적 있느냐'반복해 물었다고 한다.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 이 곡은 발표되었고, 비틀스의 곡 중 지금까지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곡으로 남아있다.


물론, 잔다고 해서 누구나 글이 막힐 때 뻥 뚫리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동영 작가의 경험상 '완성형 문장'으로 표절 없는 영감이 떠오른 적 수차례 있었다. 실의 직장생활이 힘겨웠던 시기에는 자각몽(루시드 드림)으로 신나게 꿈 속 스토리를 유영했던 적도 있었다.


실제로 나 스스로 좋다고 생각한 글들보다, 꿈속에서  깨어나자마자 옮겨 쓴 글들이 훨씬 많은 좋아요가 눌리고 공유가 되었다. 나는 이것을 '이완'효과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3. 화장실에 간다.


내 안에 불순물을 시원하게 배출하고, 손을 뽀득뽀득 씻노라면 번뜩 영감이 떠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어떤 단어나 아이디어가 생각났던 게 다시 안 떠오를 때, 화장실에 가면 신기하게 생각이 난다.


내 몸과 정신을 '이완'하면 그 순간 긴장이 풀어지고, '생각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생각이 나는 거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해서 내가 낸 아이디어는 모 대기업에서 홍보 파트를 맡았을 때 상사로부터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인정받은 바 있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에 화장실은 대개 샤워실과 함께 있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할 때마다 나는 휴대폰을 꼭 들고 간다. 그러나 매번 비누칠을 다 한 상태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문장, 글감이 떠오르기 때문에 폰이 옆에 있도 거의 소용은 없다. 씻는 내내 앞 글자를 외워야 한다. 3~4개 이상의 영감들을 수건으로 온몸 물기를 털어낼 때까지 중얼중얼거린다. 그러고 나서 겨우 메모한다.


글이 안 써질 때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머리만 긁고 짜증만 내는 것보단 백배 천배의 효과를 본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일 테니, 산책 중독자 찰스 디킨스처럼 산책을 하거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자신이 정한 시간 동안 매일(아침 8시부터 4시간 30분씩) 무조건 쓰고 보는 등의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이완'활용법을 찾길 바란다. 이완으로 몽롱한 시간은 괜스레 센티해지는 새벽 시간, 음주했을 때 주저리 하는 시간도 다 가능하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길.



4. 카페(긴장이 되는 공간 혹은 자세)에서 쓴다.


위 3번과 반대로 '긴장' 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그중 나는 오랫동안 카페에 가는 방법을 택했다. 사람의 시선이 적당히 있고 음악도 흐르는 백색소음 가득한 곳에서, '나는 작가다'라는 분명한 콘셉트 홀로 앉는다. 괜히 고뇌에 찬 척만 하지 고 사정없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게 더 작가처럼 보인다.)


노트북이나 태블릿 PC가 없다면 종이에 필기구로 쓰는 것도 물론 좋다. 손안에 든 세상 스마트폰도 좋지만, 인터넷의 유혹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보통의 집중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리 권장하지 않는다.


"시나리오 쓸 때 손님이 많지 않아 집중이 잘 되던 단골 카페가 줄줄이 다 망했다"


 아카데미 수상소감을 말했던 봉준호 감독의 사례만 보아도 카페에서 글쓰기를 이어가는 창작자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실제 많은 작가들은 카페에서 글을 쓴다. 저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는 카페라는 공간이 창작자로 하여금 적당한 긴장을 부여해 준다고 생각한다.


천장이 높을수록 창의력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데, 집보다 천장이 높은 카페를 찾는 것도 방법이겠다. 집에서 '퍼져 있지만 않는다면' 집 역시 집필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카페와 같은 '긴장'의 효과를 집에서 낼 수만 있다면야 돈도 안 들고 나쁠 게 없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카페에서 주로 작업하다가 코로나 19 이후 집으로 집필 공간을 옮겼다고 한다.


실제로 나는 군대에서 얻은 훈장(?)인 허리디스크로 인해 앉아서 집필을 못하여 지금 이 브런치 글도 꼿꼿이 선 채로 작성 중이다. 카페에서는 스타벅스의 중앙 있는 우드 슬랩 테이블에 주로 서서 작업하는 편이다. 요즘은 코로나 19 여파도 있고 돈도 아껴야 하는 고로 주로 집에서 자유로운 집필을 한다. 서서 집필하면 적당한 긴장 있다. 헤밍웨이도 그래서 서서 글을 썼던 걸까? 난 어느 정도 그런 심리가 작용했다고 본다.  


카페와 같이 긴장할 수만 있다면 집필 장소는 어디든 무관하다. 다작을 해도 베스트셀러만 기록하는 유시민 작가. 그는 실제 집에서 떨어진 집필실에 나인 투 식스를 지켜 출퇴근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강명 작가는 타이머를 활용하여 글쓰기를 한다. 글 쓰는 시간을 매번 잰다는 것이다. 이동영 작가의 강의에서는 거꾸로 20분 타이머가 나온다.


'긴장을 할 수 있는 자세'는 이처럼 타이머를 재고 스톱한 숫자의 기록이나 자신이 정한 시간, 혹은 깎여내려져 가는 숫자를 거듭하며  안에 달성을 목표로 만들어 가는 방법이 있다. 인간의 목표의식과 마감효과 심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5. 쓰지 않는다.


단, 모니터를 켜 둔 채로 돌아서길 바란다. 노트를 펼쳐 둔 채로 외면하길 바란다. 쓰는 행위는 중단하지만, 글을 쓰려는 태도만큼은 중단하지 않는 거다. 글이 안 써지는데 억지로 쥐어짜서 더 괴롭다면 차라리 잠시 PAUSE 상태로 돌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재밌는 사실은 글쓰기를 멈춘 채 다른 일을 하면, 보이고 들리고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글 거리가 된다는 점이다. 쓰지 않는다는 건 영원히 쓰지 않겠다는 절필을 의미하지 않는다. 굳이 말을 만들어내자면 '휴필'이다. 다른 행위를 하면서 혹은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새로운 경험이 글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대화든 끓어오르는 감정이든 우연한 상황 속 발견한 스토리텔링이든 지금 상황 자체든 한 구절의 명문장이나 영상 속 명대사든 간에 말이다. 끔은 쓰기 위해 쓰지 않는다는 이 기막힌 역설을 기억해보는 건 어떨까.



앞서 전제했듯이, 모든 방법론은 스스로 겪어보고 문제를 직면하여 인식해야 해결책도 강구할 수 있다. 내가 아파봐야 치료 방도를 찾는 것처럼. 남의 방법론은 남의 것일 뿐이다. 글쓰기가 막힐 때 포기하지 말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나서길 바란다. 부디 건필을 빈다.


글_이동영 작가(글쓰기 인문 강사)

글쓰기 강연•수업 섭외 문의
Lhh2025@naver.com
010-8687-3335

글쓰기 책 추천 >> http://naver.me/GXh2bjc

이동영 작가의 <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에 다양한 글쓰기 방법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매일 공개 글쓰기 17일 차 no.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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