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는 글을 여러 번 읽으면서 고치고 다듬는 작업입니다. 탈고(원고 쓰기를 끝마치기) 직전 마지막 작업이지요. 모든 글쓰기책에서 '퇴고'는 빠짐없이 나옵니다. 퇴고를 말하지 않고는 글쓰기를 말할 수 없으니까요.
그럼 퇴고는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일필휘지라는 말이 있지요. 붓글씨를 한 번에 휘둘러 힘 있게 쓴다는 말이자, 그은 자리를 다시 긋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동시에 글쓰기를 할 때 한 번에 쓰는 뛰어난 필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필력을 치켜세울 때 말하는 일필휘지라는 건 생각과 동시에 쓴 초고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머릿속에서 퇴고가 이뤄진 거죠. 유시민 작가가 항소이유서를 쓸 때 고쳐 쓸 수 없는 상황이라서 한 번에 썼던 것처럼 말입니다. 명문으로 꼽히지만, 그건 단번에 휘갈긴 게 아닙니다. 그간 쌓였던 발상들이 '콘텐츠'로 차오른 순간, 조용한 퇴고 작업이 치열하게 있었던 겁니다.
짧은 아포리즘은 생각과 동시에 쓰는 무의식의 일필휘지가 가끔 나올 수도 있겠지만, 논리적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문은 머릿속 퇴고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저는 일필휘지나 머릿속 퇴고를 하라고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대부분 노트가 있고, 스마트폰이 있으니까요.(국민 스마트폰 보유율 만 13세 이상 90%) 충분히 빼고 고치고 다듬고 대체할 여유가 있잖아요. 그럼 무리할 필요가 없죠. 독자에게 가 닿을 글의 완성도를 위해서요.
일단 할 말이 넘치는 순간 쏟아부어 보세요.
아무에게도 그 글을 바로 보여줘선 안 됩니다. 혼자서 집중하는 겁니다. 글을 소리내 읽어보면서 잘못되고 삐져나온 것들을틀린그림찾기 하듯찾아보세요. 빼고 다듬으세요. 퇴고가 그래서 있는 거 아니겠어요?
퇴고는 '객관화' 작업입니다. 내가 쓴 글을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볼 수 있어야 하죠. 나의 시선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시선에 빙의(?)할 수 있어야 좋습니다. 거울도 왜곡이 없는 거울처럼 말이죠.
출처: 무반전 거울 [리얼미]
퇴고의 끝은 '완벽'이 아닙니다. 완벽이라는 건 불가능합니다. 글을 쓸 때 완벽하기를 방향성으로 '지향'할 수는 있어도 절대적 목적이나 목표로 두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퇴고의 종착지는 '완성'입니다. 끝마치는 것이죠. 그러기에 퇴고를 '언제까지'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적절한 포기'로 마무리하라고 답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어떤 평생학습센터에서 강의를 할 때, 한 수강생이 자랑하듯 말씀하시더군요. 한 편의 글을 수십 년 동안 퇴고 중이라고요. 평생 이 글을 퇴고하는 것이 숙제라고 말입니다. 그렇게저에게 봐달라면서 글을 읽었는데...
쩜쩜쩜
그때 제가 말씀드린 피드백이 '퇴고는 적절한 포기입니다'였습니다. 퇴고가 오래 걸릴 수는 있어도 평생 퇴고한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평생 한 편의 글만 퇴고하겠다고 매달린다면, 결국엔 마침표 하나만 남겨둔 채 떠날 것 같습니다. 묘비명에 이렇게 소회를 밝히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