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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Dec 29. 2020

책을 펼치면 '아무것도 없는' 백지 책 모음(실화)

놀랍게도 이 책들은 모두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책들이다.

1. 섹스를 제외하고 모든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
≪What every MAN thinks about apart from SEX≫
200페이지 분량의 본문이 있는 이 책은 16페이지가량을 제외하고 나머지 184페이지는 모두 '백지'다.  

이 책은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었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라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시무브는 심리학 전공자인데, 한 인터뷰에서 출판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랜 연구 끝에 저는 남성들이 섹스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다음 목표는 '섹스를 제외하고 모든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수 십 년의 연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길 바랍니다."


우리나라에는 버들미디어 출판사에서 번역본으로 출간했다.

우리나라 번역본 책 제목은 ≪MEN 남자는 섹스 말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SEX≫이다. 버들미디어 출판사


이 책을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자, 저자가 '버들미디어 편집부'로 되어 있는 걸 확인했다. 의아했다. 알고 보니 184페이지가 백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없어서 정식 판권을 가지고 올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그림이 있던 16페이지 분량은 원작 영국판과 다르게 편집했단다. 재는 일화다.


이 책은 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부분 독자들은 연습장 노트로만 쓰고 있다고 한다. 마치 알라딘이나 예스24 온라인 서점에서 포인트로 구매하는 필기용 노트 굿즈처럼 사용하는 거다.

국내에서 8,800원(10% 할인으로 온라인 서점 기준가 7,920원)을 주고 재미있는 제목이 달린 노트 1권을 사는 셈인데, 친구에게 선물하는 책으로 유명해진 영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선 구매율이 그리 높지는 않다는 출판사 관계자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온라인 서점에서 '심리' 카테고리나 한국 에세이 카테고리로 주제가 분류되어 있다거나 평점이 10점 만점이라는 점이다.


아래는 10점 평점 한 줄 평:

"내용은 없지만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남자가 평소 무엇을 생각하는가? 에 대한 본능적 철학을 담은 책"



2. 미국 민주당에 투표하는 이유
: 종합 가이드
REASONS TO VOTE FOR DEMOCRATS  - A COMPREHENSIVE GUIDE -
이 책은 266페이지가량이 실제 빈 페이지로 구성됐다. / 아마존

위 1번 책과 흡사하다. 보수파 데일리 와이어 편집자 마이클 J. 놀스는 폭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책을 연구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10년 동안 민주당을 관찰해왔습니다. 경제, 외교 정책, 국토 안보, 시민권 등 그들의 기록과 투표 이유를 보았을 때, 모든 페이지를 비워두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 3월 10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캡처

아래 사진이 이 책의 저자 얼굴인데, 사회에 불만이 쪼큼 많아 보이긴 하다 ㅎㅎㅎ 풍자 코미디 좋아써.

미국 예일대, 스텔라 애들러 연기학교 출신의 놀즈는 작가(?) 겸 배우이다. 무려 예일대 출신 작가여쒀....

이 책에 달린 아마존 별점 만점 댓글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 오디오북이 빨리 나오기를!
- 이 책은 모든 걸 말해준다. 실패한 민주당의 정책 아우트라인과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가 왜 대선에서 승리했는지까지 설명해준다.
- 완전 유익한 책!
- 전적으로 마음에 든다. 놀즈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 민주당원들이 이 책의 내용을 국가 플랫폼에 복붙하면 아마 멈출 수 없게 될 지도 ..
- 숨 막힐 듯 짜릿하고 탁월한 책
-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뒤늦게, '왜 트럼프는 신뢰와 존경, 찬사를 받아야 하나' 등이 백지로 출간되었지만 외면당했다고 전해진다.

패러디 책 시리즈 - 아마존


3. 왜 살비니는 신뢰, 존경, 찬사를
받을 만 한가?
2018년 부총리 겸 내무장관에 오른 유럽 대표적 극우 정치인으로 꼽히는 살비니를 풍자한 책

이탈리아 극우 성향의 정치인 살비니에게 신뢰, 존경, 찬사는 없다는 조롱 섞인 풍자가 담겼다. 110쪽 모두 백지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아마존 차트 무려 1위에 랭크된 책이다.

이탈리아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저자는 위 1번과 2번 저자와 똑~같이 말한다. 노트 부분만 빼고.

"수년간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연구 주제에 관한 것을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걍 노트로 사용하라."


한화로 약 9,300원이나 주고 이 책을 산다는 건 그만큼 이 극우 정치인에게 이탈리아 국민들이 얼마나 비호감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평점도 역시 90% 이상의 리뷰 독자가 별 5개(최고 점수)를 남겼다.


- 길고 난해하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 첫 페이지부터 역사·정치·사회적 분석의 깊이와 정확도가 느껴진다. 간명하지만 심오하다
손가락 욕 아님 주의 _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동맹당 대표 / EPA 연합뉴스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종이가 아깝다. 국내에서 좀처럼 통하지 않은 이유는 종이에게 미안한 짓을 하지 않으려는 국내 출판사들의 최소한의 양심과 독자들의 양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신은 만약 '백지'로 책을 낸다면 어떤 제목으로 내고 싶으신가요?
의견이 있다면 자유롭게 댓글을 달아주세요.
누가 아나요? 출판사에서 컨택이 올지 ㅎㅎ

https://linktr.ee/leedong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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