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병행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 환경을 스스로 만드는 자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분 중에 황정은 작가라고 계세요. 찐팬 독자는 책만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가를 직접 만나러 가잖아요?
당시 황정은 작가의 신간이 나온 기념으로 출판사에서 독자와의 만남 북토크를 연다는 소식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요. 2부에독자가 질문하고 작가가 답하는 메인 이벤트를 했어요. 그때 한 독자가 마이크를 잡고 서서 가늘게 떨면서이런 질문을 했던 걸로 기억해요. 제 기억이 정확하진 않더라도 핵심은 명확하니까 소개를 해드릴게요.
“작가님은 글을 쓰는 일이 매번 즐거우신가요? 힘들면 어떻게 하세요?”
이에 황정은 작가는 이렇게 답했어요.
“저는 랩탑(노트북) 앞에 일단 앉으면 글을 잘 쓰는데요. 솔직히 거기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 주변에 놓아둬요. 좋아하는 인형이나 예쁜 것들..
그렇게 좋아하는 걸 두어서 그걸 따라 그쪽을 향하면 결국엔 랩탑 앞에 앉게 돼요. 그리고 글을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쓰는 거죠.”
개인적으로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 많은 작가나 글쓰기 강사들이 글쓰기를 잘하는 법으로 ‘일단 쓰세요’라는 답을 하지요? 이건 누굴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경험상 가장 좋은 해답이라서 반복됩니다.
그런데 글쓰기가 몸에 밴 작가가 아닌 사람들은 그 '일단 쓰는' 게 어렵기 때문에라도 접근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정말 '아무 글'이나 쓰는 겁니다. 공개한다는 생각 말고, 힘을 빼고 아무 글이나요. 하나 염두에 둘 점이 있다면, 남의 표현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끼기보다는 내 언어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면 좋겠습니다. 쓰고 나서 다듬으면 되니까 우선 내 고유한 목소리로 쓴다는 생각을 놓지 마세요.
그럼 ‘앉으면 쓴다’ 혹은 ‘펜을 들거나 PC를 켜면 쓴다’, 'OO분 타이머를 켜면 쓴다'라는 공식이 루틴처럼 생깁니다. 습관처럼 자동화될 때까지 해야죠. 이게 미치도록 어려운 분들은 방법이 있습니다.
최대한 ‘글쓰기 스텝’을 줄여보기
글쓰기 스텝 줄이기의 실천 예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스마트폰을 켰을 때 자꾸 딴 데로 샐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아닌 도구(펜 or PC)를 활용해서 글쓰기에 더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
(분량이나 퀄리티에 집착하지 말고 쓰는 시간이 단 20분이라도 글쓰기에 몰입해보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또 하나는 황정은 작가처럼 내가 글을 쓰는 공간까지 어떻게든 내 몸이도착하도록 환경설정을 하는 거죠. 생활형 예시로 비유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박보영
자, 여기 매일 양치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귀찮고 싫은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아이가 스스로 양치질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너 이빨 누렇게 된다’ ‘입 냄새 나 저리 가’라는 말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라면 펌핑치약이나 전동칫솔을 선물해서 밥상과 가까운 곳에 놓아줄 것 같아요. 욕실에 가서 치약을 번거롭게 짜고 팔을 흔들면서 하는 보편적 행위를 약간의 스텝도 줄이면서 동시에 도구를 바꿔 변형을 주는 거죠.
언뜻 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니지만, 싫은 것·고통스러운 것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개념이거든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외부에서 보는 평가와 개인의 개별적 불호·고통은 다릅니다. 개인에게는 귀찮음이나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 자기만의 우주 속에 갇히게 되죠. 타인에게 동기를 주고 싶을 땐 그의 불호와 고통에 100% 공감은 못하더라도 접근성을 높이는 시도 정도는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