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무게감이 클수록 글쓰기의 진도는 나가지 않는다. 확 부담을 내려놓고서, 한창 인기 있던 책 제목처럼 '미움받을 용기'를 내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일단은 매일 글을 올려보기로 했다. 작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매일 글을 쓰는 건 매 끼니를 챙겨 먹는 일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매일 글을 올리는 건 다른 문제다. 쓰는 걸 인증하기 위해서 올리는 것도 위험하다. 그렇게 올린 허접한 글이 몇 개이며, 또 글을 내린 횟수는 얼마였던가.
새로운 글을 공장식으로 찍어 인증하는 것보다 구글링을 통해 내가 과거에 쓴 글을 모아보기로 했다. 내 이름을 글에 새기는 걸 좋아했던 고로 '이동영 작가'라고만 검색해도 수두룩 나온다. 하나하나 어떤 생각이 다시 드는지 정리도 해보고 아직 책으로 낸 글이 아니면 책으로도 엮어볼 참이다. 그 첫 번째 시도는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아포리즘(짧은 경구)의 모음이다.
이루다 미루다 / 글귀 : 이동영 작가
가끔 작가들은 멍 때린다. 사물을 살피기도 하고 기호나 텍스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해체하고 비틀어보는 작업도 한다. 발음으로 내뱉어도 보고 어원을 좇아가도 본다. 이 짧은 글도 이루다 미루다라는 개념을 두고 멍하니 바라보면서 결국 나왔던 문장일 것이다. 나는 무엇을 이룰 것이고, 무엇을 미룰 것인가. 이룰 것은 나를 깎아내는 고통에 집중해야 하고, 미룰 것은 숱하게 끓어오르는 욕망을 짓눌러 참아내야 한다는데서 착안했다.
'인생은 이루는 것과 미루는 것으로 조금씩 완성되는 게 아닐까'
축하합니다 / 글귀 출처: 이동영
생일 축하합니다 라고 다들 인사를 한다. 태어난 걸 축하하는 만큼 살아가는 일도 축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만 살 게 아니니까. 남들이 전부 생일 축하한다고 인사할 테니 나만은 좀 다르게 하고 싶었다. 생일이 아닌 당신의 모든 날을 축복하니, 계속 살아달라고. 나는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글_이동영
이글이 뭐라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당시 수 만 조회수와 공유수를 기록했다. 난 지금도 솔직히 이해가 가진 않는다. 추측하건대, 이 짧은 글 아래 달린 댓글들에 각자 자신의 친구들을 태그하고 '우리 이런 사이가 되자'라고 쓴 게 많은 걸로 봐서 작가가 쓴 글이 내 감정을 대신 전해주는데 유용하다는 것 정도다.
그래도 이글이 특별히 좋다는 생각을 못하겠다. 이 글을 쓸 당시 아마 나도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을 테니 그래, 진솔한 마음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대로 공유된 건 아닌가 싶다.
글귀 이동영 작가
아마도 이 아포리즘 역시 다른 많은 짧은 글귀들처럼 아침에 일어날 때 환청처럼 들렸던 완성형 문장이었으리라. 무의식에 쌓였던 혼잣말들이 이렇게 짧은 경구로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내가 이렇게 작가 이름을 달고 글을 써서 올리면, 독자들은 평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거나 늘 해왔던 생각이라며 공감을 표한다. 작가는 수많은 감정을 인형 뽑기 기계의 집게처럼 콕 집어 느낌이 오는 글로 대체해주는 메신저인지도 모르겠다.
자신감, 자존감, 자존심 / 글귀 출처: 이동영 작가
전에 첫 책을 처음 낼 당시(2012년)에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한글 프로그램에서 자꾸 빨간 줄을 긋는 거다. 대체할 단어로 추천을 하는데 자존심이 맞단다. 그렇게 썼다. 그때만 해도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지금처럼 익숙하게 쓰진 않았을 때인데, 내가 헷갈렸다는 건 확신이 없었던 것이니 뭐 내 잘못이겠지만 이거야말로 자존심이 상하는 포인트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이런 구분을 지어보았다. 이게 정답 일리는 없다. 한낱 내 생각인데 좀 단언하듯 써서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 싶다.
글귀 출처: 이동영 작가
인간관계에 관한 글을 올리면 거의 다 반응이 좋았다. 아마 그동안 내가 쓴 인간관계 글귀만 모아서도 책은 한 권 낼 수 있을 정도니까. 반응이 좋다 보니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글이 짧을수록 의미는 넓어야 한다고 늘 염두에 두는데, 단순하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있기 때문이겠다. 인간관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글귀 : 이동영 작가
이 글은 실제 내가 모 출판사에 에디터로 추천을 받아 면접을 보기로 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서 서울까지 찾아간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었다. 내 결론은 나를 찾아오게 만들자는 거였는데, 지금 프리랜서가 되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될 줄 알고 쓴 글은 아니었으나 내 신조로 삼게 되었다.
글귀 / 이동영 작가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그러니 강요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건 동일시하거나 대상화하는 폭력일 뿐이다. 타자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 역시 존중받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글귀 : 이동영 작가
생각해볼 일이다. 이 글을 쓴 지가 한참 전인데, 여전히 두고두고 생각할 일이다.
글귀: 이동영 작가
리부트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 나는 리셋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 안 된다. 인생도 리필이 되나요? 안 된다. 그럼 희망이라도 해보고 싶다. 리셋! 그럴 일은 현실에 없다. 다만 거듭나기 위해 반환점 돌기를 해볼 뿐이다.
글귀: 이동영 작가
나는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가? 노력을 이해하고는 있었는가? 글쓰기도 노력이 필요한데, 너무 노력 없이 재능으로 버텨온 건 아닐까? 발전이 있으려면 재능을 갈고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야 한다. 글 쓰는 재능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나를 표현하는 재능은 누구나 타고났다. 글쓰기라는 도구를 만나서 이제 노력할 일만 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