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아이 글쓰기 지도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거나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난 아직 미혼인 데다 아이도 없는데?라고 처음엔 생각했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어른들부터 아이들까지 수차례 글쓰기 강의를 한 '짬밥'이 있는데 고사하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던 것이다.
누구보다 글쓰기를 주제로 매일같이 고민하고 전 연령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아이 글쓰기 지도 방법을 강의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마치 결혼을 하지 않는 스님이나 수녀님이 수많은 부부들의 고민 상담을 하고 관계 회복을 도우며 치유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본인은 강아지가 아니지만(누가 봐도 인간이지만) 빙의한 듯한 강아지의 관점에서 강형욱 훈련사는 강아지가 아닌 강아지와 함께 사는 반려인을 지도해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다. 아이의 글쓰기도 어쩌면 아이보다는 아이와 함께 사는 부모, 형제, 그리고 아이에게 지도하는 선생님이 바뀌는 것부터가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아이 글쓰기 지도는 부모보다 글쓰기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더 본질을 꿰뚫는 법이란 걸 깨달은 바, 이동영 작가가 도달한 지점은 하나의 질문으로 다시 시작한다.
당신은 왜
글 못 쓰는 어른이 되었나
이걸 보면 아이 글쓰기 지도를 하는 방향이 나온다. 크게 5가지로 분석해보았다. 이밖에도 더 있겠지만 우선은 이렇게 정리해보기로 했다. 이글에서는 1번을 다뤄본다.
1. 글쓰기로 칭찬(인정) 받은 경험이 적어서
2. 글쓰기를 국어 과목의 영역으로만 인식해서
3. 글쓰기를 그동안 꾸준히 안 해봐서
4. 다른 표현 수단으로 대체 혹은 생략해서
5. 언젠가 죽기 전에(?) 이룰 막연한 꿈으로만 미뤄두어서
1. 글쓰기로 칭찬(인정) 받은 경험이 적어서
반대로 나는 왜 글 제법 쓴다는 어른이 되었는지 돌아보았다. 분명 칭찬이 큰 몫을 했다. 다른 글을 베껴서 상을 받은 건 별로 기억에 안 남는데, 나 스스로 써서 장려상을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장려상을 조회시간 중앙 단상에 올라 운동장에 서 있는 전교생 앞에서 받았는데, 쿵쾅대는 심장소리와 내 다리의 후들거림을 잊을 수가 없다.
학교 정보지에 늘 내 글이 실리는 것도 좋았다. 부끄러웠지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아이가 만약 무엇을 최초로 시도했는데, 공개적인 칭찬을 받으면 아이에게 그 장면과 감정은 거의 평생을 간다. 무의식에 저장이 되어 장차 꿈(진로)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
이쯤에서 먼저 전제해둘 것이 있다. 글쓰기는 원래가 어려운 도구라는 것. 나를 드러내는 작업이니까 당연하다. 아이였던 시절에 칭찬받지 못했거나 어른이 된 이후에도 아이에게 글쓰기 칭찬을 할 여지가 그동안 없었다면? 그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글쓰기 실력을 강요할 이유가 없다. 내 생각, 내 수준, 내 사연, 내 센스, 이념과 상식이 드러나는 건 때론 발가벗겨진 기분까지 들기에 글쓰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결정적으로 우린 이렇게 나를 드러내는 작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잊었을 테다. 그러니 이 어려운 걸 해냈다는 칭찬은 아이에게 크게 다가와 어른이 될 때까지 남게 된다.
문제는 대부분이 (기본 옵션인 이 난관을 뚫고) 글을 써서 인정받은 경험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이건 자기 효능감의 영역인데, 연속된 성취감으로 내가 이걸 해낼 수 있는 아이구나- 내 글을 읽고 누군가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는구나- 하고 와닿도록 느끼는 체험이 노력을 하게 만든다.
아이를 향한 좋은 칭찬법은 "잘하네. 똑똑하구나 너. 타고났나 봐"가 아니다. 그럼 자꾸 천재 코스프레를 하게 된다. 그보다는 노력한 과정을 짚어주는 칭찬- "노력했구나. 어쩜 책도 읽고 하더니 글도 참 잘 쓰네"가 되어야 한다. 아이를 칭찬하는 법은 디테일해야 한다. "천재다, 착하다"라는 부담을 남기는 칭찬이 아닌 부분으로 나누어서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어? 탁월한데?"하고 말하는 식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칭찬을 공개적이고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좋은 반면, 비판은 1:1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면서 차근차근하는 것이 좋다. 칭찬이나 비판을 받았던 그 분위기가 능률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칭찬할 땐 비폭력대화법에서 나온 것처럼 아이(I)-메시지를 쓰면 좋다. "방금 말한 생각 정말 좋은데?" 보다 "방금 말한 네 생각이 정말 좋아서 엄마는 놀랐어."가 더 동기부여에 효과적인 칭찬법이다. 아이의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감을 높여준다.
추억을 되새기며 지난 일을 언급하며 칭찬하는 방법도 깊은 울림을 준다. 아래 예문은 실제 어린 동영이가 엄마로부터 받은 칭찬 멘트다.
"우리 동영이는 어릴 때부터 말을 조리 있게 잘했어. 책을 많이 읽고 글을 평소에 자주 써서 말할 때도 생각을 잘 정리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
이런 칭찬을 받은 아이의 99%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책을 읽는' 아이로 성장한다.
여기에 하나 더, 미래지향적인 칭찬도 좋다. 아이가 한 행동이 미래의 모습과 연상된다면 스스로 이미지를 그리며 구체적인 기대를 하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는 셈이다.
"우리 동영이가 쓴 글은 참 따뜻해서, 어른이 되어 글을 쓰게 되었을 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읽으면 시린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 같아."
천재는 99%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건 노력에 관한 강조가 아니라, 1% 영감에 초점이 맞춰진 말이라 한다. 즉, 노력은 기본이고 1%의 영감이 남다른 지점이란 소리다. 난 이걸 좀 바꿔서 말하고 싶다. 작가는 99% 노력과 1%의 인정(칭찬)으로 만들어진다고. 독자가 있는 글쓰기는 인정이 뒤따르지 않으면 무가치한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이 효능감에 더한 자존감(자기 존중감)이다.
내가 이 정도 실력이란 걸 기꺼이 받아들이고 차근차근 글쓰기 실력을 향상해 가는 태도가 자존감으로 글쓰기를 하는 좋은 자세다. 남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어제의 내 글과 오늘의 내 글을 비교하며 성장하는 글쓰기를 이끌어 내는 것이 어른의 할 일이다. 사실 이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글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칭찬보다는 적절한 피드백과 그 피드백을 허용하는 자세를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아이의 글쓰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보다 방향을 '가리켜' 주는 지도가 필요하다.
SBS 스페셜에 출연한 영재 백강현 군(9세 당시 인터뷰)은 말에서 배울 점이 있다.
백강현: (시를 쓰고 작사 작곡을 하는 것 등등) 만드는 자체로 흥미를 느껴요 저는, 뭘 만들고 남이 보는 것 자체로.
PD: 강현이가 만든 거 별로 재미가 없고 흥미 없어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더 좋은 거 만들 거예요
칭찬법 참조: https://m.korea.kr/news/visualNewsView.do?newsId=148887626#visualNews
다음 편 예고: 2. 글쓰기를 국어 과목의 영역으로만 인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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