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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Dec 15. 2021

다시 태어난다면?별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데?

생각이 바뀌었다

올해 초 클럽하우스를 한창 하던 때가 있었다. 음성 대화 기반 SNS라서 처음 보는 사람과 다양한 질문이 오갔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하나가 '다시 태어난다면?'이었다. 가끔 예능에서도 심심치 않게 뜨는 질문이라서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해 글로 옮겨 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


딱 얼마 전까지 그랬다.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질문에 한결같은 답변으로 "응?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데?"가 툭하면 나왔다. 그렇게 답한 기저에는 '이렇게 힘들 거 뻔히 아는데 뭐하러 또 태어나?'란 꼬리 물음이 있었다. 이 글은 여기에서 결론이 나면 말 그대로 끝이다. 그런데 굳이 글을 쓰는 이유는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떨까? 지금 알고 있는 걸 다시 태어나도 알 수만 있다면 '대박'이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다시 태어나는 것만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전제로 질문을 던져보자. 또 모르지 않나. 내가 다시 태어나서 이 글을 우연히 보고 있을지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면 북한 빈민가에 태어날 수도 있는 거고, 세계적 부호인 중동 왕자의 자식으로 태어날 수도 있을 테니 복불복이겠다. 그런데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선택할 수 있대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겠다. 과연 그게 '기회'가 될까?


잘난 가정에 좋은 환경과 유전자를 타고났어도 행복할 거라고 확신하긴 어렵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행복한 건 확률적으로만 보면 어려워 보인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을 살짝 돌렸다 돌아오겠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군가는 이별의 순간 이전으로, 또 누군가는 시험 전날로 돌아가고 싶을지 모르겠다. 난 아니다.


정확히 국가보훈대상자 심사를 받던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 군대에서 얻은 허리디스크 훈장으로 거의 20년이 가까 지금까지 고생하는데, 돈은 돈대로 깨지고 회복을 위해 수술을 3회씩 한 후에도 일상생활은 쉽지가 않다. 이렇게 인생을 차지하는 디스크인데, 군대서 다친 보상 유무를 가리는 심사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그래서 돌아볼수록 더 화가 난다.


겨우 양말 신어보라고 하는 진단으로 '일상생활에 지장 없음' 판정을 받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진짜 매일처럼 수영장에서 '무릎 차올리며 걷기'를 한 덕에 양말을 신는 작업이 낑낑거리면서도 가능했는데, 그걸 보고 '일상생활 지장 없음'이라고 보훈심사 군의관은 판정한 것이다. 심사공간에 입장해서 퇴장하기까지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난 20년 가까이 이러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면 후회이고, '내가 그때 그렇게 할 걸'하면 미련이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후회와 미련을 둘 다 남겼다. 그럼 지금 알고 있는 그때도 안다는 가정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래, 한 번쯤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연기라도 하고 싶다. 재활한 걸 티내는 게 아니라 아픈 걸 극대화해서 제대로 어필하고 싶다. 그러나 이게 이글을 쓴 전부는 아니다.


겨우 30대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다시 태어나는 걸 생각하는 게 좀 우스워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건 언제 떠나도 미련 없는 삶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유언처럼 남기고픈 주제이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아예 군대를 19에 지원해서 가진 않을 것이다. 남자로 태어날지, 국방의 의무가 있는 나라에서 태어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건강한 남성으로 태어난다면 말이다. 몇 년이라도 사회생활을 해봐서 눈치도 볼 줄 알고, 병맛 인간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도 알고서 군대에 가고 싶다. 요령껏 무리하지 않고 허리디스크는 다시 터뜨고 싶지 않다.


복싱과 마라톤을 언제든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허리디스크 때문에 이 두 가지는 꿈도 못 꾸고 있다. 언제든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가끔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이 당장 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최대한 자유롭게 눈치 안 보고 무엇이든 다 경험해보고 싶다. 사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처럼 외모에 특별한 메리트가 없이 태어난 경우에는 열심히 시험 성적부터 올리고 말발을 늘려야 한다. 충분히 전교나 전국 순위권에서 놀면 일단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때문에 그때부턴 선택의 자유가 허락된다. 그밖에 모든 건 반전 매력으로 작용한다. 공사현장 노동도 해보고, 책도 분야별로 다양하게 읽어 보고, 동아리도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대학원도 바로 진학해보고, 글로벌 기업에서 경력도 쌓아보고 싶다.


연애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해 보고, 언어도 5개 국어 정도는 능숙하게 해서 어디든 여행을 자유롭게 해보고 싶다. 피아노나 기타 연주도 잘하고 싶고, 작사와 작곡도 잘하고 싶고, 만화가의 꿈도 다시 웹툰 작가로 바꿔서 이루고 싶고, 화가로서 전시회도 열어보고 싶고......


웃긴 게, 쭉 써보니까 아직 늦지만은 않은 것들이 많다.

다시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오늘 시작하면 이룰 수 있는 게 이중 절반이 넘는다. 그 말은 내가 하루를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말과 같다. (이룰  없겠지만 외모만은 원빈으로 하루만이라도 살고 싶다. 하루를 제대로 살 것 같다. 오히려 그런 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건강하고 체력 좋고 지금부터 몰입을 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허황되지만은 않은 바람들을 안고 사는 나였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시도는 하지 않고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삶 안에서 막연한 불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잘한 게 한 가지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다. 비혼주의자 선언은 일찌감치 철회했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나서 내가 쓴 글인 줄 모르고 이 글을 읽는다면 결혼을 빨리 결심하지 않길 바란다.

다시 태어났을 때 이 글을 읽는 시점이 아직 10대라면 30대까지 '결혼' 대신에 가능하면 집중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체력, 유연한 신체, 시험 성적, 피부관리, 싹싹함(친화력), 돈, 자존감과 자신감, 모험(도전) 정신, 수습(상황 대처능력), 역사와 문학과 예술 상식, 논리, 몰입 능력, 패션센스, 감정 컨트롤 등이다. 물론 늘 하는 말이지만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래도 다시 태어난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내가 아는 한 이게 전부다.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타협(조율)하고,
먼저 내가 행복할 확률을
높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다 쓰고 나니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 걱정을 위주로 하며 살아도 된다는 건 정말 좋은 조건이다. 금수저 흙수저 하는데, 나 먼저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진짜 금수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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