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라는 책 제목은 처음엔 정말 맘에 안 들었다. 출판사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주었는데, 대안으로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어서 그냥 좋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곱씹을수록 이 책 제목은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원고 전체를 잘 파악한 표제란 걸 알았다. 저자로서 놓친 부분을 제3의 시선으로 에디터를 비롯한 출판사 팀원들이 잘 보았던 거다.
그래서 후속작으로 -8년 차(이제 곧 2022년 부로 9년 차)- 강사 이력을 살려 ≪너도 강사가 될 수 있어≫를 낼까 혼자 생각하고 있다. 혹여나 '너도 OO이 될 수 있어' 시리즈 작가로 각인될까 봐 조금 거시기 하지만 원고를 쓴다면 어렵지 않을 표제이기에 조심스레 구상 중이다.(원고 청탁 환영합니다)
이 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책 제목이 관통하고 있는 건 '작가'와 '강사'가 '아무나'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란 것쯤은 상식이 있는 분이라면 바로 알아차렸을 거다. 누구나 와 아무나-의 차이는 같은 듯 다르다.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라서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진지하다.
'누구나'라고 했을 때는 앞에 전제된 생략이 있다. (치열하게 도전하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나'라고 했을 때는 앞뒤에 붙는 생략이 있다. (치열하게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나 (이룰 순 없다.)
대학에서 글쓰기 인문 강의 중인 이동영 작가
내가 정의한 작가란, 독자가 볼 만한 글쓰기를 꾸준히 해내는 사람이다.
내가 정의한 강사란, 수강생의 긍정적 변화를 돕기 위해 먼저 알게 된 길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사람이다.
이 정의가 진리는 아니기에 누구나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아도 좋겠다. 적어도 나는 작가로서, 또 강사로서 아무나 작가와 강사가 될 수는 없어도(아무나 되어선 안 되지만,) 도전한다면 누구나 될 수는 있다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 글 쓰는 작가가 '매일 글을 꾸준히 쓰고 독자가 볼 만한 콘텐츠를 내보이는 이'라고 하면, 강사는 자신이 앞서 깨달은 바를 수강생이 겪고 플러스된 삶을 살게 해주는 이로서 역할이 주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강사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
내가 꾸준하던 분야를 설명할 수 있다면 누구나 강사가 될 수 있다. 전문 자격증이 필요한 분야도 있겠지만, 강사 자격증은 따로 필요 없다. 글쓰기도 굳이 자격증이 있어야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는 게 아니기에 작가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말에 설득력이 있는 게 아닌가.
맨 처음 강사가 되기 위해 할 일은 스스로 질문해보고, 타인들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거다.
소그룹(8인~12인) 글쓰기 강의 중인 이동영 작가
나는 어떤 이미지인가?
재미있는 건 타인들이 평가하는 나는 약 10% 정도만 참고하고, 나머지 약 90%는 나 스스로 질문을 계속 던져가야 내가 나로서 나답게 완성된다는 점이다. 나 역시 그 누구도 글쓰기 강사로서 이만큼 성공할 줄은 가족조차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가족 중 특히 어머니가 내게 '너는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 남들 앞에서 설득할 만한 언변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머리가 있으니 잘 해낼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10%의 참고사항이었다.
엄마니까 그런 말을 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아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매우 객관적으로 평가해주시는 분이다. 예전에 친척 생신 선물을 함께 고르러 갔는데, 점원이 나를 모델로 삼아도 좋겠냐며 옷을 추천하려 하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니요. 얘는 돼지라서요. 그분(선물 받을 친척분)은 마르셨어요(단호)"
온라인 글쓰기 강의 중인 이동영 작가
어찌 됐든 타인이 보는 내 이미지는 내 생각에 딱 10% 내외로 참고만 하면 적당하다.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보일 것이냐 하는 거다. 하이라이트만 보는 타인이 아니라, 생중계되는 내 삶을 다 지켜본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친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신이 있다면 모를까. 나에게 신이 있다면 자신뿐이다.
내가 만들어가고픈 이미지, 내가 지금껏 쌓아온 이미지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 좋겠다. 그럼 내가 반복하고 있는 것과 세상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의 접점이 보일 것이다. 영화 덕후라면 영화에 관해 강의할 수 있고, 책 덕후라면 책 내용이나 메시지, 독서법 등에 관해 강의할 수 있겠다.
SNS를 꾸준히 해왔는데 반응이 좋았다면? SNS 전문 강사가 될 수도 있다.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누가 나를 찾을 것인가? 누가 나를 불러줄 것인가? 누가 나를 봐줄 것인가?
나를 강사로 섭외할 주체는 강의 섭외 담당자이다. 그가 나를 찾도록 해야 한다. 그는 어떤 분야로 나를 찾을 것인가? 얼마에? 언제? 어디에?
적은 예산으로 최대 효과를 내고 싶은 건 그 주체에게 너무나 당연한 욕구일 것이다. 효율을 따진다. 스타성이 있으면 돈이 들고, 내용은 좋은데 지명도는 떨어진다면 수강생 모집에는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저서(책)'가 필요한 거다. 그래서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가 필요한 거다. 그래서 홍보력을 갖춘 동시에 나만의 콘텐츠가 필요한 거다. 반대로 내가 강의 섭외 담당자로 빙의(?)를 해보는 방법도 있다. 공공기관부터 기업,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홍보자료가 지금까지 온라인에도 뿌려졌을 것이니 찾아보면 누굴 어디에서 언제쯤 가장 많이 찾는지 알 수 있다.
섭외가 됐다 치고, 무대 공포증이 있는데 어떻게 하냐고?
나는 지금까지 출전한 가요제, 대표 발제, 행사 진행만 온라인 오프라인 라디오 다 합해서 수십 회가 된다. 능수능란하게 잘해서가 아니라, 지지리도 못했었기에 그걸 이겨내고자 두려움을 안고 무대 경험을 부단히 쌓았다. 너무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소리가 마이크에 다 들어가 울려 퍼질 듯이 매번 쿵쾅거렸지만 그걸 반복했다.
또 오르고 또 오르고 또 올랐다. 실패했고, 창피했고, 부끄러웠다. 일대일은 눈도 잘 못 마주치는 내가 '일대다(多)'에는 강하다는 최면을 매일처럼 주입했다.
아마 새벽마다 이불 킥만 수 천 번 했으리라. 놀라운 사실은 지금 사람들 앞에서 모임을 진행하고 강단에 올라 강의하거나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게 자연스럽고 여유까지 갖춰졌다는 거다.
물론 곧 9년 차가 되는데도 여전히 떨린다. 그건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많았을 때 생기는 불안이다. 이럴 땐 조금만 나 자신에게 확신을 갖고 진행하면 된다. 약간의 긴장과 불안이 설렘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다.
가장 중요한 강사의 덕목은 무엇을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걸 듣는 수강생에게 하나라도 임팩트있게 남기느냐이다. 엄청 웃긴 재미가 아니라도 유익하면 흥미와여운을 남기는 게 강의이고 강연이다.
그건 고학력이나 수상 커리어 따위로 알 수 없다. 강의를 잘하는 강사는 따로 있다. 나와 맞는 강사도 따로 있다. 모두를 절대적으로 만족시킬 수는 없겠으나 수강할 분위기가 갖춰진 자발적인 90%이상에게 여운을 남기는 건 당신도 가능하다.
프리랜서 강사를 꿈꾸는 사람, 책을 냈는데 어떻게 강의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정 어디 코칭이나 컨설팅받을 곳이 없다면 이동영 작가에게 메일 한 통 보내시라. 물론 유료다. 비싸다.
Lhh2025@naver.com(강의 요청 & 섭외는 이쪽으로)
수십 수백만 원 깨지는 게 싫다면 겨우 1만 원 대에 언젠가 나올 ≪너도 강사가 될 수 있어≫책을 주시해보시라. 여러분을 위해서 기꺼이 책을 내보겠다.너무 막연하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댓글이나 메일로 보내주시길. 그럼 브런치에 연재로 답변드리겠다. 강사가 되고 싶은 당신, 건투를 빈다.
p.s: 방금 이런 게 떴네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브런치. 카드니까 실물로 받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