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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r 18. 2022

잘 지내고 있었나요?

그냥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절반 정도가 대선 직후부터 *PESD를 겪고 있다가 이제 좀 회복 중인 모양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에서 따온 PESD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Post Election Stress Disorder)를 말한다.

이걸 겪는 이들은 단순히 정치에 '과몰입'된 극단적인 성향을 띠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정책·인물·미래 비전을 따져서 내가 속한 국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해당 대통령 후보에게 맡기고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PESD까지 겪어가면서 혼미한 정신의 일상을 이제야 좀 추스르고 있는 거다.


투표에 참여한 대한민국 유권자는 반반으로 갈라진 게 아니다. '내가 뽑 않았지만 저 대통령 당선자가 국정 운영을 잘해주기만을' 진심으로 바란다. 


다만 현 당선자를 뽑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선 되자마자 "투표 결과는 다 잊었습니다"라며 그 진심을 외면하는 듯한 새 정부느낌이 영 마뜩지 않을 따름이다.(0.7%차 당선이었단 걸 임기 내내 한순간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다들 한동안 뉴스도 안 보고 싶다던 서로에게 묻는다.

'잘 지내셨나요'


마치 식사하셨나요라고 물을 때 '같이 밥 먹을래요'하는 속뜻이 있을 때처럼 이 인사치레에도 '난 이제 겨우 정신 차렸는데 당신은 좀 어때?'하고 묻는 셈이다.


그냥 존재한 사람은 없다.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다. 밥을 챙겨 먹고 몸을 씻고 화장실에 가고 그 무엇을 하는 모든 게 살고자 하는, 계속 존재하고자 하는 치열함이 아닌가.


세상이 쉽게 망하진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지혜롭다. 0.7% 차의 열망은 우리가 절반으로 갈라진 게 아니라 모두의 간절함이었으니까.


새 당선자가 부디 국민에게 무지막지한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거나 우리나라를 위험에만 빠뜨리게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멍청한 이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일은 없을 거라고, 정치적 프레임도 많았다고 믿어본다. 애써 위로하며 당신께도 안부를 물어본다.


함께 읽어보면 좋은 글

https://vop.co.kr/A00001609914.html

독일을 대표하는 막스플랑크 연구소 소속 진화생물학자 맨프레드 밀린스키(Manfred Milinski)가 1987년 <네이처>에 기고한 논문에서 밝힌 큰가시고기 실험에 관한 이야기다.

민물 생선인 큰가시고기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사는 물고기다. 그런데 이들은 생물학자들에게 여러 면에서 큰 관심을 끈다. 무엇보다 이들은 무척 똑똑하다. 다른 물고기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 뒤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결정할 정도로 주변 관찰력도 뛰어나다. 그래서 생물학자들은 큰가시고기를 ‘천재 물고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이 집단생활을 할 때 특이한 현상이 하나 관찰된다. 큰가시고기는 무리를 지어서 앞으로 나아가다가 앞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되면 진행을 멈춘다. 그 이상신호가 천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큰가시고기 무리 중 하나가 맨 선두에 나서 정찰을 시작한다. 선두에 선 정찰병이 별 이상이 없으면 나머지 물고기들도 안심하고 전진을 계속한다.

아무 것도 아닌 행동 같지만, 이는 사실 매우 놀라운 광경이다. 정찰대의 역할을 맡은 물고기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로 이타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정찰병이 왜 그런 이타심을 발현하는지가 밀린스키의 관심이었다.

밀린스키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길쭉한 수조 안에 큰가시고기 한 마리를 넣었다. 그리고 전진하는 방향에 유리로 칸을 막은 뒤 반대편에 포식자를 집어넣었다. 큰가시고기는 육안으로 이상신호(포식자의 존재)를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큰가시고기가 있는 쪽 수조 옆에 거울을 하나 설치한다. 설치하는 방법이 두 가지인데 ①번 거울은 수조와 평행하게 설치돼 있다. 이 장치에서 큰가시고기는 정체불명의 이상신호를 확인하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나아가는 모습이 매우 신중했다. 아주 조금 앞으로 나아간 뒤 잠시 멈추고, 또 아주 조금 나아간 뒤 잠시 멈추는 모습을 반복했다.

이때 큰가시고기가 거울을 본다면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큰가시고기는 그것이 자신임을 모른다.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동료가 자기와 똑같은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큰가시고기는 앞으로 나아갈 때 옆 동료(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한 것이다. 동료가 자기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용기를 내 다시 몇 센티를 전진한다.

반면 ②번 거울은 수조와 비스듬히 설치했다. 이렇게 하면 큰가시고기가 앞으로 나아갈 때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 점점 뒤로 쳐지게 된다. 그런데 이 장치에서 큰가시고기는 ①번 수조의 큰가시고기보다 더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기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옆 동료(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가 동행하지 않고 뒤로 숨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큰가시고기는 이상신호에 다가갈 용기를 잃고 전진을 멈춘다. 이 실험을 큰가시고기가 동료에게 말하는 바는 이것이다.

“내가 딛는 한 걸음만큼 당신도 한 걸음을 내디뎌 주세요. 그러면 나는 용기를 얻어 한 걸음 더 나아갈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뒷걸음질을 친다면, 나도 더 이상 용기를 낼 수 없어요. 우리 함께 걸음을 맞춰 앞으로 나아가자고요.”

함께 걷는 걸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

- 이완배 기자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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