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4월 18일(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든 조치를 해제했다. 오는 5월 2일(월)부터는 566일 만에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해제 조치할방침이란다.
(※집회·행사·공연·스포츠 경기 등 예외 조치도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꼭 확인 바람)
출처 = 네이버, 질병관리청
확진추이는 다행히 꾸준한 감소세다.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 당장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과 음주가무에 목말라했던 사람들, 오프라인 만남이 간절했던 사람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모양새다.
코로나로 인한 은밀한 장점들도(아이러니하게 '오히려' 좋았던 점들도) 사라질 것이나나쁜 단점들이 사라지는 게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이익이기에. 건강하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진실을 깨우쳐 가며 살기를 많은 이들은 바란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건 그냥 차인 거 아닌가;) 이미지 출처 =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난 본래 사람을 잘 만나는 타입도 아니고, 만나더라도 그 경로가 강의와 독서모임 정도였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뒤풀이를 별로 선호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한 것과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건 너무 큰 차이였다. 지금은 뭐랄까, 내 선택 권한 내지는 자유의지로써 해방감 같은 게 느껴진다랄까.
문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거짓부렁'의 범람이었다.
그동안 팬데믹 와중에도 온라인 SNS는 자랑과 인증이 넘쳐났다. 나도 뒤처지고 싶지 않았었는지 잘 살고 있는 티를 팍팍 냈다. 뭔가 진짜 '나'와의 거리가 멀어진 느낌이었다. 누가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는데 나와 스스로 거리두기를 해버린 것이다.
어 이Shake it 잘 나가네
적당한 가면(페르소나)을 쓰는 건 현대사회에서는 일종의 예의와 함께 퍼스널 브랜딩영역에 속한다. 그게 관계를 더 유연하고 지속하도록 돕는 장치가 된다. 근데 적당함을 넘어 버리면 과유불급. 온라인 속 내가 현실의 나를 잊어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잃어버리는 사태로 변질되기 쉽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든 조치를 해제한 이때, 내가 벌여왔었던 나와의 거리두기도 해제할 때가 됐다.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
나를 안아주고 나를 궁금해하고 나를 아껴주고 나를 살펴봐야 한다. 나를 보살피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믿어주고 나를 바라봐야 한다. 잊어선 안 된다. 거리를 둔다는 건 어디까지나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더 가까이 있어도 좋은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외부의 시선에서 날 어떻게 바라보느냐, 물론 이미지 관리는 필요하다. 신경을 아예 끈다는 건 어쩌면 배부르고 한가한 소리다. 여유가 넘쳐나면 그래도 상관없겠지만 한낱 프리랜서(혹은 월급쟁이·취준생·대학원생) 주제에 불확실성 가득한 일상에서 무모하게 살 순 없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놓쳐선 안 된다.(객관화) 그와 동시에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을 놓쳐서도 안 된다. 이를 직면, 직시 그리고 '주관'이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잘못 평가할 수도 있다는 것마저 인정하는 범위까지, '객관'이라 한다.
나와의 거리두기를 해제하면 이 주관과 객관의 중용을 지킬 수 있다. 너무 가까워져 나르시시즘(자기애)에 빠지는 것도 곤란하고, 너무 멀어서 외부에 휘둘리며 사는 것도 곤란하다.
이미지 출처 =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혹시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면, 불안하고 불확실해서 남들의 시선에 주체성을 잃고 살았다면, 이젠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고. 약간의 거리는 필요하겠으나 내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은 결국 나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계속 희생으로 나를 불태웠는가? 거리두기 말고 '잠시 쉬어가기'도 필요하겠다.일상 회복만큼 내 마음 회복도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