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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Sep 08. 2022

대학원에서 처음 받은 질문

지금 직업을 잃게 된다면 내가 잃게 되는 것?

대학원에 들어왔습니다. 개강 후 학생증을 수령하고, 수강신청에 수강정정까지 하고 나서 수업을 듣고 동기들을 만나니 그제야 실감이 나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논문 읽어오는 과제가 쏟아지고, 형식을 갖춘 써머리 과제 등을 업로드(제출) 하니 '내가 진짜 대학원생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에 잠시 풀어졌던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고요. 그러던 중 한 과목의 첫 수업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지금 직업을 잃게 된다면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인가요?


'직업진로와 경력설계' 라는 과목이었습니다. (제 전공이 교육을 다루다 보니 교직선택 과목에 있습니다.) 일반대학원과는 다르게 교육대학원의 특성상 공부 병행하는 직업인들이 대부분이라, 유독 더 유효한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현대차정몽구재단에서 온드림스쿨 멘토링 강사로 활약할 적에 이 '진로'에 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도 있는 저였지만, 솔직히 더 흥미가 가는 다른 과목으로 바꿀까 살짝 흔들렸습니다. 수강 정정기간에 다른 과목을 염두에 두었었는데요.


결정적으로 위 질문의 여운 때문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침상에 누워서도, 신호등을 기다릴 때도 질문이 계속 맴돌더라고요.

지금 직업을 잃게 된다면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받았을 땐 수업의 첫 시간이었기에 교수님은 짧게 OT로 진행했습니다. 교수님이 강의계획안을 공유한 후에는 수강하는 학생들의 간략한 자기소개와 함께 위 질문에 관한 답변을 돌아가며 나눴는데요. 제 대답만 밝히면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 직업을 잃게 된다면 제가 잃는 것은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글쓰기 강의와 글을 쓰는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만약 이 직업을 잃게 된다면 저는 제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 같습니다. *'정체성'이란 사전적 의미로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를 말합니다.
저는 글쓰기 강의를 하고 글을 공유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계속 살아가도 좋을 이유', 즉 존재의 다행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타인에게 제 글과 강의가 가치 있는 영향을 끼치면서 내 존재가 의미 있다는 걸 느낀다는 말인데요. 그런 점에서 제가 이 직업을 잃게 된다면 저는 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직업을 강의와 글쓰기로 국한하고 싶진 않지만, 그게 무엇이든 저 이동영이라는 사람 그 자체일 정도로 전부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분리가 되어야 좋습니다. 내 글이나 강연 영상에 달린 터무니 없는 악플이 인간(자연인) 이동영을 향한 것이라 해석하면 괴로워서 못 사니까요.


직업인으로서 이동영과 생활인으로서 이동영은 구분이 되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있음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순간이 직업인으로서 강의를 하고 글을 공유해서 피드백을 받을 때임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가끔은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강의를 하고 글을 쓸 때는 확신을 가지고 하지만, 마이크를 내려놓고 나서, 마침표를 찍고 나서는 스스로 합리적 의심을 해야 발전적인 객관화가 가능할 테니까요.

하지만 생각에 꼬리를 물으면 멘탈에 좋지 않다는 걸 이내 직감합니다. 오랜 경험치로 아는 거죠. 그땐 곧바로 운동을 합니다. 거창한 운동은 아니고요. 숨이 찰 때까지 오르막 걷기 정도입니다. 직업인이 아닌 생활인일 때도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끼는 거의 유일한 순간은 숨을 느끼며 운동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직업이란 건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성립이 됩니다. 그것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물질적 보상으로 생계를 이어가게(계속 살아가게/살 수 있게)해 주죠. 그냥 생활인일 때는 나 자신에게만 충실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직업인으로서 충실하게 살아야 생활인으로서 나에게 자유를 맘 편히 줄 수 있음은 현실이지요.


여기서 착각하기 쉬운 전제가 있습니다.


'직업을 잃게 된다면..'은 '직장을 잃게 된다면..'과는 결이 다른 질문이어야 합니다. 당장 소속되지 않아도 직업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될 테니까요.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말이 흔해졌습니다. 저는 직장인일 때도 직업인으로서 살았습니다. 개인이 어떤 직업을 수행하며 브랜드 가치를 쌓아 놓으면 소속이 어디든 살아남기 수월하죠. 그러다 보니 직업이 곧 저 자신이 된 것 같아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글을 써서 올렸고, 개인적으로 책(에세이)도 냈고요. 사내 강사로도 활약했습니다. 지금 강의를 하고 있는 에세이 쓰기는 물론 블로그 글쓰기 등 SNS로 콘텐츠 기획·제작·홍보하기를 직장을 다닐 적에도 똑같이 해서 퇴사(독립)후 '잘 써먹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로서 물음을 던져보시면 어떨까요.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직업을 잃으면
무엇을 잃게 될까.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난 책이 있어서 글 쓰는 중간에 멈춰서 한참을 읽었는데요. 제가 어설프게 옮기기에는 훨씬 큰 책이란 생각이 들어 추천도서로 남겨두겠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꼭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인데, 기회가 된다면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싶네요.


추천도서: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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