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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Feb 02. 2023

나의 유니크(Unique)한 인생경력

당신도 돌아보면 한 유니크했잖아요.

나는 아직 마흔이 채 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머리와 패션에만 조금 신경 쓰면 동안이란 말도 제법 듣는 편이지만, 마스크를 안 쓰는 게 일상이던 시절에는 나를 40대 중반 즈음으로 추정하는 분들이 많았다. 얼굴은 삶의 기록이라 하니 이른 나이에 40대로 보였다면 그만큼 성숙(成熟)해 보이는 거라고 착각하며(사실 ‘숙성’된 것에 가깝지만) 자주 내 삶을 돌아보곤 했다.


S대를 졸업하고 공공기관에 다니는 내 고등학교 동창 친구는 나를 만날 때마다 하는 소리가 있다.

“너는 참 삶이 유니크해.”
“그래서 작가가 잘 어울려. 강사도 딱이야.”


워낙 베프이니까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몇 안 되는 ‘팩트폭행’을 하는 진짜 친구가 진심으로 내게 하는 소리다. 이 친구의 삶이 크게 보면 명문대 졸업-공공기관 취업-결혼-출산과 같이, 나와는 많이 다른 코스로 살아오기도 해서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더 튀어 보이는 내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돌아보면 내가 생각해도 ‘유니크’한 삶은 맞다.


단 몇 가지 문장으로도 ‘니 인생 유니크함 인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짝꿍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하늘로 떠나버린 적 있나요? 저는 있어요. 그 후로 저는 언제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말없이 한 순간 떠날 수 있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아버렸죠. 초중고대학을 포함하여 제 평생 인간관계 가치관에 영향을 준 사건이었어요."
“만 20세, 군대에서 구타와 가혹행위(변기를 핥으라고 하는 등)에 시달리다가 새벽에 보초 서고 복귀하는 길에 꺼이꺼이 울면서 실탄이 든 총을 스스로에게 겨눠 본 적 있나요? 저는 있어요.”
“자대 선임병의 구타와 가혹행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뢰제거 부대에 파견 지원해 실제 지뢰밭에서 불발탄 밟아서 이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내무반에서 악- 소리 지르며 깨 본 적? 저는 있어요. 만 20세에 만성두통은 물론 허리디스크도 그때 처음 얻어서 지금까지 시술 포함 수술을 총 3회나 했지요.”
“대학시절 기독교 동아리 동기였던 친구로부터 성경공부 하자는 말에 속아 그 유명한 사이비 종교 신O지에 3개월 동안 매일 교육받았다가 100% 똑같은 신O지 시험문제가 기사로 올라온 걸 찾고서 욕하고 뛰쳐나온 적 있나요? 저는 있어요. 그때 종교에 환멸을 느껴 썼던 책이 '당신에겐 당신이 있다'라는 에세이였어요.”
“전주 모 대형백화점 구두매장에서 판매사원으로 최고 실적을 내며 인정받는 와중이었는데, 서울에 있던 후배가 속여서 그날로 다 때려치우고 다단계 업체에 가 본 적? 저는 있어요.”
“페이스북 댓글을 달다가 콘텐츠 마케팅 홍보대행사 직원으로 스카우트된 적? 저는 있어요. 퇴사 후에도 그때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지금도 먹고살아요.”
“책을 읽는 게 난독 수준으로 어려워서 외우지 않으면 도무지 안 되었던 적? 저는 있어요. 근데 독서모임을 꾸준히 나가고 노력해서 지금은 어엿한 작가가 되었죠.”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대본에 얼굴을 파묻지 않으면 안 됐는데, 지금은 대본이 필요 없는 10년 차 강사가 되었죠. 방송도 하고요.”


내 생각에도 참 유니크하다.


이렇게 이동영의 유니크한 경력을 몇 문장으로 나열해 본 것처럼 자신의 유니크함도 한번 나열해 보면 흥미로우리라 생각한다. 평범한 코스로 사회적 알람에 맞춰 살아왔다 해도 절대적인 유니크함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나는 거창하게 트라우마니 울렁증이니 하는 거 내면 어디엔가는 깊숙이 있을지라도 별 신경 안 쓰고 산다. 비결이라면 멘탈이 좋아서라기보다 어떤 과거의 시절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지금이 역대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사태가 터지기 직전, 연극 동호회 기초반에서 연극을 배울 때가 있었다. 대본 속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기하기 위해선 자신의 인생 그래프를 그려서 나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직접 그려보고 발표한 경험이 있다.


그때 나는 미래에 여자친구와 이별하거나 가족이 죽거나 하나뿐인 동거묘 다행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더라도 상대적으로 군대 시절보다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래프를 그렸다. 나는 크게 놀랍지 않았지만 새삼스럽게 내가 잘 보였다. 지금 어떤 일이 생겨도 버틸 수 있는 힘은 19세에 자원입대를 해서 쌓아둔 외로움과 괴로움의 바닥을 찍었기 때문에 있는 거구나. 아니 그 덕분이구나.


자연사를 생각한다면 의료기술의 발달로 우리 세대가 족히 100살은 넘게 산다는데, 40%도 안 찬 내 인생을 돌아보려니 겨우 2%쯤 차지하는 군대시절이 나를 버티게 해 주는구나.


19세에 자원입대하고 일찍 사람 되어서 돌아 오라며 부추겼던 아버지를 평생 원망할 줄 알았는데, 이 그래프를 그린 이후엔 생각이 실제로 많이 바뀌었다. 오히려 그때 멘탈이 부서질 대로 부서져 본 덕분에 지금은 콧방귀 뀔 일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다 지나간다는 것과 스토리가 된다는 것과 멘탈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깨달은 바 더 이상 나를 크게 흔들어 놓을 거리는 별로 없다. 쿨한 게 아니라 둔해진 느낌도 있다.


사이비 종교를 겪은 덕에 종교적인 가치관도 정립되었고, 몇 번의 깊고 진한 연애사를 겪은 덕에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떻게 연애해야 좋은 지도 깨달았다. 제법 친하다고 생각해 끔찍이 신뢰한 대학 동기와 후배로부터 각각 이단과 다단계로 이용당한 후엔 ‘친하다’는 개념을 쉽게 두지 않고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되었다. 적당히 거리를 두며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유니크한 인생경력은 겨우 마흔 살도 안 되는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준 셈이다. 나쁘지 않은 삶이다. 인생을 다시 살고 싶지도 않고, 후회도 미련도 없다. 회귀물이 유행하는 요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안다고 해도 다시 사는 건 끔찍이도 싫다.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유니크한 인생경력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유니크한 인생경력만 옮겨도 단편작 정도는 몇 편 나올 정도로 버라이어티 하게 살아왔구나 싶다. 그러면 됐다. 바란다면 건강과 건강을 유지할 만큼의 돈 정도.


긍정확언이니 시크릿이니 하는 거 다 때려치우고, 수시로 나를 비평해 가며 인정해 가며 수용해 가며 살아간다면 무엇이 닥치듯 무슨 상관인가.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그래봤자 유니크할 뿐인 것을. 잘 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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