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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un 12. 2023

경험이 글감이다(작가 라이프)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내겐 새삼스러운 경험인데 이걸 말하면 다들 놀라길래 써본다.


나는 다양한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경험이 있다. 20대 초반 군대에서 요령 없이 지뢰를 캐다가(!)(실제로 1년 넘게 지뢰제거 특설부대 파견 근무를 했다) 허리를 크게 다친 탓에 육체적인 노동을 하진 못했지만, 전역 후 서비스직은 참 많이 경험했다.


우선 알바할 당시에 우리나라에 있는 거의 모든 주요 편의점 브랜드(CU(훼미리마트),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GS, 베스트올 등)에서 일을 했다. 롯O백화점 구두매장 금O제화와 OO아웃렛의 지오O노 매장에서도 이벤트 매장과 본매장을 담당하는 판매사원직을 역임했다. 방송작가 아카데미를 수료해서 외주제작사에서 막내작가로도 아주 짧게 일을 했다. 지금은 종영된 KBS 퀴즈프로그램의 전화감수 알바도 짧지만 했었고, 슈퍼스타K의 스크립터 알바도 엠넷 본사에서 해봤다.

영어가 안 되면~ O원스쿨의 콜센터에서도 전화응대 하는 일을 했다. 홍대앞에 통유리창으로 유명한 O노래방에서도 일했고, 해OO토익 문제집을 영업하는 교육을 받기도 했다. 학생 때는 아파트 전체동을 다 돌면서 전단지 아르바이트까지도 해봤다.


모두 오랫동안 하진 않았어도 오롯한 경험이었다. 위에 쓰진 않았지만 이런 것도 해봤어? 하는 것도 꽤나 해보았으니 지금 돌아보면 청춘의 황금기를 헛살진 않은 것 같다. 재수(반수)부터 편입까지 했고 지금은 심지어 대학원생이다. 이런 경험들이 40대를 앞둔 나에겐 버릴 게 하나도 없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할 때 좋은 소스가 된다. 존 크롬볼츠 교수가 말했던 진로이론 중 '계획된 우연'이란 말처럼, 어떤 경험을 할 때마다 작가나 글쓰기 강사가 되어야겠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다채로운 경험들은 입체적인 나를 완성했다.  

어디 알바뿐인가. 학부시절 개신교 동아리 동기였던 녀석이 졸업 후 한참이나 지나 대뜸 성경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며 연락을 해와서 3개월 동안 이단 신O지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물론 문제없이 잘 빠져나왔다. 교대 근처 유명한 네트워크마케팅(?)이라 자칭하는 다단계 업체그만 백화점을 때려치우고 속아 넘어가 경험해 보았다. 다이아몬드 등급을 달기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친구가 없어서 다행히 이틀 만에 빠져나왔다.


사실 이런 건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무관하다. 무탈하게 사는 게 최고다. 이상한 경험까지 권장하는 건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버라이어티 한 경험을 하는 건 도움이 되지만 중요한 건 생생한 삶을 사는 자세이지, 저런 걸 다 경험해 봐야 좋다는 말이 아니다.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경험하는 일상의 태도를 알고 적절히 응해 보면 어떨까 한다. 크리에이터의 삶을 사는 이들이 어떻게 잘 사는지 힌트를 얻어 보는 거다. 다채로운 글감을 얻는 (보다 창의적이고 고유하게 경험) 삶을 살고 싶다면 그들이 고백한 일상을 본받아 보아도 좋겠다.

작가 정세랑
1) 새로운 거 하루에 하나씩 해보기

- 안 먹던 과자 먹어 보기

- 안 가본 골목 가보기

- 안 읽는 분야 책/강연 접해보기

- 안 가본 버스 노선 타보기 등등

가수 Woodz 조승연
2) 굳이..? 하는 걸 한 달에 하루 정도 정해서 해보기

- 굳이 차 타지 않고 걸어 보기

- 굳이 와플 먹으러 벨기에 다녀오기

- 굳이 사서 고생하기

- 굳이 온라인 서점이나 쇼핑몰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가보기 등등

체험왕 작가 김영하(tvN 알쓸신잡)와 그를 인정하는 유희열
체험왕 작가 김영하(가운데)
3) 여행 중 새롭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다 해보기

- 새로운 경험은 곧 창작 영감의 원천

- 특정 여행 장소와 연관된 책 찾아 읽기

- 거기서 만난 사람과 대화 중 새로운 말/역사 스토리 수집하기


나는 다음 생이 또 있다고 믿는다. 김상욱 물리학자는 원자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상태로 있다가 아주 우연한 이유로 모여서 '생명'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이상한 상태로 우린 잠시 머물다가 죽음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물리학자다운 설명을 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오묘한 믿음이 생겼다. 도리어 희망을 느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든 우연적으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믿음 말이다. 지금 이 생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내가 이뤄놓은 무엇이 다시 태어난 먼 미래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상을 가끔 해본다.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다. 내가 쓰는 글이 다시 태어난 나에게 선한 영향을 끼칠 생각으로 말이다. 언젠가의 나에게 영향을 미칠 글이라고 생각하며 독자에게 선물 같은 글, 생명을 살리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대충 사는 것보단 치열하게 살다가 가끔 꿀 같은 쉼(휴식)을 즐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죽음 후에 원자가 다시 모여 내 생이 계속된다면 결국 영원히 사는 셈이지만, 이 생은 오로지 단 한 번뿐이다. 지금 이 상태의 내 인생은 다시는 없다. 그러니 남 눈치 보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감당하고 살면 된다.


글쓰기가 뭐 이리 거창한 동기냐고 묻는다면 나는 작가라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나처럼 살 필요는 없지만 글을 쓰고자 한다면 이러한 자신만의 철학을 탑재하는 건 도움이 된다. 그래야 경험이 두렵지 않다. 경험이 귀찮지 않다. 경험이 어렵지 않다. 경험이 아프지만은 않다.


연애도 많이 해보고 새로운 것도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먹어보고... 기록하고, 표현하고... 한 번의 생을 채운다는 건 얼마나 좋은 삶인가. 여행이나 사람과의 만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한 사람을 깊이 탐구하며 다양한 책을 섭렵하는 나이기도 하다. 만약 내 경험이 흔해 보이거나 고유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거나 뒷받침할 근거가 필요하다면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면 된다.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갇히지 말고 확장성을 가지는 것, 그것이 경험을 하는 이유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 무엇이 아까울 쏘냐. 그냥 부딪치고 들이대고 저지르고 수습하면 된다. 문제는 수습하며 끝까지 덜 후회할 만큼 대처하는 능력을 차차 길러가는 과정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것일 뿐. 그 지루함은 끝내 인정받을 무엇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인정에 꽂혀서 성과에 목매는 삶은 경험을 즐기지 못하니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틈틈이 경험하고 기록하는 삶이 의미 있는 거다.


경험 이후에 글을 쓰거나 음악, 사진, 미술, 말, 몸 등등으로 표현해 내는 사람은 한 번의 인생을 생생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기왕 글쓰기를 선택했다면 언젠가 다시 태어날 나에게 보여준다는 일념으로 창작해 보는 거다.


모든 경험은 글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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