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군가 날 좋아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를 찾아주었다고 해서 무조건 거절 없이 수용해야 한다는 건 낡은 관념이다. 나도 가치관이 있고 기준이라는 게 있어야 내 색깔이 더 분명해질 거 아니겠나. 나에게 충만한 결핍이 나를 공허하게 만든다.
감사하되, 끌려가는 삶은 일찌감치 끊어내야 맞다. 이젠 된장인지 아닌지 꼭 찍어먹지 않고 좋은 경험을 고를 줄도 알아야 한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같은 건 20대에아파도 아름다운 무지한어린 시절에나 먹히는 낭만 가득한 소리다.
좋았다면 추억 나빴다면 경험
그럴듯하지만, 자기 철학과 경험이 축적된30대 중반이 넘었다면 다시곱씹어 볼 문장이다.
좋은 경험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횟수와 좋게 만들 확률을 높여야 인생이 '좋아'진다.
'모든 경험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는 대책 없는 철학을 거두어야 자기 계발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20대에서 30대 초반 즈음까지 경험이 필요한 시기에는 좋은 표어가 되는 말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이 말에 신념을 가지고서 의도성을 배제한 채 나쁜 경험을 반복해 쌓을 때 발생한다. 그건 자기 인생을 썩 사랑하지 않는 처사이다.
이걸 깨달은 건 내가 37세까지 저 구호를 믿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가 나에게 말할 수 있다면 이 글의 링크를 보여주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좋았다면 추억
나빴다면 경험
혹 추억으로 가득 차지 않더라도 괜찮다. 좋은 인생이라는 의도적인 경험 혹은 그 선택을 좋은 선택으로 이끌어가는 노력이 있다면. 그럴듯한 예쁜 명언 따위에서 벗어나 자기 주관을 확립하며 살 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잘 사는 것이지 그때그때 위로받고 다시 바보 같은 삶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자기계발서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발전이 없는 자기계발서 읽기가 나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