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무역아카데미에서 블로그 글쓰기 특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아무렇지 않은 척 강의를 해서일까. 한의원을 찾아야 할 정도로 근육통증이 심해졌다.진통제와 파스로 겨우 버티다가 슬슬 본격적으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한 지는 약 나흘 째다.
한의원 가는 길에 마침 퇴근길의 여자친구를 만나 함께 가는데, 내 (백팩) 노트북 가방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출강지에 마련된 컴퓨터가 말썽인 경우를 종종 겪다 보니 백팩 가방 안에는 비상용으로 늘 넣고 다니는 개인 노트북과 벽돌처럼 생긴 10000mAh 보조배터리, 그리고 감동을 준수강생에게보답으로 선물할 내 책 한 두 권이 들어있어서(차마 주지 못하고 돌아오곤 한다) 가방 무게가 꽤 나가는 편이다.
내가 군대에서 훈장처럼 얻어 재발한 허리디스크를 달고 살다 코로나가 심하던 시절 수술까지한 환자이다 보니, 가방은 아무래도 몸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여자친구는 그런 나를 기꺼이 배려해서 무게가 꽤 되는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거들어 준 거다.
나는 가방을 들어준다는 여자친구에게 "가방은 나랑 한 몸이야. 내가 가방 주인이라면 내 가방은 내가 감당해야 해."라고 말했다. 이건 짐짓 허세로 들릴 말일 수 있으나 오래된 내 나름의 철학이 담긴 말이었다.
이 철학의 시작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의 어머니 말씀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적(초등 2학년), 형의 자전거가 진심으로 갖고 싶었다. 형은 나와 4살 터울이라 곧 중학교에 올라가니 버스 통학을 해야 했기에, 이제 저 자전거는 내 것이 될 터였다.
단독주택이라 자전거를 끌고 대문 앞 턱을 넘어야만이 타든 안 타든 하는데, 낑낑대면서도 꼬꼬마 나에게 형 자전거는 버거웠다.
"아빠! 형아~ 나 좀 도와줘요"
목청껏 SOS를 치던 찰나, 어린 나의 안전을 우려해 현관문 너머로 지켜보던 엄마는 내게 한마디 일침을 날렸다.
"주인이 되려거든 감당할 줄도 알아야 해."
/"네?"
"자전거를 갖고 싶다면 너 스스로 그걸 짊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낑낑대며) 너무 무거워요.."
"연습을 하던지 더 크던지 해야지 그럼."
/"뿌엥.."
나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못한다. 어렸던 내게 너무나 어려운 말이기도 했을뿐더러, 문뜩 생각나는 그 문장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삶의 메타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