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학여행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나는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있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놈'의 이름을 안 까먹는다. '김도훈'이라는 같은 반 녀석이었다.
"동영이 똥 싼다~~~ 동영이가 똥 싼대요~~"
하고 고래고래 숙소 방마다 돌아다니며 킬킬 대고 소문을 냈다. 아니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게 왜 놀림받을 일인가. 하며 난 따질 생각조차 못하고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화장실 안에 갇혀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아이가(이름을 모른다) 김도훈에게 한마디를 거든 것이다
"야, 김도훈! 넌 똥 안 싸냐? 왜 사람 창피하고 민망하게 그러는 거야? 똥은 싸는 게 건강한 거야! 조용히 해 좀!"
순식간에 웃던 아이들까지 싹 조용해졌다.
'변을 안 보는 자, 돌을 던져라!' 당시 교회를 다니던 나는 요한복음 8장 7절 말씀이 상황에 맞게 비틀어져 문장으로 떠올랐다.
밖이 조용해지자 세상 소심한 나는 눈치를 살피며 끼익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다음부턴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그 친구가 내게 괜찮냐고 한쪽에서 조심스레 물어본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나를 위해 할 말을 하며 상대를 입다물게 하고 위로까지 건넨 친구가 매일 당하던 나에 비해 너무나 멋져 보였다. 기억하는 이름이 그 친구가 아니라 김도훈 하나인 건 내게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내겐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등 위인전에서 본 인물들보다 그 순간 한마디로 분위기를 제압한 그 친구가 현실적인 로망이 되어 오랜 여운이 남았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엔 그냥 장난으로 하여 새겨진 정서적인 상처가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가 나를 구한 정의의 사도로 보였다. 가면이나 망토를 걸치지 않은 맨얼굴 사복의 작은 영웅이었다.
난 30대의 끝자락인 지금도 여전히 불의를 보면 잘 참는 편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는 글이라도 쓰려고 노력한다. 내가 가진 영향력 내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일은 너무나 작디작지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창한 정의까지 끌어올 일인가 싶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장면 그 대사 그 악의적인 녀석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내 인생에 새겨진 것이니만큼 결코 사소하지 않다.
나를 도운 그 친구처럼 살아야겠다고. 글이라는 힘, 말이라는 힘을 나 하나만을 위해 쓰는 것에서 조금씩 확장해 가야겠다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새삼 다시 나를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