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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빌런이었다

by 이동영 글쓰기

우리 동네 로또 당첨이 아주 많이 된 복권명당 근처에는 할머니 빌런 한 분이 계신다.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돈 좀 달라고 대뜸 구걸하는데 보행기 용으로 유모차 같은 걸 끌고 다니신다. 나는 최근 복권 4등 5등 당첨된 거 바꾸러도 가고, 새로 구입하기 위해서도 두 달 안에 한 네다섯 번 정도 갔었다. 할머니가 나를 그중에 세 번이나 불러 세웠다.


"아저씨, 아저씨, 나 좀 도와줘. 돈 좀 줘요."


이 거지 빌런 할머니에겐 3가지가 없었다.


1) 예의가 없다 - 아저씨, 아줌마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막 불러 세운다. 학생이라고 했으면 쳐다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타이밍 좀 보고 불러 세우지, 연속으로 그곳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인 나나 다른 동네 사람들도 매번 붙잡는다. 사람을 보면서 구걸하는 게 아니라, 닥치는 대로 불러 세우는 거다. 또 앞사람 실패하면 뒤에 걸어가는 내게 좀비처럼 달려든다.


2) 정성이 없다 - 연기라도 성의 있게 하든가 택시비가 없다고 서사라도 있든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에게 성의가 하나도 안 보이는 구걸을 한다. 진짜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유튜브가 잠복하며 한 자리에서 몰카를 찍고 할머니를 대역으로 쓴다면 이렇게 안 할 것이다. 언제나 세태는 현실이 더 가짜 같다. 복권을 사러 다니는 사람들이 부자가 많겠나. 서민들이 더 많겠나. 베풀 여력이나 있으면 로또만이 살 길이라는 소리 는 아우성을 치겠는가.


3. 유니크함이 없다 - 극단적인 예시로, 할머니가 "오빠"라고 부르면 유니크함이라도 있지 않을까. 최소한 눈에 띄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끌어당기도록 연출을 했다면, 자리만 잘 잡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거지 근성으로는 부를 누렸을 거 같다. 목소리, 복장, 호칭, 타이밍 모두 고민이 깃든 유니크함, 비언어도 하나 없이 막무가내이니 누가 쳐다라도 보겠는가.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책이라도 선물해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심정만.


약자라고 해서 무조건 선한 자가 아니다. 강자라고 해서 다 악한 자 역시 아니다. 젊다고 해서 다 총명하지 않고, 나이 들었다고 해서 다 현명하지 않다. 빌런은 많지만 영웅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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