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가 한 명뿐인 이유를 알았다.
얼마 전까지 두 명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서 한 명으로 줄었다. 그래서 두 명뿐이라는 글은 내리고 다시 수정해서 올리는 글이다.
성격이 막 이상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글쎄, 한 번 끝까지 읽어보면 그렇다는 걸 알 수 있다니깐. (어차피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오해하는 것에 굳이 설득할 생각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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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구가 한 명 뿐인 이유를 알았다.
단지 MBTI가 'I'(정신적 에너지가 자기 안으로 집중되는 내향인) 성향이라서도 아니었고, 친구는 '많아봤자 소용없다'라는 가치관을 스스로 정립했기에 그런 것 역시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 사회에서 학습된 거였다. 곰곰이 생각하니 난 수다도 좋아하고 외로움도 잘 탔다. 인정과 관심받는 걸 평소 즐기는 성향이라, 주목받으며 강의하는 강사가 딱 천직이다.
섭외되어 방송에 패널로 출연하거나 인터뷰이가 되면 기운이 솟는 타입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서 먼저 다가가는 게 어려운 건 맞지만, 친구가 더 있었으면 싶은 순간도 더러 있다. 왜 친구가 적은 지를 구체적으로 따지기 싫어서 그냥 '베프 한 명이면 족하지 뭐.'하고 합리화하며 여태껏 살아왔을 뿐이다.
언젠가 장원영 씨가 ‘원영적 사고’를 직접 말하며 ‘럭키비키’와 합리화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노력도 하지 않고서 ‘안 해도 잘 됐으니까 뭐’ 하고 좋을 대로 넘기는 개념이 아니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속에서 좋은 걸 찾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럭키비키’라는 거다. 20대 초반에 자기 철학을 소신껏 말하는 정립된 그녀의 가치관에 감탄했다. 나는 종종 친구라는 존재가 필요했는데 왜 럭키비키인 척 합리화를 했을까.
그러고 보니 ‘왜 혼자가 편할까’ 하는 질문은 내게 처음부터 틀린 전제였다. 나에겐 한계를 깨는 게 먼저였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모르는 나를 제대로 아는 것부터가 순서였다는 말이다. 친구가 적은 이유를 따지고 보니 내가 세상을 따돌리는 게 아니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집돌이형 아티스트라서 그런 것도 다 아니었다.
나는 그저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질문은 관심을 기반으로 한다. 관심은 이른바 보편적인 안부 멘트(날씨/컨디션 체크 등)와 더불어 소소한 관찰로부터 뻗어가는 즉흥성 멘트로 이어진다. 이는 스몰토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현재 상황을 알아가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돌이켜보니 나는 목적이 있을 때가 아니면 질문을 일절 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알게 되어 수년간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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