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되겠다는 용기(f.전도연, 싸이, 이승철)

선택받는 직업인 프리랜서의 연예인 공감

by 이동영 글쓰기 쌤
저는 선택을 받는
입장이니까요.
누군가 저를 선택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날 발견하고
배우로서 많이
소모당하고 싶어요

- 배우 전도연


인생이란 무엇일까?


40대로 들어서면서 인생에 관해 특별히 깊이 생각한다기보다는,

늘 이런 물음을 품고 살았다가 이제 그 물음을 던져봤던 이들의 말이 눈에 띄고 들리기 시작까.


패션매거진 엘르코리아 인터뷰에서도, tvN 유퀴즈에서도, 매일경제 인터뷰에서도 배우 전도연 씨는 같은 말을 남겼다.

배우로서
잘 소모당하고 싶어요.


나는 이 말이 참 오래 남았다. 벌써 2년이 훌쩍 지난 인터뷰이니까, 현재는 또 어떠한지 모르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꼬리 질문을 던지는 화두로써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 무엇으로 소모당할 것인가?

어떤 인간으로. 어떤 직업인으로 소모당할 것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연인 이동영으로 사는 시간보다 직업인 이동영으로 사는 시간, 그 업을 위해서 생각하거나 집중하는 시간이 더 길다면 길다. 특히 프리랜서라서 더 그런 면도 있겠다. 직장인 시절엔 직장인으로서 규칙적으로 할당된 시간 동안 소모당했다면 프리랜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니까.


내가 굳이 배우 전도연 씨의 말을 빌리는 이유가 있다. 나 역시도 누군가 '찾아줘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정점에 올랐거나 TV에 나오는 유명 강사까진 아니지만, 10년 넘는 경력 연차가 쌓이고 강사료가 오를수록 나 나름대로도 따질 것이 많아졌다. 날 찾아주는 이들에게도 내 가치가 낮아지는 게 싫기도 했고, 온라인상에서 날 브랜딩 할 땐 저렴하게 비치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 정도는 받아야 정당하다'라는 비즈니스 마인드도 있었다. 교육에 돈을 우선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교육하는 값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내가 이보다 더 낮게 받으면 강사 생태계의 최대예산 자체가 낮아지기에, 정당하게 내 직업인으로서 가치는 내가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실력을 키우는 데 게을리하지 않고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이 기반 위에서 기꺼이 소모당하는 게 옳다.


이건 작가로서도 마찬가지다. 난 아티스트라고 스스로 규정했던 기간이 길었다. 마이너 하게 활동하며 돈을 얼마 벌지 못해도 나만의 창작을 한다고 확신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날 알아보지 못한 것일 뿐, 나는 내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과거도 있었다. 난 이제 그 과거가 살짝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티스트의 면모가 일부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가난하게 예술을 고집할 정도로 유니크하거나 퀄리티가 높은 창작을 해내는 예술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철저한 객관화에서 비롯한다.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라,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


대중을 상대하는 작가이자 강사로서 소모당해야 하는 운명임을 이제는 받아들이려 한다. 가치를 낮추겠다는 건 아니지만 날 찾는 곳에 기꺼이 달려갈 각오를 하며, 강사비를 더는 따지지 않겠다는 작심도 했다. 강사비는 따지지 않는데 가치를 낮추지 않는다는 논리가 서로 상충되지 않느냐고? 이유가 있다.


나는 개인 강의를 자주 열지 않는 강사다. 평균을 내보면 개인 강의는 1년에 4~5회 정도뿐이다. 프리미엄 소수정예 강의 혹은 기수별 글쓰기 클래스, 일일 특강 정도인데, 책 집필기간과 외부 강의 스케줄 때문에 많이 열지 못해서 그렇다.


주로 외부(기업, 공공기관, 초중고대학교, 도서관 등)에서 섭외를 받아, 누군가 날 찾는 곳이 있을 때 출강한다. 이럴 땐 수강하는 교육대상자 분들에게 직접 돈을 받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자발성이 떨어지는 집단에 가서 강의를 하는 것은 강사로서 자존심이 떨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강사비를 안 따지고 '수강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인지만 따지기로 했다.


내가 앞으로 만날 수강생(교육 대상자)은 글쓰기가 필요한 이들이지, 돈이 많은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소속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듣는 이들도 아닐 것이다. 내가 필요한 대중에게 찾아가는 대중 강사, 내 글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가닿는 글을 쓰는 대중 작가로서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의 포지션을 분명히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싸이, 이승철, 그리고 전도연 씨 모두가 어떻게 직업인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분명히 내비쳤다. 대중이 원하는 것으로 기꺼이 소모되는 직업인이 될 거라는 거다. 난 이렇게 해석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롱런하는 이들의 철학에 동의하며 직업 가치관을 정립했다.


소모되겠다는 용기,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고, 하고 싶은 강의만 하는 게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글을 쓰고, 대중이 원하는 강의를 하는 것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줏대가 없는 글쓰기나 강의를 하겠다는 선언과는 거리가 멀다. 대상자에게 만족감을 제공하고, 필요를 충족해 주는 수단이 기꺼이 되겠다는 것이고 독자나 수강생은 순수한 목적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그럼 보상은 따라올 거라고 믿는다. 돈을 따져서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방향을 따져서 돈을 따라오게 하는 것.


나는 잊지 않겠다. 내가 대중 작가이며, 대중 강사라는 사실을.

그래야 날 응원하는 찐팬 독자와 제자 수강생이 이런 나를 존속하게 도와줄 것이라고도 확신한다.


정점에 도전하고, 평생 대중이 필요할 때 그 자리에 묵묵히 활동하는 직업인으로서,

그렇게 기꺼이 소모당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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