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카피에서 긍정을 보다
서울 땅은 내 것이 아닌
설 자리를 주지 않아...
제목도 살벌한 '글루미 선데이'
동명의 팝송은 실제 여러 명의 자살충동을 일으킨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위의 노랫말은 되레 내게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하는 위로가 되어 주었다. 부정에서 긍정을 본 것이다.노래는 가수 MC 스나이퍼의 글루미 선데이.
글제목과 전혀 무관한 노랫말로 시작한 이유는 다름 아닌 지난 여름 서울땅 내에서 이사했던 사연에 있다.
피터팬이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되어 4월 서울에서 취업 직후 어떤 남자분 빌라의 방 하나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에어컨이 없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데다 야동사운드인지 여자사운드인지 모를 신음사운드가 새벽2시부터 3시까지 내내 울려퍼지는 그 빌라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아주 급하게 방을 빼었다.
급하게 구한 원룸은 일단 신음사운드는 들리지 않았고, 에어컨과 주변 소음이 없는 것, 오랜 기간 머문 경험이 있던 고시원에 비해서는 훨씬 독립적인 환경이었다. 비록 저렴한 보증금에 비싼 월세였지만 신입사원으로서 선택권이 없던 여름 휴가 이틀에 나는 이사를 했다. 땀 범벅이 되었던 2015년 7월이었다.
겨울이 되었을 때, 나는 알았다. 이사 온 이 집은 보일러도 히터도 없다는 것을.(부동산 실장이 말했던 게 추워질 때 쯔음 떠올랐다.) 아니 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해야 정확하겠다. '원룸'이니까. 고향에 있는 우리집 내 방보다 더 작은 원룸은 창밖에 보이는 하늘이 옆 건물에 가려 딱 직사각형 반경만 하지만, 그래도 서울땅에서 1년은 무작정 버티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독하게 마음 먹었다. 8월부터 담배를 끊은 이후 더 독해진 것 같았다. 1년은 지났고, 연봉협상도 했지만 모은 돈은 단 한 푼도 없고 근근히 버티고만 살며 버틸만 하다는 게 더 문제. 감기 한 번 앓지 않고 보일러 없는 원룸에서 유난히 추웠다던 겨울 한 철을 버텨냈다. 오히려 추운 곳에서 매일 살다보니 왠만한 추위에는 끄덕없었고, 더 건강했다. 결과론적인거지만 보일러 없이도 '버틸만 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정적 상황에서 긍정을 보는 힘'이다.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 글도 이 주제에 한 몫 했다.
나는 여름이 정말 싫다. 12월 겨울군번으로 웃통을 벗고 연병장을 몇 바퀴 돌아도, 쌓여져 있는 흰 눈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진 않았건만 여름의 땡볕은 나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랬던 여름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쓰고자 했다니, 내가 초여름 더위 조금 있는 걸로 더위를 먹은 건가 할 수도 있지만, 아까 충격적인 카피 하나를 집 근처 돈까스집에서 TV광고로 마주쳤기에 꼭 브런치에 기록하고 싶었다. 이 카피를 누가 썼는지 이 카피라이터라면 카피쓰는 비법이라도 전수받고 싶어졌다.
여름이 좋은 건
어디엔가 시원함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여름이 좋다고 한 적이 없었지만, 이 카피는 여름을 기분좋은 계절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해보인다. TV가 없는 내게 이렇게 외식 중 TV브라운관으로 마주치는 강렬한 경험은 남달라서 쉽사리 가시질 않는데, 이런 카피가 정신건강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당신이 좋은 건
당신 어디엔가 상처가 있기 때문이고
이야기가 좋은 건
어디엔가 나와 비슷한
고통이 있기 때문이며
아기의 눈빛이 좋은 건
어디엔가 내가 잊고 사는
순수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