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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r 08. 2017

1. 책 <서른 살의 사춘기> 연재 시작

(1) 프롤로그

매일 밤 달을 바라보던 한 소년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할 용기도 없고, 누군가 전화를 해줄 이도 없던 소년은 자신을 말없이 등질 리 없는 하얀 달이 좋아 친구 삼아 지내기로 했다. 흐린 날엔 달을 상상하고, 맑은 날엔 달에게 눈을 맞추며 하루를 버티어 갔다. 세상이 나를 몰라줄 때, 세상이 나에게만 휘몰아칠 때가 있질 않나. 소년은 그럴 때마다 달을 보며 버틸 수가 있었다.


노을과 함께 하늘을 수놓은 낮달이라도 뜨는 저녁엔 왠지 좋은 느낌으로 새벽을 지내곤 했다. 소년은 아무리 고요하고 캄캄한 골목길을 걸어가도 무섭지 않았다. 하늘을 방긋 올려다보며 든든해했을 뿐이다. 보름달이 차오르면 의례처럼 한 번도 빠짐없이 소망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 소년은 이제, 달에게로부터 받은 위로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의 기운을 책으로 써서 퍼뜨리고자 한다. 매일 세상에 퍼지는 은은한 달빛처럼. 전화 대신 두 손으로 책을 받쳐줄 당신을 생각하면서, 소년은 오늘도 글을 쓴다.


SNS에 꾸준하게 글을 공유해서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왔다. 그중에는 극단적인 맘을 거뒀다는 처절한 사연의 독자도 있었고, 애인의 마음을 돌리는 글귀를 써달라는 기발한 독자도 있었다.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내 글을 보고 힘을 냈다는 독자도 있었고,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눈 독자도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의 질풍노도를 겪고 있는 이들이었다. 순간이 아니라,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메시지를 보내오는 분들은 대개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의 독자들이었는데, 빠르게 불어오는 바람과 미친 듯이 닥쳐오는 파도 앞에 선 이들이었다. 사춘기의 심리를 바로 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우리는 배운 것이다.
 


서른은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서른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부모님으로부터 친구 자식들과 비교를 당하기 가장 좋은 때가 딱 사춘기 시절인데, 중2 즈음이 그랬고, 서른 즈음이 그렇다. ‘나는 누구인가’의 물음을 가장 절박하게 던지는 가히 ‘혁명적’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잔소리는 언제나 한결같다. 자식을 걱정하는 그 마음이 한결같으니까. 문제는 물가에 내놓은 것 같은 그 자식이 ‘급변’한다는 데 있다. 경우에 따라선 이른바 ‘역변’ 하기도 한다. 부모님의 경험과 다른, 자기 나름의 주관이 조금씩 뚜렷해지며 선택과 집중에 나선다. 자신이 세운 원칙과 기준으로 헤쳐나가야 할 인생이란 걸 어느 순간 감으로 깨달아가며,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는 시기가 바로 이 질풍노도의 사춘기다.


중 2와 서른의 차이가 있다면, 나이가 더 먹을수록 혼란스러운 건 같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데 있다. 당신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주었는지에 대해, ‘나름의 최선’이라는 그 한계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알게 된다. 당신들의 뒷모습을 조금씩 보게 된다.

‘내가 알아서 한다’ 던 허세 어린 반항기는 어릴 적과 달리, 물질적·정서적 독립으로 이어질 뿐이다. 부모의 눈에는 중2 때나 서른일 때나 애처럼 보일 테지만 공자왈, 서른은 이립(而立)이라, 즉 홀로 서는 나이다. 나는 이것을 서-어른이라 부른다.


이 책의 이름이 서른 살의 사춘기인것은 서른 살의 이야기만을 쓰고자 함이 아니다. 누구도 서른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 없지 않겠나. 다만 20대를 거쳐오며 서른까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해둔 글들을 서른 살 현재의 예민한 감성으로 다시 정리해본 작은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SNS에 올려서공감을 받은 글귀들은 책으로 엮었을 때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기에 그렇게 선정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모든 글은 나에게 하는 말로서 마음을 다지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 감정을 공감하는 독자들이 생겼다는점이다. 


서른에 진입하기까지 단상들을 원고로 정리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나지막이 뱉은 한 마디가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당신도 한 번쯤 내뱉을 문장이다. 이것으로 서문을 마치려 한다.



‘아, 나도 서른인 건가’


2017년, 만 서른 즈음 어느 봄날에

서울 동작구의 원룸에서


브런치 북에 응모하며 퇴고 본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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